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이회수 연출가 “오페라의 ‘대중성’ 보다 필요한 건 ‘다양성’”
[Culture Interview]이회수 연출가 “오페라의 ‘대중성’ 보다 필요한 건 ‘다양성’”
  • 이은영ㆍ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5.18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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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서푼짜리 오페라’, 국내 최초 오페라 무대로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제작예술상 수상
창작 오페라, 가장 필요한 건 대본ㆍ연출ㆍ음악의 협업
우리말로 전하는 오페라, 지속적인 시도 필요
오는 29일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서 폐막작 ‘안나 볼레나’ 연출로 관객 만나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ㆍ진보연 기자]“대중은 끊임없이 더 새로운 것, 더 재미있는 것, 더 손쉬운 것을 찾고 있으며, 그 속에서 다시 대중들만 가능한 새로운 문화의 싹을 키워낸다. 그러나 그 새로운 문화의 싹은 진지한 예술가의 창조 정신과 만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고 만다. (중략) 진지한 예술은 그 싹을 키워내고 자기 것을 보태서 다음 시대의 더욱 우월한 예술을 창조해 낸다. 진지한 예술은 대중 예술을 수적인 영향력이 아니라 질적인 영향력으로 규정짓는다. <거지 오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정환 <클래식은 내 친구>, 웅진출판, p.88~89)

오페라 역사상 유일하게 제목에 ‘오페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오페라 극장에서는 공연되지 않는 작품. <서푼짜리 오페라(Die Dreigroschenoper)>는 ‘20세기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작곡가 쿠르트 바일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1928년 8월 31일 독일 베를린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태생부터 대중 취향의 오페라를 지향하고 있다. 귀족과 식자층의 전유물이었던 헨델식 오페라를 비꼬기 위해 1728년 영국에서 초연된 후 미국에서까지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존 게이와 조안 크리스토프 피푸치의 <거지 오페라>를 원작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회수 연출은 지난 4월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 <서푼짜리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그간 국내에서 뮤지컬, 연극, 음악극 등 다양한 형태로 공연된 바 있지만, 성악가들이 무대에 올라 ‘오페라’로써 관객들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서푼짜리 오페라>는 기존 오페라가 상투적으로 접근했던 귀족의 환상을 현실로 끌어내린 작품이다. 브레히트는 서민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오페라를 지향하며 특권층만 향유하는 고상한 예술이라는 인식을 깨려 했다. 이회수 연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소극장오페라에서 오페라의 정수를 맛볼 순 없겠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오페라 장르로의 입문을 돕고 저변 확대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회수 연출가ⓒ김재성 작가
▲이회수 연출가ⓒ김재성 작가

이회수 연출가는 로마 국립예술원에서 무대디자인과 연출논문 수석을 차지한 재원이다. 로마, 프라하 등 유럽에서의 성공적인 오페라 연출에 이어 2008년 귀국, 2013년 제6회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창작부분 <손양원>으로 작품대상과 연출대상을 최연소로 차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라 트라비아타>, <마술피리>, <돈 죠반니>, <라보엠>, <나비부인>, <투란도트>, <호프만의 이야기>, <아이다> 등 한국과 유럽 각국에서 수십 편의 오페라 연출 및 예술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많은 이들이 ‘오페라의 대중화’를 외치지만, 이 연출가는 오페라의 대중화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하며 순수 예술로 남아있는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억지로 애쓰기보단, 정통 오페라 고유의 색을 머금은 ‘입문 오페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창작 오페라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와 고민을 계속하는 이회수 연출가를 만나, 그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오페라에 대해 물었다.

최근 막을 내린 소극장오페라에서 처음 상을 제정하고, 그 첫 번째로 제작예술상을 받는 영예를 얻었다. 수상의 의미를 짚어달라.

페스티벌이지만 시상식도 있다는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연출님이 반대를 했었다. 기존 오페라보다 굉장히 축소된 규모로 작품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는데 시상식으로 인해 불필요한 경쟁이 생기는 것을 염려하셨으리라 생각된다. 이에 작품이 아닌 가수에게만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었지만, 결국 시상식은 처음 기획대로 진행됐다. 

사실 처음에 <서푼짜리 오페라>의 연출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다른 작품을 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부담을 느꼈다. 이걸 무대에 올렸을 때 ‘이게 오페라야?’라는 말이 분명히 나올 거라 예상했기에, 방향성에 대해 수없이 생각했다. 이걸 오페라틱하게 만들려면 성스루로 가야 되나? 그럼 브레히트의 대본은 어떻게 하지? 이런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작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나 스스로가 경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소극장오페라축제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연출님들이 많이 참여하셨고, 시상까지 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불필요한 신경전과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계속 다잡았다.

