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김민기, 아침이슬 50년》, 20세기 한국 저항 정신 기려
전시 《김민기, 아침이슬 50년》, 20세기 한국 저항 정신 기려
  • 이은영‧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6.1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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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오는 23일까지
김민기 아카이브 자료 및 트리뷰트 작품 전시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이지완 기자]시대의 아픔과 굴곡을 예술로 승화한 아티스트 김민기를 기리는 전시가 열린다. 그를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예술가로 세운 국민가요 <아침 이슬> 발표 50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강헌)이 주최하고 김민기헌정사업추진위원회가 주관, 한국대중음악학회와 협력한 전시 《김민기, 아침이슬 50년》이 지난 10일 문을 열어 오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된다. 김민기가 추구한 예술과 정신에 영향 받은 예술작가들이 완성한 오마주 전시다.

▲박재동, 아침이슬,  60.6x72.7, 캔버스에 아크릴, 2021 03(사진=경기문화재단)
▲박재동, 아침이슬, 60.6x72.7, 캔버스에 아크릴, 2021 03(사진=경기문화재단)

전시에는 김보중, 김수남, 김창남, 레오다브, 박경훈, 박영균, 박재동, 서원미, 양동규, 이강화, 이상엽, 이원석, 이종구, 이중재, 이태호, 임옥상, 임채욱, 정태춘, 최호철, 홍성담, 홍순관 작가 22인이 참여해 김민기를 기리는 트리뷰트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또한,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김민기 아카이브 자료도 대중에 선보인다.

개막 당일 10일 오후 4시에는 김민기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김창남 교수와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 토크 콘서트 진행하며 전시의 문을 열었다.

김민기의 역사로 바라보는 시대의 기록

1970년대 이후 지난 50년간 한국현대사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정신은 ‘저항’이다. 식민지와 분단, 전쟁, 개발독재와 산업화, 군사독재와 민주화 과정을 지나온 20세기 내내 한국인들은 억압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거대권력과 맞서면서 저항문화를 창출했다.

김민기는 시대의 문화를 예술의 언어로 표현한 인물이었다. 스무 살 청년기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아침이슬>을 비롯한 명곡들을 발표하는 싱어송라이터로, 노래극 <공장의 불빛>으로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한 사회적 실천가로서, <지하철1호선>을 비롯한 수많은 뮤지컬의 예술감독으로서, 한국 현대사 면면에 서린 저항정신을 노래 위에 수놓았다.

▲어린시절 김민기의 그림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어린시절 김민기의 그림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우리에게는 음악으로 익숙한 김민기는 사실 미술전공자다. 그는 어린시절 최욱경 화가에게 그림을 사사 받아 동년배 어린이의 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작품을 창작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61년 김민기 어린이의 연필 드로잉과 크레파스화, 수채화 등을 만날 수 있다. 어린시절 김민기는 오로지 그림을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를 확인했으며, 화학도를 향한 꿈을 올곧게 가지고 가 미대진학까지 이뤘다. 하지만 진학이후 자신의 미술작품은 남기지 않았다. 때문에 어린 시절, 내밀한 그의 정체성과 내면을 담은 그림은 관람객에게 그를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김보중, 냉정과 열정01, 97X 130cm, 캔버스 위에 유채, 2021(사진=경기문화재단)
▲김보중, 냉정과 열정01, 97X 130cm, 캔버스 위에 유채, 2021(사진=경기문화재단)

더불어, <아침이슬> 헌정 프로젝트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앨범 제작을 위해 촬영한 인물 사진과 그의 기록 사진들도 만날 수 있다. 김민기가 직접 그린 악보들을 비롯해 메모와 편지, 연출노트로 그의 내면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CD와 LP 앨범들을 비롯해 VHS 비디오테이프, 카세트테이프와 대본집이나 악보집, 프로그램 북과 포스터 등 학전극단의 활동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도 준비돼 싱어송라이터이자 감독이었더 그의 다양한 면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선 김민기 개인의 삶에서 그의 주변으로도 확장하는 시선을 준비했다. 그가 활동한 시대의 인물과 사건 자료를 전시장에 함께 담아냈다. 그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자료와 그의 외면에서 일어났던 거대한 흐름을 엮어보면서 김민기라는 사람에게 깊이 있게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저항의 정신

김민기 <아침이슬>을 부르던 시대에서 벌써 5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김민기가 표현했던 저항 정신을 공감하고 존경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예술인들의 헌정 작품도 이번 전시의 볼거리다.

전시에 작품을 출품한 22인의 미술가들은 김민기 예술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의 시대와 동행한다. 임옥상, 박재동, 이강화, 김보중, 이종구, 이태호, 홍성담 작가는 김민기와 동세대의 인물이다. 이들은 그 당시 세대가 갖고 있는 신념으로 김민기의 세계를 다시 불러일으킨다. 임옥상은 1970년대에 그린 구작을 통해 같은 세대를 살아온 김민기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고, 박재동은 김민기의 노래를 이미지화한 회화로, 김보중은 회화로, 이태호는 목판화로 그를 추억한다.

