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김용걸의 ‘빛, 침묵 그리고...’-공연의 기록성과 예술성
[이근수의 무용평론]김용걸의 ‘빛, 침묵 그리고...’-공연의 기록성과 예술성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5.1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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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안무가가 보내온 ‘La lumiere, Le silence et...(빛, 침묵 그리고...,)’(4.16~18)의 공연 초청장을 두 번이나 받고도 관람을 망설인 데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공연 당일 아르코예술대극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나는 7주년 추모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이 유족을 위문할 뿐 아니라 무용관객을 위로해주는 예술성을 살려낸 작품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무대 중앙에 주인 잃은 신발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검은 상복의 여인이 객석에서 일어나 앞으로 다가가 향을 피운다. 7년 전 보았던 작품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고사리 같이 여린 팔뚝들이 무더기를 이루며 하늘을 향하여 손짓한다. 애타게 구원을 갈망하는 모습들이다. 삶에 대한 애원, 혹은 죽어가는 그들의 마지막 절규일 것이다. 검정색 옷으로 통일된 아이들이 두 명, 세 명, 혹은 네 명씩 무리지어 춤추는 모습이 이어진다. 검푸른 바다의 흉흉한 파도가 배경이다, 가라앉아가는 선실의 창문 안쪽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까지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던 여학생이 결국 물에 잠겨간다. 참상의 전모를 상징하는 처절한 장면이다. 초연작에서 보았던 섬뜩한 장면들은 2021년 추모 작에도 대부분 그대로 나타난다. 제목의 느낌도 그렇다. <빛, 어둠 그리고...>가 <빛, 침묵 그리고...>로 바뀌었다. 안무가가 원작을 만들면서 제목에 <그리고...>를 덧붙였던 이유가 자연히 설명된다.

30분이었던 원작의 공연시간은 90분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60분은 바로 이 <그리고...>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사고의 경과와 그 후의 사회적 반응, 사건에 대한 해석들이 늘어난 부분에 담겼다. 억울하게 스러져간 영혼들에 대한 애도가 원작의 주제였다면 신작은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곧 우리 사회에 대한 질책과 반성을 담는데 주력한다. ‘왜 그들은 희생자 구조에 소극적이었을까?’, ‘왜 사고에 대한 조사과정이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것일까?’, ‘누가 책임자고 그들은 어떻게 책임을 부담했는가?’, ‘희생자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는가?’ ‘사고는 어떻게 정치화의 과정을 밟고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이 초래되었는가?’ 줄을 잇는 의문들이 현장감 있는 언론보도와 관련자들의 육성과 영상들을 보조수단으로 계속 펼쳐진다. 한결같이 어두운 조명과 음울한 음향이 관객들을 우울하게 한다. 영령들을 위로하는 검은 살풀이춤과 ‘라 바야데르’를 연상시키는 흰옷의 군무가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 춤으로 영령들과 유족들이 위로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살아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위로 받을 수 있을까.

예술가로서 김용걸의 작품에 오랫동안 주목해왔다. 2014년 신작인 ‘Inside of Life'를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깊은 성찰이 정교한 무대와 안무를 통해 객석과 공감하는 것에 감탄했다. 불교적인 윤회(輪廻)를 상징하는 회전무대, 감각적인 무대미술, 피날레를 장식한 군무가 무대를 가득 채우며 안무자와 무용가와 관객을 죽음과 삶의 명제 앞에서 하나로 만들어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비애모’(2012)에서 보여준 예술성과 대중성의 조화, 볼레로와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안무로 녹여내는 뛰어난 음악성이 그의 브랜드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진정성이 작품에서 보여질 때 관객들은 흔연히 공명하고 환호를 보낸다.

2021년 판 ‘빛, 침묵 그리고...’는 예술성보다 기록성에 치중한 작품이다. 사건에 대한 묘사가 직설적이고 언론 보도와 관련자들의 감정이 예술적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고 전달되고 있는 것은 아쉽다. 역사적 사건이 예술작품으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현장으로부터의 거리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거리가 객관적 서사를 가능케 하고 관객과의 교감을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7주년 추모 작이란 형식성과 전 관객 무료초대라는 행사성이 이유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세월호를 다루었던 장혜림의 <심연>(2016)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2016년 2주년 추모일을 한 주 앞두고 아르코대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에서 안무가는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도 않았다. 속절없이 죽어간 자식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깊은 한을 여인들이 손마다에 받쳐 든 작은 종이배로 상징하면서 우리 고유의 정서인 한으로 승화시킨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역사적 사건의 기록성을 살리면서 어떻게 예술성을 달성할 수 있을까? 김용걸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