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과한 시도 속 흩어지는 ‘한국무용’…국립무용단 <산조>
[공연리뷰]과한 시도 속 흩어지는 ‘한국무용’…국립무용단 <산조>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6.24 18: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립무용단 4년 만의 신작
6.24~26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안무 최진욱, 연출 및 무대ㆍ의상ㆍ영상디자인 정구호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산조(散調).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 기악 독주곡으로, ‘흩어질 산(散)’, ‘가락 조(調)’를 뜻하는 이름 그대로 ‘흩어진 가락’ 혹은 ‘허튼 가락’으로 풀이된다. 다양한 장단과 가락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선율을 만들며, 정통과 즉흥이 교차하는 특징 때문에 서양의 재즈에 비견되기도 한다. 

▲국립무용단 ‘산조’ 1막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산조’ 1막 ⓒ국립극장

국립무용단은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의 주제로 ‘산조’를 선택했다. 한국무용으로 평생을 수련한 국립무용단 무용수의 몸이 무대 위에서 산조의 음악을 만나 어떤 자유로운 흐름과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국립무용단은 작품을 총 3막 9장으로 구성했다. 1막은 정제된 음악과 춤으로 균형을 설명하는 ‘중용’(中庸), 이어지는 2막은 불균형 속 균형을 표현하는 ‘극단’(極端), 3막은 불협과 불균형 가운데 탄생하는 새로운 균형 ‘중도’(中道)를 주제로 춤을 선보인다.

1막은 산조의 시작을 알리는 고수의 북 장단이 시작되면, 지름 6m의 대형 바위가 허공을 가르며 무대 위로 내려온다. 담백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장단에 맞춰 머리에 가채를 얹고 긴 비녀를 꽂은 여성 무용수의 정제된 움직임은 남녀가 함께 추는 군무로 이어진다.

▲국립무용단 ‘산조’ 2막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산조’ 2막 ⓒ국립극장

2막은 완전히 상반된 에너지를 보여준다. 불균형의 움직임과 음악의 불협화음으로 중용과 정반대인 극단의 형태를 만들게 된다. 무용수들은 모았다 흐트러트렸다 조였다 풀었다 하는 박자와 리듬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는데, 극단을 연결하는 시각적 요소로 가로 40cm부터 2m까지 다양한 길이의 막대가 소품으로 쓰인다. 또한 공중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크기와 위치, 개수를 달리하는 삼각형 조형물은 무대 위 불안정함을 극대화한다.

3막에 이르러 정적인 움직임과 동적인 움직임이 합쳐진 종장(終章)은 새로운 균형의 미학으로 완결된다. 음악적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추상적인 조형물과 원형 LED 조명은 흩어짐과 모임의 미학을 간결하지만 강렬하게 빚어낸다. 

▲국립무용단 ‘산조’ 3막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산조’ 3막 ⓒ국립극장

아울러 작품에 사용되는 음악은 전통 산조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1막은 황병준 프로듀서가 이선화(거문고), 김동원(장고)과 함께 거문고 산조를 녹음해 정통 산조의 매력을 들려준다. 황병준은 “전통을 세련되게 해석하는 정구호의 작품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라며 “음악과 무용을 한 데 아울러 오감을 만족시키는 무대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2막과 3막은 대표작 ‘다크니스 품바’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현대무용가이자 작곡가인 김재덕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산조를 일렉트로닉 선율에 담았다. 김재덕은 “3막의 음악은 김영길 명인의 아쟁 산조를 듣고 점차적으로 고조되는 장단에서 볼레로와 같은 폭발적 에너지를 떠올리며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국립무용단 ‘산조’ 2막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산조’ 2막 ⓒ국립극장

국립무용단의 ‘산조’는 불균형과 불협화음 속에서 새로운 조화를 찾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비조화가 이루는 조화로움을 지향했으나, 하나를 이루지 못하고 ‘흩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음악, 무대, 영상, 의상, 소품 등 각각의 요소들을 살펴보면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상의 미학, 소품의 활용 등에 치중한 나머지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할 춤이 주변 요소에 오히려 압도당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산조’의 연출 및 무대ㆍ의상ㆍ장신구ㆍ소품ㆍ영상 디자인을 맡은 정구호 연출은 ‘단’, ‘묵향’, ‘향연’ 등의 작품을 통해 국립무용단과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춰왔다. 정 연출은 “한국무용은 반짝이는 원석이기에 보여주는 방식만 조금 달리해도 우리 전통은 극도로 모던할 수 있다”라며 “관객들이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영하는 춤의 원형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이번 작업의 목표”라고 밝혔다.

▲국립무용단 ‘산조’ 2막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산조’ 2막 ⓒ국립극장

공연ㆍ미술ㆍ패션ㆍ영화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남다른 미학을 제시해온 디자이너 정구호는 지난 2013년부터 국립무용단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아울러 정구호만의 색감과 디자인 센스, 현대적 안목은 순수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점은 높이 살 수 있다. 

그러나 국립무용단은 전통과 민속춤을 계승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동시대 관객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현대적인 작품개발을 위한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단체이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창출되는 춤의 새로운 원형에 주목하고 있다. 전통보전과 계승, 창작, 대중화, 세계화의 변곡점을 제시하는 셈이다. 

4년 만에 선보인 국립무용단의 신작 ‘산조’에서 기본으로 두어야 할 한국무용은 심미적 요소로만 남아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과도한 전통의 현대무용화 욕심으로, 국립무용단과 한국무용의 본질이 훼손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