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개체 혹은 집단에 대한 유비로서의 미시세계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개체 혹은 집단에 대한 유비로서의 미시세계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1.06.1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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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Ⅰ.

사진을 통해 윤한종이 발언하고자 하는 것은 아주 작은 사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령 스마트폰 안에 들어있는, 크기가 약 1-4mm 정도 되는 전자부품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대상들을 산업용 광학계(카메라, 렌즈, 조명)를 이용하여 촬영한다. 그런데 이처럼 작은 전자부품들을 고도로 발달한 특수 산업용 카메라로 촬영하는 윤한종의 사진 작업은 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그것은 그의 남다른 이력에서 출발했다. 비록 나중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긴 했지만, 그는 원래 공학도였다. 공과대학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한 그는 일찍이 산업현장에 뛰어들어 다년간 전자회사에 근무했고, 나중에는 전자부품 시각적 검사 장치를 개발, 생산하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러니까 현재 윤한종의 사진작업은 직업과 직접적 관련이 있으며, 산업현장에서 보고 느낀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사진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는 사진작가의 이력으로는 아주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소재적 차원에서 대상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시각적 검사장치로 전자부품들을 검사하면서 겪은 숱한 체험과 관찰들을 작품 속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윤한종이 자신의 작품에 붙인 제목은 <보이지 않는 존재_Invisible Beings>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가 자신은 이에 대해 “보이지 않는 존재, 즉 아주 작은 전자부품을 통해 인간 사회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는 유추하자면 작은 전자부품 하나를 사회를 이루는 각 개인에 비유하고 싶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존재> 연작은 <개인 시리즈_Individual Series)와 사회 시리즈_Society Series>로 나뉜다. 전자는 한 개의 전자부품을 고배율의 카메라로 촬영, 크게 확대한 것이며, 후자는 1만 개에 이르는 전자부품의 작은 사진을 한 화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조합, 배열한 것이다.

그러면 작품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된 사회를 바라보는 윤한종의 시선은 과연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발언을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간다. 인생을 살면서 실수와 실패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이 사진 안에 담고 싶었다.” -윤한종, <작업노트> 중에서-

여기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작가가 사회에 제시하고 싶은 메시지의 핵심을 이룬다. 일종의 사회적 치유로도 간주할 수 있는 이 메시지는 “예술이 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이른바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부응하고 있다. 그는 시각적 검사대상인 작은 크기의 전자부품들이 양품과 불량품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보며, 쓸모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단순 분류되는 사회적 속성을 유추해 냈다. 따라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의 메시지 속에는 소위 사회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삶의 이력에는 수많은 실수와 실패가 바닥에 깔려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윤한종은 이러한 극적 효과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전자부품들의 표면을 화학적으로 부식시키거나 물리적으로 흠집을 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함이 없는 사람을 선호하는 사회를 완곡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윤한종의 사진작품은 형식주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작품이 지닌 미적 측면의 장점이 더욱 잘 드러나게 된다. 이른바 단색조로 이루어진 그의 <보이지 않는 존재_Invisible Beings)>, 그 중에서도 특히 ‘집합적 미’를 다룬 <사회 시리즈> 작업은 흑백작품으로써 즉물적 사실주의 사진미학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Ⅱ.

<보이지 않는 존재> 시리즈에 이어서 윤한종이 몰입해 온 <가공되지 않은 존재_Untreated Beings> 시리즈는 “사물은 물리적으로 물성과 형태가 있다. 그 형태는 형(꼴)과 색상으로 구성되지만, 사물의 물성과 색상은 어떤 연결고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그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담고 있다. 그리고 윤한종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사진작업을 통해 그러한 연결고리의 탐구와 해체를 시도한다.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가공되지 않은 존재>는 다시 <본질적인_Essential> 시리즈와 <변태적인_Metamorphic> 시리즈로 구분된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전자는 “고정도 산업용 칼라 카메라와 백색 낙사(落射) 조명을 이용하여 1.4mm 크기의 전자부품을 고배율로 촬영하여 형상화한 것”이다. 후자 역시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10,000개 이상의 잔자부품을 적색, 녹색, 청색 돔 조명으로 촬영한 후 그 각각의 사진을 오려서 100x100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본질적인> 시리즈는 작은 크기의 전자부품을 400-800배로 확대하여 재현한 형상으로써, 육안으로는 인식이 어려운 미시 세계에 대한 관람객들의 사유를 이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 윤한종은 사회적 개체로 유비되는 단독자로서의 전자부품의 진면목과(<본질적인> 시리즈) 그러한 개인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이루어진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기법적인 측면에서 볼 때, 기존의 <보이지 않는 존재_Invisible Beings> 시리즈가 동축 조명을 사용하여 흑백 카메라로 찍었다면, <가공되지 않은 존재_Untreated Beings> 시리즈는 낙사조명을 이용하여 칼라 카메라로 찍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즉 후자에 이르러 윤한종은 비로소 칼라 사진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100x100의 조합 형식을 통해 미적 완성도에서 현격히 수준 높은 단색조 미학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이 기법은 매우 높은 집중도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이 일련의 작업이 얼마나 까다롭고 복잡한 공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 알기 위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선 촬영의 전개 과정을 예로 들면 Red/Green/Blue 각 조명군별로 12단계의 밝기로 각 단계별 10,000개를 촬영하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공정을 거치니, 관람객이 감상하는 군집 단색조 사진작업은 이 일련의 복잡한 과정의 결과물인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