[장석류의 예술로(路)] 공연이라는 업(業)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장석류의 예술로(路)] 공연이라는 업(業)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 장석류 문화정책연구자/칼럼리스트
  • 승인 2021.05.18 1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석류 문화정책연구자(행정학 Ph.D)/ 칼럼니스트
▲장석류 문화정책연구자(행정학 Ph.D)/ 칼럼니스트

편의점에 가면 살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목이 말라 냉장 코너에 가면 이것저것 마실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맥주 4캔을 들고 계산대에 가서 만원을 지불하는 순간 이 아이들은 이제 나의 소유가 된다. 우리 집 냉장고에 두고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마실 수 있다. 핸드폰도 부동산도 주식도 결제가 되면, 그 순간부터 나의 소유가 된다. 내가 버리거나 다시 팔지 않는다면 계속 나의 소유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많은 것들은 해당 재화를 소유하고 싶어 비용을 지불한다. 그런데 공연 티켓을 구매한다고 해당 공연이 나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연 티켓은 어떤 가치를 갖고 싶어 구매하는 것일까?

티켓을 보면 보통은 공연명과 장소,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당신에게 해당 시간에 맞춰 해당 장소에 오면, 매혹적인 무언가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일상과는 다른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유혹한다. 공연의 홍보마케팅이라는 것은 결국 그 시간에 이곳으로 와보라고 꼬시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곳에 가보고 싶은 것일까? 각자 가지고 있는 1년 365일, 8,760시간은 시간이 지났을 때, 다 기억나지 않는다. 특히 반복되는 일상은 하나의 덩어리로 기억될 뿐이다.

하지만 특별한 시간은 기억에 남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유럽의 어느 시골길을 여행했던 시간,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장난치며 놀던 시간, 따랐던 선배가 먼저 세상을 떠나 슬픔에 차 있던 시간 등 특별한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이 난다. 공연 티켓이라는 재화는 해당 시간에 해당 장소에 가서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가치를 품고 있다. 그 특별한 시간은 신나게 놀고 싶어 갈 수도 있고, 슬픔을 위로받고 싶어 갈 수도 있다. 예술가들은 그 특별한 시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고, 극장은 그 특별한 시간을 담아내는 공간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박물관, 미술관 티켓은 보통 입장을 해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오픈된 시간 안에 들어갔다가 내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면 된다. 산책하듯이 한 바퀴 돌고 나오는 사람도 있고, 꼼꼼하게 하나씩 음미하며 즐기는 사람도 있다. 그에 비해 공연은 티켓에 표시된 시간에 맞춰 도착해야 하고, 전시보다는 상대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끝날 때 다 같이 나오게 된다. 공연이라는 재화는 공연이 끝나는 순간 그 재화가 연기처럼 사라진다. 텅 비어 있던 무대가 특별한 시간으로 채워졌다가 다시 텅 빈 무대로 돌아간다. 영화는 복제가 될 수 있어 다시 볼 수도 있고, 여러 영화관에서 동시에 상영될 수 있다. 하지만 공연은 복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작품을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에서 동시 상연할 수 없다. 오늘 본 영화와 어제 본 영화는 같은 영화지만, 어제 본 공연과 오늘 본 공연은 같지 않다. 공연 티켓은 다 팔지 못했을 때, 옷이나 신발처럼 재고가 생기지도 않는다. 공연 티켓에 새겨진 시간이 지나면 아무에게도 팔 수 없는 휴지가 된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지나간 공연도 붙잡을 수 없다. 하지만 특별한 시간은 사라져도 우리의 기억에는 남는다. 공연이라는 업(業)의 요체는 어찌 보면 같은 공간에서 예술적 가치를 가진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함께 보내는 것에 있다. 공연기획은 예술가들과 함께 그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를 고민하는 것이고, 홍보마케팅은 이 특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들을 어떻게 모셔올까 고민하는 일이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이 업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음에 불안하다. 2020년 인터파크 결산 자료에 따르면 공연시장은 전년대비 75.3%가 감소했다. 올해는 객석의 절반만 오픈하여 공연을 하고 있지만 코로나19는 앞으로 수십 년간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바이러스가 될지 모른다. 또한 심각한 환경오염과 파괴로 또 다른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만나 특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대학에서도 오프라인 강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보다는 좀 더 온라인 강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향상되었고, 교수자와 수강생 모두 새로운 환경에 대한 경험치가 쌓이고 있다. 대면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교육의 본질은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공연이라는 업의 본질이 대면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예술적 가치를 가진 특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올해 3월 영국 로열셰익스피어 컴퍼니(RSC)에서 ‘한 여름밤의 꿈’을 소재로 한 버추얼 퍼포먼스 <Dream>을 상연하였다. 어찌보면 상연(上演)과 상영(上映)이 혼합되어 있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모션캡처 무대에서 7명의 배우가 출연하여 실시간 연기를 하면 스마트폰이나 PC, 태블릿을 통해 시청할 수 있었다. 관객들은 감상에 사용하는 기기를 통해 실시간 공연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접속 관객은 3차원 공간의 배우 아바타에게 반딧불이를 날리며 상호적 체험을 하였고, 매회 수천 명의 관객이 참여했다. 가상공간에서는 메타버스(Metaverse)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빌보드 1위에 오른 BTS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메타버스 기반의 온라인 공간에서 발표되었다. 프랑스 칸영화제 ‘칸 XR 가상 오디토리움’ 메타버스 플랫폼도 코로나 19로 물리적 만남이 어려워진 참가자들이 아바타를 통해 온라인 가상공간 속 상영관을 방문해 작품을 감상하고 전 세계 참여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였다.

극장의 미래에는 메타버스 플랫폼에도 분관을 하나씩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버추얼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공공극장 스튜디오도 필요할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은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현실을 확장시킬 수 있다. 만나려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떼어내기 힘들고, 이몽룡과 성춘향을 헤어지게 만들기 힘든 것처럼 특별한 시간을 준비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예술가와 그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하는 관객들을 떼어내기는 힘들다. 서로는 자석처럼 만나고 싶어한다. 입학식, 결혼식, 장례식,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도 공연과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만나서 기쁨과 슬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공연이라는 업(業)의 개념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보여주고 싶고, 보고 싶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담을 넘어서라도 보고 싶은 사람은 만나야 한다. 그 시간은 특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