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야간경관 명소화사업, 이것만은 꼭 지켜주세요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야간경관 명소화사업, 이것만은 꼭 지켜주세요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1.06.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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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코비드 백신 접종이 가속화되며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포스트코로나에 하고 싶은 일 중 가장 으뜸인 것이 여행이고 보니 관광 활성화 사업도 갑자기 속도를 낸다. 특히, 올해 한국관광공사에서는 전국 야간관광명소 100개를 지정하며 야간경관 명소 탐방을 강조하고 나섰으니 지자체 별로 야간 볼거리, 즐길거리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야간경관 사업의 시작은 크게 두가지인데, 우선 밤거리 보행의 안전, 범죄로 부터의 안심에 대한 민원 해결이 한 가지이고 야간 명소화를 통해 관광을 활성화하고 주변 상권 살리기등 경제적인 이득을 증대시키려는 게 두 번째이다. 최근 ktx등 교통 수단과 도로망의 발달로 지역간 이동이 쉬워지면서 주간 관광객을 밤까지 머물게 하기 위한 야간 관광 컨텐츠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최근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다는 야간명소 몇 군데를 둘러 볼 기회가 있었는데 불편한 마음에 발걸음이 매우 무거워졌었다.

인공광원에 의한 빛의 오남용이 사람이나 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미 여러 해 동안 빛공해 방지법이나 야간 경관 조례를 통하여 필요한 곳에 적정한 양과 질의 빛을 사용하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고 이제는 어느 정도 빛에 대하여 절제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한편에서는 빛잔치를 벌이고 있음을 확인했다.

방문했던 명소는 하나같이 자연경관,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따져도 1,2종 - 자연녹지, 생산녹지 -에 속하는 지역으로 시민들에게 나무로 우거진 공원, 산책로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나무에 조명기구가 매달리고 산책로 가장자리에 흉한 기계들을 들여 놓았다.

나무나 곤충, 새 등 생태계에 대한 이슈는 말할 것도 없고 도시의 주간경관을 망치는 야간경관은 안하느니 못한 사업이라고 평소에 믿고 있던 터라 망쳐지고 훼손된 주간 경관에 죄스러웠고 일몰 후 불 켜진 공원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야간에 이용하자고 아름다운 주간 경관을 망치는 것이 가장 잘못된 조명계획이라 생각하고 도로의 가로등은 몰라도 공원의 공원등은 반드시 주간이미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공원 전역에 조명기구를 설치한 상황을 용감하다고 해야할지 무지하다고 해야할지 난감했다.

런던 큐가든 Kew Gardens 내 새클러 크로싱 Sackler Crossing 은 작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인공 요소가 어떻게 주,야간 기존 경관에 자리잡아야하는지를 말 해준다.

영국의 미니멀 건축가 존 퍼슨 John Pawson의 작품으로 2006년에 만들어 진 이 다리는 이미 250년전에 만들어진 공원의 컨셉- 우연히 마주치는 건축물과 우어한 곡선의 자연풍경-을 담아 호수면 위에 닿을 듯 배치하고 얇고 가는 세로 난간을 두어 시각적인 닫힘과 열림을 경험하게 하였다. 해가 지면서 난간 사이에 숨겨둔 바닥조명이 점등되고 검은 수면 위의 열리고 닫힘이 반복되는 불확실한 빛은 호수면에서 부유하듯이 다리의 우아한 곡선형태를 드러낸다. 적정한 조도, 현란한 색, 움직임. 우리가 흔히 야간경관 사업에 접하는 용어들로 이 다리의 조명을 설명할 수 없다.

인지하는 밝음은 매우 상대적인 것이어서 빛요소가 많은 우리나라 도시에는 조도계나 휘도계에는 표시되지 않는 밝음이 이미 존재한다. 때문에 루미에날레식의 야간경관, 조명조형물의 향연이 맥락없이 지자체를 떠돌며 반복된 아이덴티티를 창조해낸다.

모든 경관사업이 밝아지고 화려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절제된 빛에 의한 ‘아름다운 어둠’이 장소에 담긴 이야기. 아름다움을 충분히 드러내고 감동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은 - 매우 현실적인 부분인데 - 어떤 목적으로 시작되었던 야간경관 사업은 지역 주민과의 합의, 지지가 있어야 하고, 운영, 관리에 대한 계획이 명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야간 경관이 조성되면 방문객들은 어쩌다 한번 보게 되지만, 지역 주민들은 퇴근길 혹은 저녁 산책길에 매일 보는 야간환경이 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야간경관 명소화가 된 후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다면 성공한 야간경관 사업이라 자신해도 될 것이다.

야간경관사업은 조명기기의 설치가 필수 이며 이는 노후화 특성을 갖고 설치 환경이나 관리, 운용 조건에 따라 수명이 달라진다. 예산을 들여 잘 갖추어 놓은 시스템을 오류 없이 계획대로 쓰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데 좋은 시스템을 갖추어 놓고 운용을 못하는 경우,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관리자의 역량을 넘어선 조명관리 시스템이 갖추어진 경우 등등 설치된 조명기구가 꺼져있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올 여름은 포스트 코로나를 꿈꾸어 보자. 전국 야간명소 둘러보기 프로젝트로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행복한 에너지를 채워보자. 빛의 희열과 어둠의 감동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