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수상한 그녀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수상한 그녀
  • 윤영채
  • 승인 2021.05.29 03: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아이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버스 요금으로 당연하게 1,300원을 내고, 책가방이 아닌 숄더백에 노트북과 짐을 들고 다닐 때, 술집에서 주민등록증을 미리 꺼내지 않게 되었을 때, 출퇴근이 일상이 되었을 때가 그렇다. 친구들과 만나는 사람이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이야기할 때,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마치 일평생을 성인으로 살았던 것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어릴 때는 고고학자나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고, 친구들도 각자 과학자나 화가가 되기를 소망했다. 그때는 그게 쉬울 줄 알았다. 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이뤄지고, 돈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이다. 돈 걱정에 밤을 설치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왜 그리도 그들이 불행한지 몰랐다. 차츰 중고등학생이 되었고, 그때 알게 되었다. 내가 내던 버스 요금 720, 내가 메던 책가방을 위해서 부모님이 매일같이 족쇄에 묶인 노예처럼 일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은 이런 것들이 오롯이 나의 부담이 되었다. 그저 바쁘게 일하고 돈을 받고 그 돈으로 나 하나를 건사하는 일이 익숙해질 때쯤 성인이라는 위치에 적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아이였던 때가 그립진 않다. 확실히 그때의 나는 세상에 던져지기엔 너무 겁이 많았고,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재능도 꿈도 없었으며 그저 놀기 바쁜 말괄량이 꼬마 아가씨였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몰랐고, 어른들은 친절하지 않았다. 툭툭 함부로 말을 내뱉는 어른들 사이에서 늘 상처받았고 소외됐다. 그래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 나를 제대로 알고, 책임지는 것이 꽤 맘에 든다. 청년기를 거쳐 중년이 된 모습도 기대된다. 지금보다 더 완벽히 적응한 성인의 는 어떤 사람이 돼 있을까? 궁금하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성인의 삶에서도 단 하나 두려운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노인이 된 먼 미래의 모습이다.

지금이야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돈을 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 기력이 없어지면 어쩌지. 돌봐줄 사람 하나 없거나, 있더라도 나를 귀찮은 노인으로 여기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 ‘늙는 건 원래 슬픈 일이다. 그나마 덜 슬프려면 돈이라도 있어야 한다.’던 한 유명 투자자의 말처럼 정말 늙는 건 마냥 슬픈 일일까. 그래서 젊을 때 몸을 혹사해서라도 돈 한 푼을 더 아쉬워해야만 하는 것일까.

영화 수상한 그녀의 주인공 오말순은 칠순의 노인이다. 노인 문제 전문가인 대학교수 아들 현철과 그의 아내 애자 그리고 손주 손녀인 지하 하나와 함께 산다. 땍땍거리는 그녀의 잔소리와 각종 스트레스가 더해져 그만 쓰러지고만 애자. 가족들은 그녀의 건강 악화가 말순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녀를 요양원으로 보낼 것을 건의한다.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던 말순은 우연히 들어간 청춘 사진관에서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영정 사진을 찍기로 한다. 50년은 젊게 보이게 해주겠다는 사진사의 말에 웃는 말순. 찰칵! 그런데 웬걸. 정말 50년이 젊어져 버렸다. 스무 살이 된 말순은 어릴 적 꿈이었던 가수로 데뷔하게 되고, 방송국 피디인 승우와 사랑에 빠진다. 남이 먹다 버린 시래기를 주워 먹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밤낮으로 울었던 과거와는 달리 행복한 청춘을 누린다. 그러다 손자 지하가 사고를 당하게 되고, 말순은 젊은 생을 모두 접어두고 지하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준다. 피가 나면 다시 노인으로 돌아가는 마법 탓에 결국 말순은 일흔의 노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사이 가족 간의 많은 갈등이 해결되었고, 말순은 손자와 손녀 그리고 한때 잠시 사랑했던 승우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영화 '수상한 그녀' 스무 살로 돌아간 말순 (출처:https://blog.naver.com/)
영화 '수상한 그녀' 스무 살로 돌아간 말순 (출처:https://blog.naver.com/)

영화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장면은, 모두가 그러하듯 스무 살의 말순이 손자 지하에게 수혈을 하러 가기 전 현철과 나누는 대화다. 현철은 울며 말순에게 말한다. “남이 버린 시래기도 주워 먹지 말고, 그 비린내 나는 생선 장사도 하지 말고, 자식 때문에 아귀처럼 살지도 말고, 명 짧은 남편도 얻지 말고, 나처럼 못난 아들도 낳지 마세요.” 말순은 대답한다. “아니. 난 다시 태어나도 하나도 다름없이 똑같이 살란다. 그래야 내가 네 엄마고 네가 내 자식일 테니까.”

영화 '수상한 그녀' 말순의 모습 (https://blog.naver.com/)
영화 '수상한 그녀' 말순의 모습 (https://blog.naver.com/)

인간은 아이로 태어나 아이로 죽는다고 한다. , 노인이 되는 것은 아이가 되는 일이다. 혼자 거동하는 것이 불편해지고, 의사소통이 조금씩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나는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데,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부정할 수 없다. 젊지 않다는 것, 늙었다는 것은 점점 사회에 딛고 일어설 자리가 줄어드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늙을 것이다. 그리고 죽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지금 가진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였고 베풀어온 사랑의 양이었다. 그것을 깨달았기에 말순의 삶은 한층 행복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없다. 포기를 대가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 그렇기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한 번쯤은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그 후회마저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사랑하는 지혜가 있어야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 이제 갓 성인의 삶에 입문했고, 선택의 갈림길에 선 적도 많지 않으니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여전히 늙는 것은 두렵다. 곁에 아무도 없이 쓸쓸하게 죽는 건 아닐지 두렵다. 그러나 이것만 기억하자. 무수한 시간을 거슬러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았는가. 소중한 것들을 잘 지켜왔는가. 그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나눠 주었는가. 성인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잃어 흔들릴 때, 위의 세 가지를 기억하도록 하자. 사랑 용기 그리고 지혜를 갖춘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