더불어 <서푼짜리 오페라>는 시상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라고 판단했다. 평가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으니, 남은 건 나에게 온 이 작품을 즐기며 작업하는 일이었다. 우리 프로덕션 자체가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작품을 하는 내내 정말 즐거웠다. 상을 받으면서 ‘새로운 가족을 만난 느낌’이라고 말했던 건 100% 진심이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예산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었지만, 이 작은 작품 하나로 그 안의 모두가 행복했기 때문에 서로 간의 신뢰와 돈독함이 쌓일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은 즐기는 법과 여유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상을 받은 것보다,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아서 굉장히 값진 시간이었다. 

▲이회수 연출가ⓒ김재성 작가
▲이회수 연출가ⓒ김재성 작가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도 모두가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참여하는 모두가 새로운 도전을 통해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성악가는 연기를 못 하고, 대사 전달력이 떨어지고, 노래만 생각한다는 선입견을 탈피하는 과정에 모두가 진심이었다. 벽을 깨려고 노력했고, 조금씩 허물어지는 벽을 보며 함께 즐거울 수 있었다. 

이번 작업으로 하여금 거대한 변화가 당장에 일어나진 않았지만, 스스로 벽을 허물고 원하는 지점으로 도달하는 과정이 행복했다. 아울러 모두가 어려운 이 상황 가운데 일할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성악가 출신 연출가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 진로를 변경했을 땐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진로를 변경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 따로 있던 건 아니다. 그냥 많이 지쳤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실력이 내 커다란 욕심에 미치지 못하니 자괴감도 생기고, 그만큼 좌절도 컸다. 그 기간에 다양한 공연을 보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접하게 됐다. 처음에 나에게 ‘극장’은 평면적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보여 지는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바라보고 관찰하니 뒤에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대 미술, 의상, 조명 등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는 미술을 전공하던 당시 룸메이트가 자신과 함께 시험을 보자고 툭 던지듯 말했다. 학교 졸업 후 한국에 돌아가느냐, 이탈리아에 남느냐 결정을 앞둔 시점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는데, 무대디자인 전공으로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연출가로서의 길을 가게 됐다.

인생을 아주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인간이 뭔가 엄청난 노력을 쏟아도 그것이 온전한 결과로 나오지 않을 때가 있고, 반대로 노력에 운이 더해져 일이 잘 풀릴 때가 있는 것 같다. 성악을 할 땐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선 이상을 넘기가 참 어려웠다. 그런데 연출을 시작하고 난 후, 내가 노력한 만큼 아니 어느 때는 그 이상의 결과를 얻기도 했다. 나에게 맞는 길이 따로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2012 제3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공연 ‘호프만의 이야기’ⓒ누오바 오페라단

연출을 하는 모두에게 번듯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닌데, 그런 면에서 타고난 운과 그에 맞는 실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뤘다고 볼 수 있겠다.

처음 예술의전당의 작품을 하게 됐을 때, 나를 두고 ‘집에 돈이 그렇게 많단다.’라는 얘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당시 살던 집이 예술의전당 바로 밑이었는데,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저 큰 공연장에 어쩜 내가 일할 곳 하나 없을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학을 가서 아는 선생님 한 분 계시질 않았다. 일이 없어서 맨날 집에서 놀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우연히 지방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고, 꽤 많은 작품을 거친 끝에 서울로 입성한 것이었다. 그조차도 지방에서 함께 작업을 했던 선생님께서 나를 믿고 이끌어주신 덕분에 가능했다.

예술의전당에서의 첫 무대는 지난 2012년 제3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선보였던 <호프만의 이야기>였다. 나는 이태리 말이 편한 사람인데 별안간 불어로 된 작품이 주어진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고 너무 잘하고 싶었다. 최소한 대본을 제대로 읽을 줄은 알아야 하지 않나. 마침 유학 때 같이 있었던 친구가 프랑스에 있어서 급히 연락했고, 두 달가량 친구 집에서 지내며 불어를 배웠다.

무대 위에 섰던 경험이 현재 무대를 만드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

노래를 했던 입장에서 가수들에게 너무 말도 안 되는 액팅을 요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게 좋은 점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더 많은 것을 뽑아내지 못하게 스스로 제한을 두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노래를 했던 경험이 없다면, 발성에 방해가 될 수 있는 포즈들을 다양하게 요구했을 텐데 알고 있으니 아무래도 그런 면에서 나름 너그럽지 않나 싶다. 그 너그러움이 나의 장점일 수도 있고, 내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웃음)

성악을 하던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제일 돋보여야 하고, 나 혼자 알아야 하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경쟁 상대 같았다. 그런데 연출을 하면서, 내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가득하고 내가 잘났어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그걸 표현해주지 않으면 말짱 꽝이라는 걸 깨달았고, 타인과 어울림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우게 됐다. 

