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아시아문화원, 그림 속 ‘전두환을 찢’ 문구 삭제로 논란 휩싸여
[Hot Issue]아시아문화원, 그림 속 ‘전두환을 찢’ 문구 삭제로 논란 휩싸여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6.01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CC, 5‧18광주민주화운동 특별전시 작품 훼손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제2, 제3의 문화예술블랙리스트 사건 우려돼”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국립아시아문화원(ACI, 원장 이기표)과 광주시 광산구가 협력해 지난 27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당장 직무대리 최원일)에서 개최하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 41주년 특별 전시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 하성흡의 수묵으로 그린 열사의 일대기》 소개에서 하성흡 작가 작품 중 일부가 훼손된 상태로 게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를 기록한 하성흡 작가의 작품에서 ‘전두환을 찢’이란 문구가 삭제 된 채 전시 포스터로 사용됐다. 훼손된 작품은 전시 개막 전 온라인에 게시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현장에도 공개됐다.

하 작가의 해당 작품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트럭에 타고 있는 인물들이 전단을 뿌리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인물들이 탄 트럭 앞에는 ‘전두환을 찢’이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매어져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포스터로 만들어지고, 아시아문화원 온라인에 게시되면서 해당 문구가 사라진 것이다.

▲포스터로 제작된 하성흡 작가 그림에서 특정문구가 삭제됐다(사진=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정상화시민연대 제공)
▲포스터로 제작된 하성흡 작가 그림에서 특정문구가 삭제됐다(사진=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정상화시민연대 제공)

5‧18민주화 운동 41주년을 맞아 민주‧인권‧평화를 주제로 한 문화프로그램 행사 중 하나로 꾸려진 전시에서 이러한 작품 훼손이 일어나 더 큰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논란이 심해지자 아시아문화원은 온라인에 게시된 포스터를 수정하고, 지난 26일 사과문을 게재했다.

문화원은 사과문을 통해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포스터를 ACC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과정에서 담당자의 실수로 특정문구를 삭제 하여 게시”했다며 사죄의 뜻을 전했다. 그런데, 작품 훼손을 ‘담당자 실수’라고 일축한 아시아문화원의 행보는 관련 단체와 지역 사회에 큰 실망감을 안겼다.

이에 지난 27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우리는 아직도 ‘블랙리스트’ 시대에 살고 있다 - 아시아문화원의 하성흡 작가 작품 검열 및 훼손 사건에 부쳐>라는 논평을 발표하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에게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아시아문화원 사과는 하 작가 작품 훼손을 ‘담당자의 실수’로 축소하며, 사건의 본질과 심각성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해당 사건을 작품의 특정 문구를 삭제하는 문화예술 검열사건,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파악하며 우려를 표했다.

논평에서 실천연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정부 주도하에 수천 명의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를 감시·검열하고, 배제 차별하기 위하여 수많은 공공기관이 총동원된 국가범죄라 표현했다. 이번 하 작가 그림 훼손 사건은 당시 블랙리스트 사건에 가담했던 이들에 대해서 솜방망이 처벌만 이뤄지고, 관련 공직자들이 여전히 문화예술행정 요직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에 야기된 문제라는 주장을 펼쳤다.

실천연대는 “이번 사건 또한 아시아문화원의 무성의한 해명으로 마무리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제2, 제3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아시아문화원 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정부의 노력도 촉구했다.

▲수정된 포스터로 전시를 안내하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진=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캡쳐)
▲수정된 포스터로 전시를 안내하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진=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캡쳐)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로도 활동했던 김미도 연극평론가(서울과기대 교수)는 “아시아문화원이 게재한 사과문에 있는 ‘담당 직원’의 목소리는 어떤 뉴스에서도 들어보거나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해당 사건은 ‘직원의 실수’로는 볼 수 없는 행위이고, 기관 내에서 조직적으로 행해진 의도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와 80여개 단체는 지난 28일 이번 특별전 이미지 훼손 책임자로 청와대 신임 문화비서관으로 임명된 이경윤 아시아문화원민주평화교류센터장을 지목하며, 그의 임명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건의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이 센터장이 청와대 신임 문화비서관으로 임명되는 상황은 계속해서 사회에 잘못된 사인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 본다”며 “아시아문화원의 사과문은 사건의 끝이 아닌, 철저한 진상조사의 시작점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박상희 조각가는 이번 그림 문구 훼손 사건을 ‘3.1운동당시를 재현한 작품에서 태극기문양을 지운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 것으로 표현한 것과 같다’라고 표현하며 황당함을 표했다. 박 작가는 “5.18민주 항쟁을 소재로 한 문학 등 모든 예술표현에서 ‘전두환’이라는 이름은 국가권력과 군인을 동원해 민중을 살해하고 무력 진압한 5.18 광주 항쟁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며 “민주항쟁의 마지막 시민군이자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투쟁기록화와 유물전시에서 이를 삭제했다는 것은 그 시대의 폭압과 야만에 대해 저항하고자 한 작품 정신을 지운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립아시아문화원이 있는 광주는 5‧18민주항쟁이 일어나고, 희생자들의 묘역이 있는 곳으로 다른 어떤 지역보다 군부독재와 폭압에 저항한 광주시민들의 증거로 남아 5.18영령들의 영혼과 피에 위로가 돼야 할 곳인데, 작품의 원형을 훼손하며 전시의 기본 취지를 약화시킨 것은 잘못된 처사”라며 “문화원 측에서 작가에게 사과했고 전시 전 원형복구가 됐다는 점에서 안도를 느끼나, 이를 계기로 차후에 동일한 일이 재발되지 않는 제도적 장치와 그에 따른 책임이 있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진=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진=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해당사건과 관련해 아시아문화원은 사건 원인을 ‘담당자의 단순 판단 실수’라고 밝힌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시아문화원 홍보팀장은 “이번 전시는 아시아문화원이 주최한 것이 아닌, 광주시 광산구가 주최했고, 문화원은 공간을 대관하는 공동주관자의 입장이었다”며 “이번 일은 홈페이지에 올릴 홍보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담당자가 문구가 과격하다는 개인적인 생각에서 그림 수정을 한 단순 실수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이 전시는 광산구에서 소규모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전시의미가 좋아 문화원이 먼저 광산구에 제안해서 준비를 한 것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전시 방향성이 불편하고 어떤 안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시아문화원에서 이러한 사업을 진행할 이유가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번 홍보물 게시를 담당한 직원은 원래 전시 담당이 아닌 지역협력팀에서 근무하는 직원으로 작품 훼손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지점도 있다”고 해명의 말을 전했다.

현재 아시아문화원에서는 담당 직원에 대한 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후 조사결과에 따라 사건에 대한 다음 행보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