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시간을 달리는 소녀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시간을 달리는 소녀
  • 윤이현
  • 승인 2021.06.25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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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다중우주를 믿는다. 내가 놓친 선택들로 이어진 또 다른 세계, 그 무한한 가능성의 수가 만들어낸 또 다른 여러 명의 ’. 그들이 사는 세상이 어딘가에 펼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 항상 다중우주의 가능성을 떠올린다. 가장 멋진 미래에 도달할 수 있길 바라며 제일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친구에게 일자리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고, 사장님의 극성에 진이 빠져버린 나는 결국,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번 주까지 의무를 다하고 당분간은 몸과 마음을 돌보기로 했다. 주말에 지나와 단둘이 가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일했던 순간은 이제 과거가 되어버렸고, 앞으로 서서히 돈에 쪼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다고 입시에 더 집중할 수 있을까? 오히려 너무 시간이 많아져서 나태해지면 어쩌지? 과연 잘한 선택일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름날 오후, 아픈 머리를 감싸고 가만히 누워서 영화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2007년 작, 호소루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은 마코토는 고교생이다. 코스케와 치아키는 동급생으로 그녀와 절친한 사이다. 시험을 망치고 청소 당번이 된 마코토는 우연히 과학실 쪽방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빛나는 작은 물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그녀는 미끄러져 뒤로 넘어지게 되고, 과거로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얻게 된다. 그날 이후 자전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아 죽음에 이를 뻔한 순간에도 그녀는 몇 분 전으로 돌아가 자신의 목숨을 지킨다. 그리고 이것이 타임리프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상황을 좋게 바꾸거나, 코스케와 가호 사이를 이어주는 일 따위에 계속 타임리프를 쓰게 된다. 그러다 치아키로부터 고백을 받게 되고, 이것이 부담스러웠던 그녀는 시간을 몇 번이고 되돌려 없던 일로 만들고 만다. 이후 자신의 친구와 연애 감정을 싹틔우는 치아키의 모습을 보면서 묘한 서러움과 질투를 느낀다. 연인이 된 코스케와 가호는 망가진 마코토의 자전거를 빌려 타는 과정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들을 살리기 위해 또 한 번 타임리프를 쓴 마코토, 어느새 자신에 팔에 새겨진 타임리프 가능 횟수가 다 소진되었음을 알게 된다. 동시에 치아키가 미래에서 타임리프를 통해 현재로 온 존재임을 알게 되고, 규칙에 따라 치아키는 사라지고 만다. 그때야 마코토는 자신이 치아키를 사랑했음을 깨닫는다. 마코토는 치아키가 돌려놓은 시간 덕에 생긴 단 한 번의 기회를 사용한다. 둘은 다시 만나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고백한다. “기다릴게, 미래에서.” 그렇게 각자의 세계로 돌아간다.

가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선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바보 같은 선택이었던 경우가 있었고, 이런 작은 후회는 여전히 내 몫으로 남아 있다. 그때 그 친구와 절연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한강에 나란히 앉아 함께 인생 이야기를 하며 맥주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거나, 짝사랑했던 그 사람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아쉬움이 남진 않았을 텐데. 일찍 현실에 눈을 떴더라면,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그러나 우리가 달리고 있는 시간은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간다. 뒤로는 달릴 수 없다. 아주 먼 미래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사는 우주에서는 타임리프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도 여전히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현재의 만 있을 뿐이다.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치아키와 마코토 (출처:https://blog.naver.com/)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치아키와 마코토 (출처:https://blog.naver.com/)

2000년 여름에 태어나 2021년의 여름에 당도했다. 지금까지 스물두 번의 여름을 맞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사소한 추억들이 잘 떠오르지 않고, 현실에 치여 살다 보니 마치 과거에서 지금으로 시간을 뛰어넘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시간 이동은 이런 것이다. 과거를 잊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 후회를 딛고 오늘을 사는 것, 더 나아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그래서 일을 잠시 그만두기로 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그만뒀다고 해서 그것을 친구나 동료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을 미워할 생각이 없고, 온전히 사랑하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다중우주 속엔 시간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다. 20년 전의 나, 10년 전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내일의 가 사는 세상이 존재하는 우주도 있다고 믿는다. 비록 지나간 날을 되돌릴 방법은 없고, 그 수많은 다중우주 속에 더 나은 삶을 사는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죽는 순간의 에게 도달하기 위해, 조금이나마 나은 미래에 도착하기 위해 우리는 모두 시간의 길 위를 달린다. 치아키가 아닌,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를 마주하기 위해서.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포스터 (출처:https://blog.naver.com/)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포스터 (출처:https://blog.naver.com/)

금방 갈게. 뛰어갈게. 미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