▲이회수 연출가ⓒ김재성 작가

로마 국립오페라 극장에서 일하며, 프라하 STATNI 오페라극장 주최 국제 연출 콩쿨에서 아시아 최초로 입상하는 등 유럽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어려서부터 생활한 그곳이 훨씬 편했기에 솔직히 더 있고 싶었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거의 15년을 버텼고 나름 일도 잘 풀리고 있었는데 내가 더 버텼다면 보다 다양한 활동을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당시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해외에서 활동할 당시에도 연출로서 자리를 잡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쪽도 텃세가 세다. 그래도 오페라하우스 입성은 주변 분들의 많은 도움 덕분에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들어간 후에 내가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더욱 중요했다. 처음엔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있으나 마나 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악보 하나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내 나름의 생존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 남들이 10시에 나온다면 나는 더 일찍 나가서 그냥 앉아있었다. 주어진 일이 없어도 계속 돌아다니면서 할 일을 찾았다. 아무도 나를 소개해주지 않았으니,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어딜 가든 보이는 내가 극장에서 나름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됐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내가 할 일을 찾아다녔다. <나비부인>과 <투란도트>에 참여하게 됐는데 동양인이 나뿐이다 보니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이는 문화적 고증의 오류를 잡아내기도 했다. 동양 문화를 다루는 작품이 아니었다면 그곳에서 나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을 거다. 지나온 길을 떠올릴수록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오페라하우스 2018 신년기획공연으로 선보인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공연 모습
▲대구오페라하우스 2018 신년기획공연으로 선보인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공연 모습

창작오페라에 있어 작곡과 대본 중심으로 여전히 진행되고 오페라의 전체를 지휘해야 할 연출가는 가장 나중에 붙게 된다.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나는 창작에 대한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창작산실 오페라부문 공모에 가장 많이 참여한 연출이 아닐까 싶다. 정말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끊임없이 지원하는데, 지금까지 붙은 건 딱 한 번이다. 타율이 정말 안 좋다.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빠하실 걸 알지만, 내가 판단컨대 극음악과 성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작곡가들은 많지 않다. 장르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다 보니, 무조건 고음이 나와야지만 대단한 오페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가수가 고음을 냈을 때 관객이 좋으면 오케이, 그런데 부르는 가수도 괴롭고 관객도 괴롭다면 그 음은 무의미한 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고음의 유무가 우수한 오페라 평가 기준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이회수 연출가ⓒ김재성 작가
▲이회수 연출가ⓒ김재성 작가

더불어, 대본이 오페라화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바뀌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내가 쓴 대본은 절대 바꾸면 안 돼’라고 생각하시는 대본가 분들이 많다. 작품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다. 그런 면에서 각색가가 많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대본과 음악의 가운데서 라임을 맞춰줄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도록 음을 맞춰주는 사람. 이러한 작업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지금은 협업의 체계가 너무 약하다. 

대본과 음악이 나온 상태에서 연출이 투입되면 곤란한 상황이 굉장히 많이 발생한다. 무대 구성상 이 부분은 전환이 어렵다, 이 대사는 귀에 너무 안 들린다, 음정이 이렇게 되면 노래할 수 없다 등등. 연출 입장에선 반드시 필요한 수정 사항을 전달하는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이다. 불필요한 마찰과 수정을 줄이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함께하는 공동작업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본ㆍ연출ㆍ음악 중심의 작품 중 뭐가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답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다양한 노력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 ‘다름’을 ‘틀림’이라 판단하지 않고 여러 시도가 쌓이길 바란다. <서푼짜리 오페라>를 보고 누군가는 ‘저게 오페라냐’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음악이 강점인 작품, 연출이 뛰어난 작품, 대본이 좋은 작품 등 크고 작은 시도들이 더해진다면 그 작품을 따라 관객들도 다양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대중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하루는 친한 동료 (오페라) 가수가 내게 ‘마니아가 적은 장르의 예술일수록, 예술이 가진 순수성을 보존해줘야 한다’는 말을 해줬다. 그 말이 정말 와닿았다. 없는 걸 찾느라 있는 걸 잃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많은 이들이 ‘오페라의 대중화’를 외치지만, 나는 오페라의 대중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대중화될 수 있겠는가. 오페라를 대중화하기 위해 탄생한 장르가 뮤지컬 아닌가. 클래시컬한 순수 예술로 남아있는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억지로 애쓰기보단, 마니아층을 조금이라도 늘려갈 수 있도록 우리가 협업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정통 오페라가 가지는 고유의 색을 지니는 ‘입문 오페라’가 틀림없이 필요하다. 소극장 오페라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오페라 장르로의 입문을 돕고, 이를 통해 재미를 느낀 관객들이 그다음 단계의 조금 더 규모 있는 오페라를 찾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대극장까지 오게 된다면 한 분의 마니아가 늘어나는 게 아니겠는가. 

