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바리톤 김기훈 “슬럼프를 극복하며 나는 성장한다”
[Special Interview]바리톤 김기훈 “슬럼프를 극복하며 나는 성장한다”
  • 임동일 유럽문화 전문기자
  • 승인 2021.07.01 15:31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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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카디프 콩쿠르 아리아 부문 첫 한국인 우승자

“Mein Sehnen, mein Wähnen(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

가사가 아름다운 소리를 만나 음악이 되는 순간, 바리톤 김기훈의 바람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됐다. 

지난 19일(영국 현지시간),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등용문 <BBC 카티프 싱어 오브 더 월드>에서 바리톤 김기훈(29)이 우승을 차지했다. 2019년에 세계 최고 권위의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와 ‘도밍고 콩쿠르’라 불리는 <오페랄리아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연이어 2위를 차지하며 세계 오페라 무대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김기훈은 이번 우승으로 또 한번의 쾌거를 거두었다.

▲바리톤 김기훈(BBC Cardiff Main Prize Winner)
▲바리톤 김기훈(BBC Cardiff Main Prize Winner)

<BBC 카티프 싱어 오브 더 월드>는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가 2년마다 개최하는 세계적인 성악콩쿠르로 BBC에서 생중계한다. 올해 20회를 맞이한 대회는 코로나19 관련하여 강력한 방역 속에 6월 12일부터 6월 19일까지 8일간 세인트 데이비드 홀에서 개최됐다. 

웨일스 국립오페라와 BBC가 주최하는 카디프 콩쿠르는 아리아 부문(Main Prize)과 가곡 부문(Song Prize) 두 부문의 우승자를 가린다. 

1989년 메인 부문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가곡 부문 브라인 터펠이라는 세계적인 바리톤을 배출한 바 있으며, 한국인으로는 1999년 바리톤 노대산, 2015년 베이스 박종민이 가곡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김기훈은 두 부문 모두 결승무대에 올랐으며, 아리아 부문인 ‘메인 프라이즈’ 우승은 한국 성악가로는 최초다. 

김기훈은 콩쿠르 1차 무대에서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Mein Sehnen, mein Wähnen(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를 불렀는데, 이를 듣던 심사위원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중계 방송을 타면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어 결선에서는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중 ‘나는 이 동네 제일가는 이발사’, 바그너의 <탄호이저> 중 ‘오 나의 성스러운 저녁별이여’,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 중 ‘조국의 적’을 차례로 노래했다.

▲바리톤 김기훈(BBC Cardiff Main Prize Winner)
▲바리톤 김기훈(BBC Cardiff Main Prize Winner)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멀리 영국에서 반가운 낭보를 전해온 바리톤 김기훈을 만나 수상 소감과 더불어 지금의 그를 있게한 그의 음악,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BBC 카티프 국제콩쿠르 우승을 축하드리며, 서울문화투데이 독자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바리톤 김기훈 입니다. 과분한 사랑과 관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콩쿠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이번 콩쿨의 심사위원인 세계적인 성악가 로버타 알렉산더(Roberta Alexander)와 닐 데이비스(Neal Davies) 두 분이 제 노래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셨다고 이 콩쿠르의 다른 참가자가 제게 전해줬습니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럽고 큰 힘이 됐었습니다. 콩쿠르가 끝난 후 두 심사위원께서 제게 “우리는 이미 본선에서 결선 1등을 당신으로 결정했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콩쿨에서 우승한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심사평을 참고 하자면, “29세의 나이로 거대한 소리를 가진 어린 바리톤이 이렇게 아름답고 섬세한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특히 고전부터 베리즈모 영역까지 다 여유롭게 소화하고 아름답게 해석하는 것을 우리들은 믿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우승할 거라곤 정말 예상하지 못 했습니다. 여러 음악들을 다채롭게 보여줬던 점이 어느 정도 유효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본 기자가 김기훈씨 공연을 처음 관람한 것은 2017년 7월 예술의 전당의 공연이었고 김기훈씨의 오페라 아리아들을 듣고 ‘전세계의 20대 성악가(당시 김기훈 25세) 중 이렇게 완벽한 소리와 아름다운 음악으로 해석할 수 있는 성악가가 있을까!’ 라고 감탄과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공연 후 “우리나라의 최고, 세계 최고의 성악가가 될 것이다, 응원한다” 라고 김기훈씨에게 전화했었는데 혹시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네. 그런 과분한 칭찬과 응원을 들으면 너무 감사하고, 부끄럽고,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게 큰 힘과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김기훈씨의 음악은 다른 성악가보다 가슴으로 전해오는 감동이 벅찹니다. 그 이유는 뭐라 생각하세요?

특별한 비법은 없지만 무작정 연습하기보다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경험했던 많은 무대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나요?

