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 예술의 가치와 효용성을 대학 구조 조정은 알고 있나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 예술의 가치와 효용성을 대학 구조 조정은 알고 있나
  • 주재근 한양대 겸임교수
  • 승인 2021.06.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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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 한양대 겸임교수

나는 아주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유치원을 다녀본 적도 없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영화도 보지 못했다. 군것질거리도 문화생활이 뭔지도 몰랐다. 그래도 매일 즐거웠다. 들판과 바다와 노을과 별이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어느날, 전교생이 200명 남짓 밖에 안되는 시골 초등학교에 여선생님께서 첫 임지로 부임하셨다. 선생님 자취방에 놀러 갔다가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남는 것은 베토벤의 석고 두상이다. 베토벤의 그 눈빛이 너는 후에 음악계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고 암시해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시골 촌 아이들에게 연극 춘향전을 가르쳐 주었고, 리코더 합주를 전문적으로 지도해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웅변을 따로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여수시를 거쳐 순천시 학생예술대회까지 출전하였다. 여수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2시간에 한번씩 오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놓쳐서 우리는 지나가는 경운기를 타고 간 적도 있었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춘향이의 본 고장인 남원에 가보자고 하여 여수역에서 기차를 타고 남원 광한루에 갔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오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바로 그때 시절이었다. 예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몰랐지만 예술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서울에 올라와 낯설음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리코더와 책과 클래식 음악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인생의 과정들을 예술로 차분하게 겪을 수 있게 해 주신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내 삶이 얼마나 각박했을까..

최근 대학교 신입생 미달 사태 속에 위기에 몰린 지방대학이 구조조정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된다. 예전 IMF경제 위기때 회사가 부도 직전이나 파산 위기로 회사가 어려워 구조조정 한다는 이야기가 이제 대학 학과로 옮겨지고 있다.

회사는 재정상황이 나아지면 새로운 인력을 다시 채용할 수 있지만 대학에서의 구조조정은 다시는 번복할 수 없다는 데에 큰 문제가 보여진다.

공학이나 사회, 경영계열은 과학기술과 경제 흐름에 따라 통폐합이 가능할 수 있을 지언정 취업에 불리한 인문·예능 계열 학과들에 대한 통폐합은 시대적 가치를 읽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 신라대는 무용·음악학과 등 예술 전공의 폐과를 단행하였고, 동국대 한국음악과는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였다. 이와같은 현상은 이미 우석대, 원광대 등에서 몇 년전부터 시행되었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자 환태평양 중심 도시로 도약하고자 하는 부산에 무용학과는 부산대 한곳 밖에 남지 않고 국악학과도 거의 마찬가지 실정이다.

예전 판소리 명창 송만갑 선생이 예술가는 포목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소리꾼은 포목상 주인처럼 손님이 비단을 달라고 하면 비단을 주고, 무명을 달라고 하면 무명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만갑 선생이 활동했던 일제강점기 시기와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대와 사회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비단이나 무명을 주고 싶어도 찾는 손님이 거의 없는데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포목상 주인과 소리꾼이 지금의 대학 예술계열 학과가 아닐까? 예전 소리판이 극장으로 옮겨 지면 극장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극장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지면 온라인을 이해해야 자생할 수 있다. 지금 많은 예능계열 학과 교수들이 극심한 시달림을 받고 있다라고 듣고 있다. 교육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일반 원칙론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위기에 직면해 있는 예능학과 교수들이 먼저는 사회 환경 변화를 더 빨리 넓고, 깊게 읽을 수 밖에 없다.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고 하였다. 예능계 교수들이 모여 자원을 정비하고 전략과 전술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 AI(인공지능)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점차적으로 많아지겠지만 절대적으로 따라올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예술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음악,미술,연극,무용 등 예술 분야 인재 양성은 AI로 대변되는 미래 사회를 대비해 정책적으로 육성해야 할 분야이다. 삶의 위기에 봉착하였을 때 헤치고 나아갈 지혜,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 등은 모두 자신이 내면에 쌓아 둔 예술적 경험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렸을 때 접한 예술적 경험은 평생 그 사람의 아우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최첨단의 비행기가 있어도 조종사가 없으면 비행기는 제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한다. 우수한 어린이가 있어도 예술적 경험을 멋있게 선사할 선생님이 없으면 우수한 어린이의 심성은 화려한 꽃을 피우지 못한다.

이 시대 예술교육의 참다운 가치와 필요성, 효용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예술이 좋아 전공으로 푸른 꿈을 꾸고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대학에서부터 더 이상 좌절의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 사회가 진정 행복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