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도시 공원의 적정한 밝기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도시 공원의 적정한 밝기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1.05.1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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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뉴욕시의 루즈벨트 아일랜드는 퀸즈와 맨해튼 사이에 흐르는 이스트 리버 위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유학시절 경제상황과 학교와의 거리 사이에서 타협한 최적의 동네였고 유엔 근무자들이 가족단위로 살아 안전하리라는 기대가 중요한 선정 계기가 되었다.

모두들 이국생활을 하는 공통점이 있어 그런지 쉽게 친해져 늦은 시간에도 공원에서 만나 산책을 하거나 잔디에 앉아 이야기를 하곤 했다. 주변이 어둑어둑해 질 때까지 남자들과 어린이들은 잔디밭에서 뛰며 공놀이를 했고 놀이터의 미끄럼을 즐겼으며, 강을 따라 산책을 하면서 바라보는 맨해튼 쪽 야경은 강물에 반사되어 엽서로 만들어진 사진처럼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다.

7월4일, 독립기념일이 되면 유엔본부 앞에서 불꽃놀이를 하는데 이를 구경하기 위해 이스트리버에 호화요트가 몰려오고 우리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강에 둘러쳐진 펜스에 달라붙어 불꽃놀이 보다 더 재미있는 요트 구경을 했다.

희미한 공원등 몇 개로 겨우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무섭거나 위험했다는 기억은 없다.

서울시에서 초등학교 3~6학년생에게 코비드-19로 제일 안 좋아진 것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친구를 못만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른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이런 저런 모임이 취소되고 그나마 소수로 모이는 모임도 10시면 끝을 내야하니 비교적 개인간 거리두기가 수월하고, 시간 제약이 없는 외부 공간으로 나오는 것은 이미 예측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코비드 상황을 지켜보며 도시의 공원이나 광장과 같은 공공 외부공간이 도시인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기능을 할 것이며 특히 야간의 이용이 늘어 날 것이므로 조명환경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행동에 대응할 수 있는 조명 환경이 이제는 요구되어 진다는 이야기를 강조해 왔다. 공원과 광장이 그저 안전한 밝기만 확보해 놓으면 그 기능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이전 보다 훨씬 외부공간에 대한 필요와 기대가 커진 지금 상황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야간경관 가이드라인에서 규정하는 보행로의 권장조도, 건축물 입면의 휘도 그리고 도로면의 균제도와 같은 수치들은 안전 그 이상의 기능이 필요 없었던 시절의 기준일 뿐 보다 복잡한 기능을 해야 하는 지금 도시의 조명환경에는 더 이상 절대적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야간환경의 조명계획은 그 수치에 의해 옳고 그름이 판단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실, 서울시는 이러한 도시 조명의 역할과 필요성을 알았고 다른 방식으로의 기준 마련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른바, 사회적 조명으로 친근한 공간에 대한 호감, 다양한 질의 밝음, 유희적 빛요소를 더한 도시 야경 등 밝기의 제공 방법을 달리하거나 심지어 적정한 수치 이상의 밝기 없이도 안전하다고 인지하는 조명방식에 대한 시도를 도시 곳곳에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공원과 같은 공공 공간에서는 그러한 시도가 부족해 보인다.

서울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공원 수만 세어도 약 50개에 이르는데, 대부분이 매우 여락한 조명 환경을 가지고 있다. 보행로나 산책길에 뜨문뜨문 등기구를 설치한 것이 전부이다. 수목이 무럭무럭 자라 조명기구에 간섭이 생기고, 떨어진 낙엽에 조명기구가 가려지기도 한다. 사계절 그 모습을 달리하는 수종은 여름에는 이파리가 무성하여 그림자로 어둡고, 가지만 남는 겨울에는 빛이 사방에 흩어져 빛공해가 된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어도 적절하지 않은 조명기구가 적절하지 않은 곳에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설치되고 있다.

몇일 째 안타까운 젊은이의 죽음이 뉴스거리다.

늦은 밤 한강시민공원에서 사고를 당한 이 젊은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드러나지는않았지만 강으로 실족했을 가망성을 이야기할 때엔 물과 뭍이 잘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주변이 어둡다는 제보를 했다. 전체의 한강시민공원이 충분히 밝지 않도 사실이고 일부 빛이 도달하지 않아 거의 암흑에 가까운 지역도 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이런 사고가 재발되지 않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야겠지만 그 중 하나가 더 많은 조명기구를 한강 시민 공원에 설치해야 한다고 누군가가 주장할까봐 걱정이다.

한강은 서울의 보석과 같은 자연경관이며 그 주변에 조성된 시민공원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비단 한강시민공원 뿐 아니라 서울의 모든 공원은 마찬가지로 도시에서 드물게 자연을 마주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는 야간에도 그렇다. 밤새 켜져있는 도로의 가로등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늦은 시간까지 불 밝힌 고층건물들, 쉬지 않고 정보를 뿜어내는 전광판. 이러한 빛으로부터 벗어나 어둠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조명기구 대신 물리적인 안전 장치를 보완하고 조명 환경은 어두워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원, 충분히 빛이 없어도 안심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정비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