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 교수, “지천명에도 무대가 두렵지 않다”
김순정 교수, “지천명에도 무대가 두렵지 않다”
  • 이은영 국장
  • 승인 2009.12.2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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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 무대에서…선 자리가 아름다운 발레리나

무대에서 날아갈 듯 우아한 한 마리의 백조 같은 자태를 보여주는 발레리나들. 발레리나를 떠올리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항상 공주님처럼 예쁜 발레복과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가 떠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우리 나이 40을 넘기면 발레리나로서의 수명은 다 했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그 불문율을 깬 이가 바로 여기 있다. 성신여대 스포츠레저학과 김순정 교수는 지천명의 나이에도 여전히 무대에서 아름답다. 그녀를 만나 발레를 통한 그녀의 예술과 삶, 교육자로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발레는 어려운 것이 아니예요. 사실 온 몸에 각을 없애는 거죠.”

아무렇지 않게 몇 동작을 직접 보여주는데 역시 천상 발레리나답다. 올해 한국나이로 50이라는 말이 절대 믿겨지지 않을 만큼, 20대도 울고 갈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를 소유한 김순정 교수.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발레리나는 40이 되면 무조건 은퇴한다는 설은 그녀 앞에서는 무색해지고 만다.

그녀는 누구보다 무대에서 맹활약 중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는 1월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기획한 발레 ‘사운드오브뮤직’의 주인공인 마리아역을 맡았다.

김 교수에게 자신을 끊임없이 무대에 서게 하는 그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하고 묻자 김 교수는 되려 자신이 공연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고 답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도 저를 써 준다는 게 감사한 일이죠. 마리아 역을 제의를 받았을 때 많이 놀랐어요. 참 매력적인 역할인데 배역을 정할 때부터 저를 생각하고 제가 꼭 해줬으면 한다고 말까지 해 주셨으니 정말 감사했죠. 상대역은 이원국 씨가 하게 되는데 그런 것 자체도 참 감사하고요. 감히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이것도 또 하나의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러시아, 춤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다

도전이라는 단어는 그녀와 참 어울리는 단어다. 발레리나와 교수라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해야 했던, 늘상 위기로 가득한 삶을 살면서도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말이나 어려운 상황은 중요하지 않았다.

발레리나라는 예술을 원하는 열정이 오늘날의 그녀를 있게 했다. 물론 그녀는 어려서부터 무용에의 끼를 발견하고 예원, 서울대, 국립발레단에 이르는 엘리트 수순을 밟아 왔으며 발레를 빼고는 설명 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녀의 무용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것은 단연 러시아에 가서 발레 교육과정을 공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맡고 있었고 그냥 그렇게 수순을 밟아 가면 별 탈 없이 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사실 제 스스로는 굉장한 위기를 느끼고 있을 때였죠. 제가 러시아에 간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간다는데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저를 바라보셨어요. 하지만 저는 러시아에 가서 3년간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수법을 계발하면서 어떻게 하면 춤을 잘 출까 그런 것을 생각하기도 했고요. 젊을 때 국립발레단에서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 보다 타고난 몸을 가진 편이었음에도 몸이 많이 아프고 부상을 종종 당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춤도 잘 출수 있을까 그런 것도 많이 생각했죠.

러시아에서 춤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뀐 것 같아요. 다녀와서 그 전보다 저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고요. 만약 제가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몸도 무너지고 지금의 제 모습을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예술을 항상 우위에 두었기 때문에 자연히 좋은 교육자도 되어 가는 것 같고요.”

러시아 인들에 반하다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하는 그녀는 러시아에서 만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여념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선 러시아가 평가 절하가 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예술만큼에서는 전쟁 통에도 국립극장의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나라가 바로 러시아예요. 어쩌면 일상  생활이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보니 영적인 것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예술이 자연스레 생활 속으로 스며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요.

러시아에서는 문화채널이 있어서 공연을 실시간으로 상영하고 있어요. 돈이 있는 사람들은 직접 공연장을 찾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문화를 향유 할 수 있게  해주지요. 어쩌면 이런 것을 두고 공산주의의 역설이 성립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녀의 말을 통한 러시아의 극장 사정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러시아는 국가 차원에서 인민들을 위해 많은 극장들을 세웠어요. 보통 문호들의 이름을 딴 극장들이 많이 있는데 고리끼극장만 해도 1년 열 두 달 동안 고리끼 작품을 상연해요. 체홉극장에서는 체홉 작품들을 연중 상설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죠.

하루는 발레, 그 다음날은 오페라 그런 식으로 1년 동안의 공연 계획이 미리 세워지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도 자기가 볼 공연을 미리 선택할 수 있어요. 레퍼토리 시스템 자체가 정착이 되어 있고 단원들 주역 층도 두터워요. 러시아도 이러한 것들을 하루아침에 이루어 낸 것은 아닌 만큼 우리도 노력해야겠지요.”

