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꿈이 있었다. 변기가 되는 것과 또 하나는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나는. 왜 변기가 되고 싶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러나 나비는 여전히 내 꿈이다. 이메일 주소에도 나비라는 문구가 들어가고, 왼팔에다가는 보라색 나비 그림도 새겼으니 말이다. ‘나는 행위’ 자체도 멋지지만, 아름다운 날개로 이곳저곳을 누비며 열매의 탄생을 돕는다니 멋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나의 삶은 나비와는 거리가 멀다. 땅바닥을 기는 바퀴벌레다.
먼저 일하고 있던 친구의 추천으로 3개월 전부터 종로의 한 카페에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을 하게 되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갖춰져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캔 음료를 만드는 간단한 일이 주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메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스콘을 굽다가 데이기를 여러 번. 나중엔 슬러시 기계와 두 대의 아이스크림 기계가 들어왔다. 액상을 붓고 아이스크림 위에 각기 다른 토핑을 장식하는 것, 총 세 대의 기계를 마감하는 일까지 모두 친구와 나의 몫이었다. 그러나 견딜만했다. 이렇게 해서 번 돈은 늦은 밤 퇴근길에 밤참을 사 먹을 수 있는 여유를 주었고, 친구네 집에서 늦게까지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추억도 만들어주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평일에 일하는 조와 우리 주말팀의 마찰이 잦아졌다. 휴식과 식사 공간,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쭈그려 앉아 밥을 먹는 서러움은 이로 말로 할 수 없었다. 매 순간 걸려오는 사장님의 전화는 근무 날이 아닌 평일까지 이어졌다.
스트레스로 인한 편두통이 잦아졌고 다리는 매일같이 부어있었다. 그로 인해 내가 맡은 두 가지의 일과 입시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지친 상태가 이어졌다. 침대에 누우면 스트레스로 인해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눈물이 차올랐다. 맘 편히 단 하루만이라도 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를 입에 달고 살았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용기를 내어 사장님께 통보했다. 그 뒤로 사장님으로부터 퇴사를 철회했으면 하는 대략 30통에 가까운 전화와 문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떠나만 갔다. 야식의 달콤함도 돈도 아쉽지 않았다. 나는 하루라도 편히 잠들고 싶었다. 돈이 없더라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볼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입시에 집중하고 싶었고, 하루하루 더 나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내 삶에서 이런 작은 꿈을 끼워 넣을 틈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렇게 손에 쥔 월급으로는 내 몸뚱이 하나를 건사하느라 정신이 나가 있었으니 말이다.
민감하게 유행을 포착하고 그것으로 사업 아이템을 내놔야 하는 상권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다양한 메뉴를 갖춰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을 돈으로만 보았고, 직원을 기계의 부품 정도로만 여기는 태도는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이 내가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또 그곳을 떠나게 한 부메랑인 것이다. 돈이기 이전에 사람이며, 노동자 이전에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다. 나는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인간의 가치를 짓밟힌 기분이었다. 그게 날 참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를 독립되고 존엄한 인격체로 대우해주지 않는 곳에서, 친구들의 손을 잡고 완전히 벗어나려고 한다. 아직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말에 속아 며칠 더 일해야 하지만,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여름밤에 산책을 할 수 있다. 주말 아침에 여유롭게 사랑하는 사람과 나들이를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엄마를 도우려고 주 5일 출근은 해야 하지만, 적어도 주말이라도 책과 영화에 둘러싸여 다양한 글을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야 나비가 된 기분이다.
시궁창 벽을 기는 바퀴벌레에서 훨훨 나는 나비가 된다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있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다. 숱한 고생을 해보고 나서 느끼는 가족의 소중함, 내 존재의 가치,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낸다면 누구나 나비가 될 수 있다. 사회적 성취, 돈, 명예가 없어도 나를 이루는 것들을 포착하는 체험을 통해 우리는 날개를 달게 된다. 색과 형태 그리고 날갯짓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아직 나의 날개는 힘이 약하다. 난다고 해서 얼마나 높이 멀리 갈 수 있을지, 어떤 꽃에 도달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른다. 아주 작은 바람이 있다면 크고 화려한 보라색 날개로 멋지게 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끊임없이 무너뜨렸던 그곳에도 예쁜 꽃이 필 수 있기를, 나와 함께 일했던 모든 동료의 날개에도 강하고 단단한 근력이 붙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