어느 일반 무대보다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파이널 무대가 기억나는데요, ‘박수와 함성소리로 쓰나미가 치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생 최고의 박수와 환호소리였어요. 심사위원과 언론에서 “러시아 바리톤 드미트리가 생각난다. 그가 없는 이 세상에서 다시 우리를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호평을 받아 영광이었습니다.

바리톤 김기훈 (사진제공=김기훈)
바리톤 김기훈 (사진제공=김기훈)

꼭 해보고 싶은 오페라와 역할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오페라 ‘토스카’의 스카르피아 역할이 욕심납니다. 음악과 역할이 너무 맘에 들고, 항상 웃는 제가 악역으로 변신해 반전효과로 더 강렬한 악역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고3때 제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을 아주 많이 했었습니다. 그 당시 우연히 한 교수님이 제 노래를 들으시고 삼고초려 하듯이 계속 성악을 하라고 권하셨는데, 테스트를 받고서 극찬을 하시며 큰 재능이 있으니 무조건 성악을 하라 권유하셨습니다. 그 후 시골 촌놈이 연세대 성악과에 합격하여 성악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성악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음악을 하며 겪었던 위기의 순간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요?

군대를 다녀온 후 성대결절이 심하게 왔고 주변의 기대와는 달리 성적도 좋지 않게 되고 노래실력 또한 계속 하향길을 걸었었습니다. 김관동 교수님의 가르침과 계속 반대로 가려고 했기 때문에 목은 목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망가졌죠. 그러면서 어떻게 노래를 해야 하는지 기초까지 전부 잊어버렸습니다. 슬럼프가 10개월정도 지속되어 성악을 그만두려고 했었죠. 그런데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 김관동 교수님께 온전히 저를 맡기며 배웠습니다. 
“테너처럼 부르라”는 교수님 말씀에 영감을 얻어 그때부터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슬럼프는 종종 저를 찾아왔지만, 그 시기를 잘 견뎌내면 더 큰 성장이 온다는 사실을 체험했기에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초심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다음 일정과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12월 독일 뮌헨 극장에서 오페라 ‘라보엠(La Bohème)’과 1월 미국 센디에이고 극장에서 ‘여자는 다 그래(Così fan tutte)’ 두 작품이 잡혀있으며 현재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와의 공연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어떤 음악가가 되길 원하시나요? 

바리톤 김기훈 하면 바로 생각나는, 상징이 있는 바리톤이 되고 싶습니다.

한국 음악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클래식 공연도 국가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있으면 퀄리티가 높아져 청중들이 많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을 위해 국가와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나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김기훈씨를 롤모델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 학생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냉철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결과만 쫓다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세요. 성장의 뒤엔 많은 노력과 땀의 과정들이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지세요. 그리고 제 노래보다는 많은 대가(大家)들의 노래를 들어주세요.

 

바리톤 김기훈은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수석 졸업(김관동 교수 사사) 및 독일 하노버 음대 석사를 만장일치 만점으로 졸업했으며, 현재 동대학 최고연주자과정을 밟고 있다. 2016년부터 3년간 하노버 슈타츠오퍼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했으며, 2019/20시즌부터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그는 2016 서울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2016 뤼벡마리팀 성악콩쿠르에서 우승 및 청중상 등 총 4개 부분에서 수상하며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국제콩쿠르에 앞서 동아음악콩쿠르 1등, 중앙음악콩쿠르 3등, 성정콩쿠르 최우수상, 수리음악콩쿠르 대상, 엄정행콩쿠르 대상, 한국성악콩쿠르 2등을 비롯하여 국내 다수의 콩쿠르에서 우승 및 입상했다.

젊은 성악가로서 해외 무대에서 먼저 활동을 시작한 김기훈은 2016년부터 독일 하노버 슈타츠오퍼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며 <리골레토>, <살로메>,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나비부인>, <라 트라비아타>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예브게니 오네긴>무대에 올랐다.

19/20시즌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게르기예프 지휘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독일 로스톡 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 제르몽 역에 출연했으며, 21/22시즌에는 영국, 독일, 미국, 러시아 등의 주요 극장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아울러 김기훈은 오는 7월 8일 성남 티엘아이 아트센터에서 독창회를 연다. 이번 공연에서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프로방스 내 고향으로’와 ‘맥베스’ 가운데 ‘연민도 명예도 사랑도’,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중 ‘신사 숙녀 여러분’,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그리움이여, 나의 망상이여’, 바그너 ‘탄호이저’ 중 ‘오 나의 성스러운 저녁별이여’ 등 이탈리아와 독일의 유명 오페라 아리아를 선보인다. 또 차이콥스키의 ‘돈 주앙의 세레나데’ ‘오직 고독한 마음뿐’, 볼프의 ‘은둔’ ‘프로메테우스’ 등 러시아와 독일 가곡과 함께 ‘그리운 마음’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등 한국 가곡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