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나나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나나
  • 윤영채
  • 승인 2021.05.21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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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일주일에 대략 10,000자 정도의 글을 쓴다. 7일을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많게는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남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글을 쓴다. 밤만 되면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갈 듯이 아프고 정신마저 탈진해 머리에서 이탈할 때가 있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이 나질 않고, 친구들과 약속을 한 번 잡으려면 잠을 포기하고서 서둘러 일을 해야 한다.

오늘은 근무 전에 급하게 치과를 가야 했는데, 지하철에서 서서 졸다가 뒤로 고꾸라졌다. 고양이 털과 커피 찌꺼기 따위가 묻은 더러운 옷에 또다시 지하철 바닥의 흙먼지가 묻고 말았다. 고맙게도 승객들이 도와준 덕분에 몸을 일으킬 순 있었지만,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몸에 묻은 오염을 닦거나 털어내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그런데 놀랍게도 몽롱한 정신으로 치과에 가면서도, 일터로 향하는 버스에서도, 틈을 내어 들른 피부과에서도 나는 내내 신이 나 있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감정은 유효하다.

지금의 나는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영원한 우정을 약속한 친구들이 늘 곁에서 나를 지켜준다. 정신없이 바쁘긴 하지만 일도 즐겁고, 동료들도 좋다.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매번 내가 맡은 업무나 과제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는 것이 큰 기쁨이라는 것도 알았다. 외면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존경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 사람처럼 단단한 내면과 용기를 가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취미도 놓지 않는다. 틈틈이 노래를 부르고, 요리도 한다. 애니메이션도 많이 본다. 아무리 바빠도 친구들과도 주기적으로 만난다. 이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지하철에서 뒤로 넘어지는 민망한 상황이나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받으며 이가 시렸던 것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행복하고 좋다. 지금의 나는 에게 사랑에 빠졌다.

행복은 예쁘고, 부유하며 똑똑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씨앗을 품고 태어난다. 일상에서 얻은 크고 작은 성취가 물이 된다. 그것으로 우리의 몸을 적시면, 껍질이 불어 조금씩 벗겨지고 그 안에서 싹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가족이 주는 사랑을 쬐고, 성취의 수분이 몸에 새겨지면 비로소 만족감이라는 잎이 핀다. 잎의 색은 짙어지고 꽃으로 피어난다. 가지고 싶었던 물건, 맛있는 음식도 좋지만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행복의 본질에 다가설 수 없다.

이걸 몰랐던 스물한 살의 나는 나아지기 위해 발악했다. 그러나 결국 행복할 순 없었다. 그땐 말 그대로 외면이 완벽해져야만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바보처럼.

여기 스물한 살, 가장 위태로운 나이에 멈춰있는 두 여자가 있다. 그녀들의 이름은 나나. 야자와 아이의 작품인 애니메이션 나나는 다른 목적으로 도쿄에 상경하는 오사키 나나와 고마츠 나나(별명은 하치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나나는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되겠다는 꿈과 아쉽게 헤어져야 했던 남자친구 렌을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오른다. 하치는 꿈도 목적도 없이 그저 도쿄에 거주하는 남자친구 쇼우지와 살기 위해 고향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무작정 몸을 싣는다. 나나와 하치는 목적도 성격도 말투도 뭐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다. 그러나 둘은 외부의 사랑을 갈망하는 불행한 존재다. 애인이나 담배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다. 어쩌다 룸메이트가 된 두 사람은 외로움과 20대의 방황을 함께 한다. 가혹한 운명이 자신들을 기다리는 것도 모른 채.

애니메이션 '나나'의 포스터 (위가 오사키 나나, 아래가 고마츠 나나다) (출처:https://blog.naver.com/)
애니메이션 '나나'의 포스터 (위가 오사키 나나, 아래가 고마츠 나나다) (출처:https://blog.naver.com/)

나나는 작가의 투병으로 인해 20096월부터 연재가 중단되었다. 아마도 이대로 멈출 것 같다. 열아홉에 처음 나나를 보았고, 스물한 살에서야 둘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대는 불안정한 시기다. 안정을 찾으려 해도 끝없이 불안할 것이다. 그러니 위태로워도 괜찮다. 그런 모두가 그랬을 시기니까.’ 언제부터인지 머리에 맴도는 구절이다.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도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사랑, , 미래 모든 것이 손을 뻗으면 흩어지는 연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특히 내게 스물한 살은 더더욱 어둡고 추웠다. 둘이 처음 만났던 그 겨울밤처럼.

나나는 결국 유명 레코드 사와의 계약에 성공했고, 신인가수로서의 화려한 삶이 시작된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를 잃고 사랑과 경쟁 그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그 무렵 또 다른 나나 즉, 하치는 일과 렌으로부터 나나를 빼앗긴듯한 상실감에 시달리고, 공허함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타쿠미와 결혼을 결심한다. 둘은 행복을 안정감이라고 착각한 채 잘못된 선택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걸로도 괜찮다고 매일 밤 자신을 위로한다.

그러나 그건 행복이 아니다. 행복이란 현재를 즐기는 것이고, 나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나로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체험이다. 겉모습만 보고 접근하는 인간들에게 쉽게 마음을 내어주고 상처받거나, 어떤 것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이걸 알기에 두 나나는 너무 어렸고 연약했다.

'나나' 속 한 장면 (출처:https://blog.naver.com/)
'나나' 속 한 장면 (출처:https://blog.naver.com/)

그렇게 나의 시간도 흘러갔다. 정확히 1년 뒤, 스물두 살이 된 나는 행복한 삶을 산다. 둘의 시간도 흐르고 흘러 더 성숙한 개체가 되길 바랐는데……. 그들은 여전히 멈춰버린 연재 속에 스물한 살로 남아있다. 잊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그녀들의 멈춰버린 시간이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병도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이 기대 또한 내겐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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