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딱지 13회
[연재] 딱지 13회
  • 김준일 작가
  • 승인 2009.12.24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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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몽키 스빠나 (3), 4. 형제 (1)

3. 몽키 스빠나 (3)

저 찬홍이 엄마 본명은 신길자고 예명은 신카나리압니다. 판도 한 장 내긴 했지만 별 볼일 없는 밤무대 가수였지요.

삼봉의 고백에 의하면 그 역시 별 볼일 없는 밤무대 사회자였고 지배인이라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미아리에 있는 캬바레에서 만나 여기까지 흘러 들어왔는데 물론 소원은 연예계에 진출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결국 둘 다 밤무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찬홍이를 낳게 되자 길자는 밤일을 그만두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서 패티 김과 같은 대형가수가 되는 게 소원이었지만 가수가 어디 체격만 가지고 되는 겁니까? 그리고 사실 크다고 다 보기 좋은 건 아니지요. 안 그래요?

정구와 미순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저 마누라가 좀 무섭게는 생겼지만 살림 하나는 똑 소리나게 잘합니다. 음식솜씨도 끝내 주구요.

삼봉은 무엇이 켕기는 갑자기 마누라 자랑을 늘어 놓았다.

이나마 이 집을 장만한 것도 순전히 저 마누라 덕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결정적인 흠이 있어요.
그게 뭔데요?
정구가 가만히 있기가 그래서 건성 물었다.

의부증입니다.
의부증이요?예 의부증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캬바레라는 데가 원래 댄서에다 가수에다 손님들까지 여자들 사태가 난 데 아닙니까? 저도 그 사정 뻔히 알면서 뻑하면 저렇게 몽키 스빠나를 들고 설치니 이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람이 어떻게 살겠어요?

삼봉이 407호로 돌아간 것은 새벽 다섯 시가 지나서였다. 그나마도 스스로 용기를 내서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 참다 못한 수동씨가 뛰쳐 나와 냅다 호통을 친 덕분이었다.

늙은이 잠 좀 자자 잠 좀. 마누라한테 쫓겨난 주제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 112에 신고하기 전에 당장 건너가지 못해?

407호의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정구가 아직도 겁에 질려 있는 삼봉의 등을 떠밀고 안으로 들어가자 길자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신발장 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몽키 스패너가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4. 형제 (1)

그 자는 학동수퍼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말이 좋아 수퍼지 마루나 평상에 걸터앉아 막걸리도 마시고 고스톱도 칠 수 있는 갈 데 없는 시골 구멍가게다. 그런데 서울에 나갔다 오던 정구가 담배를 사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자 그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형씨 저 주택에 새로 이사온 사람이오?
그런데요?

그자의 말투가 어쩐지 시비조였기 때문에 자연 대꾸도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새로 이사를 왔으면 동네 어른한테 인사라도 닦아야 하는 거 아니요?
동네 어른이 누군데요?
내가 바로 이 동네 어른인데.
그래? 이 동네에는 그럼 순 똘만이들만 사는 모양이군?
뭐야?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닥닥 들어 붙어 서로 멱살을 틀어 쥐었다. 수퍼 주인이 뛰어 나왔다.

상구 자네 왜 이래? 동네 망신시키려고 이러는 거야? 이거 놓지 못해?

주인은 그자의 등을 철썩 철썩 갈겼다. 그자가 먼저 손을 풀었다. 그리고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컵에 남아 있던 맥주를 훌쩍 마셨다.

저놈의 주택이 들어오는 바람에 우리 동네 인심이 사나워진 줄이나 알라구.

그자가 이렇게 중얼거리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