‘에스메랄다’... 최고의 순간

그녀에게 발레리나로서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아무래도 노틀담의 꼽추에서 에스메랄다 역할을 맡았던 적이 아닐까 싶어요. 이시다 다메호라고 일본대 미학과 출신이자 지성적인 안무가가 직접 연출을 하신 작품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빅토르 위고 원작의 향기가 나오는 그런 발레작품이었어요.

저는 무대에 서면서 항상 생각해요. 지금이 가장 좋을 수 있다고. 저는 무대에서 더욱 몰입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게 제 강점이지요.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즐기고 무대에 섰을 때 사람들이 ‘접신’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데 저도 제 힘으로 공연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웃음)

그녀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바로 아들과 외교관인 남편. 아들은 어렸을 때 열심히 자신의 일을 위해 투신하는 엄마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조금만 욕심을 덜 부리면 우리도 다른 가정처럼 화목하게 살 수 있지 않겠냐’며 불만을 가졌던 아들이 이제는 엄마의 공연을 직접 모니터링하는 열혈 관객이 됐다. 김 교수는 현재 우즈베키스탄 공사로 근무 중인 남편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많다고 했다. 

“보통 외교관이면 아내의 내조를 톡톡히 받아야 할 텐데 저희 남편은 그런 면에서 참 복이 없는 편이예요. 심지어 러시아를 갔을 때도 제가 남편을 따라 간 것이 아니라 남편이 저를 따라와 주었을 정도이니까요. 남편도 참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하자’ 라는 말을 해주는 남편이 늘 더없이 고마워요.”

인기 막강 교수님... 온 몸의 각을 없애자

김 교수가 성신여대 스포츠 레저학과 교수로 부임한지도 어느덧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학생들을 만나며 그녀는 교양과목으로 무대매너와 몸매관리 강의를 했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말을 이었다.   

“무대매너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면서는 일주일에 120여명 학생들을 만났는데 무용과 학생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죠. 발표수업을 내주면 다들 PPT를 기가 막히게 해 와요. 프리젠테이션도 하고 갖은 끼를 보여줬지요.

저는 현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은 글로벌 리더로서의 실력과 국제적인 매너를 갖추고 자신을 표현한 일이 많기 때문에 이 수업이 참 유익하다고 생각해요. 학기 시작에는 막상 쭈뼛쭈뼛했던 학생들도 학기 말이 되니까 참 당당한 자세를 보여 주더군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하는 순간이었죠.”

몸매관리에 대한 강의는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이 자자할 정도란다.

“저는 발레가 오직 발레 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운동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한 학생이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그 병원에서 제가 수업시간에 가르쳐 준 동작들을 해보라고 했다며 매우 놀랐다는 거예요. 그 만큼 의학적으로도 발레자세가 몸매나 자세교정에 역할을 한다는 거지요.”

그녀는 그 동안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책 출간도 준비 중에 있다. 올해는 발레 입문서 책을 하나 번역해서 1월 중 출간 앞두고 있다.

“발레는 결국 온 몸의 각을 없애는 거예요. 우리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엉덩이 뒤쪽과 무릎 뒤, 어깨 등지에 각을 만들 수가 있어요. 무용도 마찬가지예요. 교육이 잘못 이뤄지면 도리어 힘을 주게 되서 숨을 못 쉴 정도로 부 자연스러운 동작을 하게 되지만 각을 없애고 편안하고 바른 자세를 취할 때 아름다운 동작도 나오게 되지요. 많이들 연구를 하고 있지만 결국 이렇게 쉬운 것이라는 것을 저도 최근에야 깨닫게 됐어요.” 

발레,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기를 꿈꾸다  

이렇듯 안팎으로 완벽하기만 한 그녀의 앞으로의 꿈은 무엇일까. 그녀는 앞으로 우리나라에 발레가 좀 더 자리매김을 잘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발레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발레가 대중화 되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발레 자체에 대한 문화가 성숙해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저는 예술가들이 벽에 부딪힐 때 철학의 부제에서 오는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봐요. 양적으로 많은 공연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질적인 차원의 좋은 공연들이 많아지고 또 적절한 교육을 통해 많은 사람들 가슴속에 새겨 줄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또 발레는 서양 것이니까 한국 무용을 더 지켜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이 두 분야가 각각의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레 자체가 춤이라는 뜻이고 또 발레 속에도 민속무용들을 다루는 캐릭터 발레라는 것이 존재해요.

즉 발레는 모든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전통 무용을 고수해 가는 분들도 반드시 필요하고 발레만 놓고 본다면 18~19세기의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발레단, 실험적인 발레 등을 공연하는 작은 발레단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올해 성신여대 스포츠레저학과에는 20여명의 선발 학생 중 발레 전공 학생을 5명 정도 선발 할 예정이다.

인터뷰 이은영 국장 young@sctoday.co.kr
정리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
사진 김형관 객원사진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