▲그림을 설명하는 박재동 작가(사진=서울문화투데이)
▲그림을 설명하는 박재동 작가(사진=서울문화투데이)

박재동 화백은 이번 전시에 김민기 캐리커쳐 뿐만 아니라, 그의 노래를 형상화한 작품도 선보인다. 그는 이번에 4점의 그림을 출품했는데, 여유가 있었다면 더 많은 작품을 그려보고 싶었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 작가는 “트리뷰트 작품 의뢰가 들어왔을 때부터 김민기 선생의 음악은 그림이 아주 잘 떠오르는 노래들이기에 많은 욕심을 갖고 있었다”라며 “‘앞에 가는 누렁아 왜 따라 나서는 거냐’와 같은 가사를 들으면 바로 그러한 장면이 떠오르는 듯하다”라고 김민기 노랫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박 화백이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아침이슬’과 ‘아름다운 사람’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했다고 한다. 하얀 화폭 위에 울고 있는 소년은 ‘아름다운 사람’의 노랫말을 형상화했다. 그는 3절로 이뤄진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 노랫말은 한국 현대사를 은유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박 작가는 “2절에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대목은 70년대 광장을 뛰어다니던 우리 청춘을 보는 것 같았고, 3절의 ‘새 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라는 가사는 힘든 시기를 딛고 지금 세상에 서 있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았다”라며 노랫말에서 느낀 감동을 표현했다.

김민기와 같은 학교를 다닌 박 화백은 그와의 개인적인 인연이 있기도 하다. 70년대에 ‘아침이슬’이 운동가요로 널리 불려지면서 김민기는 도망 다니고, 쫗기는 상황에 처해있었다고 한다. 그는 “김민기 선생이 힘든 상황 속에서 8년 동안 대학을 띄엄띄엄 다니다 보니, 학교에서는 같이 어울릴 수는 없는 선배였다”며 “하지만 내가 한겨레에서 시사만화를 그릴 당시에 김민기 선배가 한 번 찾아와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내가 그런 시사만화를 그리고 있으니 좋아하셨던 것 같다”라고 김민기와의 인연을 언급했다.

덧붙여, 그는 “삶은 살아가면서 항상 그 시대에 어떤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 들기에, 이번 그림은 그 시대와 김민기 선생에게 드리는 나의 헌정”이라고 작품에 담긴 의미를 풀어냈다.

▲박영균, 아름다운사람, 130×97cm, 캔바스에 아크릴, 2021(사진=경기문화재단)
▲박영균, 아름다운사람, 130×97cm, 캔바스에 아크릴, 2021(사진=경기문화재단)

이외에 김창남, 정태춘, 홍순관은 붓글 작품으로 김민기를 기리고 김수남, 최호철, 임재욱은 예전 김민기와 협업했던 작품을 선보인다. 이원석, 이중재는 김민기의 영향을 받은 후배 아티스트들로 각각 소조 작업과 비디오 아트를 선보인다.

▲레오다브, 거리에서 시작되다, 116.8X91cm, 스프레이 페인트,마커, 2021(사진=경기문화재단)
▲레오다브, 거리에서 시작되다, 116.8X91cm, 스프레이 페인트,마커, 2021(사진=경기문화재단)

이원석은 이번 전시에 박종철 열사와 그의 아버지 박정기의 만남을 형상화한 작품과 김민지 초상 조소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이 작가는 “86학번인 나는 김민기 선생의 ‘아침이슬’을 광장에서 들었던 세대였다”며 “87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민주화 운동의 시대를 연 지점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김민기의 초상을 작업하면서 계속해서 이전에 완성했던 박종철 열사 관련 작품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같이 선보이게 됐다”라고 말했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는 자신의 죽음이전부터 박 열사 옆자리를 가묘하며, 그 곳에 당신이 묻힐 거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실제 박정기씨는 박 열사 옆에 묻혔고, 이후 박 열사의 형 박종구가 이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했다고 한다. 같은 자리에 묻히면서 만나게 됐을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이원석 작품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원석 작품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 작가는 “박 열사 아버지가 한 ‘종철아, 아버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라는 말이 많이 맴돌았고, 작품도 그 애절함을 담고 있다”라며 “작품 위 구슬은 부자의 눈물, 시대의 눈물, 그리고 밝아오는 아침의 이슬”이라고 말했다. 박종철 열사를 기리는 작품 위에 놓인 투명한 구슬을 김민기 선생 초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현대사의 시작과 과도기, 하나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한 명의 개인에게 발현된 시간으로 한국 현대사의 맥락을 짚어볼 수 있다.

김민기 개인의 시간과 그를 기억하는 친구, 동료, 후배들의 시간이 같이 얽힌 이번 전시는 그의 삶이 이 사회에 선사해준 ‘저항’의 힘을 떠올리게 한다. 위대한 예술은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을 통해서 살아있는 사회적 연대다. 그가 만들고 전한 노랫말과 정신은 우리 사회가 마주하는 긴 밤을 지새울 수 있는 힘이 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