이번 소극장오페라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말로 가사를 전달했다. 특히 번역작을 올렸기에 어려움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번 소극장 오페라의 가장 큰 수확이자 의의는 우리말로 오페라를 선보인 것이다. 자막을 보지 않아도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고무적이었다. 양진모 선생님께서 번안을 다 해주셨지만, 연습하면서 많은 부분을 수정했다. 부르면서 입에 붙게 고치고, 시대를 반영한 말들로 바꾸는 과정을 거쳤다. 이번 공연 후기 가운데 ‘우리말로 바꾼 외국 작품인데 거슬리지 않았다’는 후기가 되게 감사했다. 거슬리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공연된 ‘안나 볼레나’ ⓒ라벨라 오페라단
▲2015년 공연된 ‘안나 볼레나’ ⓒ라벨라오페라단

이달 말 <안나 볼레나>로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참여한다.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였던 지난 2015년의 <안나 볼레나>와 올해 공연의 변화된 점이 있다면?

초연에 이어 라벨라오페라단(단장 이강호)과 함께 또 한 번 <안나 볼레나>를 공연할 수 있게 되어 감회가 남다르다.

당시엔 이 여자에 대한 감정적 이입이 너무 컸다. 앤 불린(Anne Boleyn)이 누군지도 모르던 상태에서 이 작품과 만났고,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영국에 가서 앤 불린의 무덤을 찾아 헤맸는데, 후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던 인물의 묘라고 하기엔 너무 볼품없었고 초라했다. 그녀의 비극적 최후가 나의 감정을 더욱 동요시켰던 것 같다. 오죽하면 초연 연출 노트 마지막에 ‘화려한 무덤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이 누워있는 안나 볼레나에게 바칩니다’라고 적었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건 초연에 최대한 쏟아부은 것 같다. 초연은 변형보다는 고증이 우선이라고 여겼고, 거기에 충실했다. 6년 만에 선보이는 재연에선 콘셉트를 어떻게 잡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역사라는 건, 후대에 의해 재조명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Re-illumination. 새로운 빛을 각 인물에게 비춰주고 싶었다. 초연엔 앤 불린에게 너무 과하게 몰입하다 보니 ‘얘 빼고 다 나빠’라는 심정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인물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었던 것 같다. 악의는 없고 상황에 맞는 선택만 있었을 뿐인데 그 선택이 삶과 죽음으로 이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부분이 잘 나타나도록 연출로서 표현해보고 싶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오는 5월 29일부터 30일까지 총 3회 공연된다.

작품을 연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품의 바탕이 되는 건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연출을 할 때 텍스트 공부를 열심히 한다. 그 후에 음악을 들어보고, 다시 텍스트를 본다. 연출로써는 텍스트가 우선이고, 극음악의 연출가로서는 음악의 결합이 가장 중요하다.

이제까지 했던 작품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혹은 만족스러운 것이 있다면?

전부 아쉽다. 열 손가락을 깨물었을 때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이 있고 덜 아픈 손가락이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가장 아픈 손가락은 <서푼짜리 오페라>다. 내가 자식은 없지만, 늦둥이 아이를 키운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데 뭘 해도 예쁘고,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데 엄마가 너무 가난한 거다.
그래도 조금 괜찮다고 자평하는 건 대구오페라하우스 신년 기획공연으로 선보였던 <아이다> 앙코르 무대. 처음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정리가 많이 됐다.

▲이회수 연출가ⓒ김재성 작가
▲이회수 연출가ⓒ김재성 작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

내가 쓴 대본이 하나 있는데, 창작산실에서 떨어졌다.(웃음) 장르는 블랙 코미디고, 제목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요)’이다. 조선 시대 애들이 나와서 ‘죽은 게 너무 억울하다, 다시 태어난다면 여기선 잘 살 텐데’라는 이야기로 진행되는 작품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이걸 잘 만들어 보고 싶다. 

어떤 연출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관객들이 ‘이건 이회수 작품이네’라고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싶다. 작품만 봐도 나를 알아차릴 수 있는 나만의 색깔. 더불어, 동료들에게 저 연출은 얘기를 하면 설득력이 있다는 평을 받고 싶다.

‘이회수’라는 연출을 믿고 작품을 믿고 보러 와주시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양진모 선생님이 ‘열심히 하지 말고 잘 하라’고 늘 말씀하신다. 잘 만들어서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을 계속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