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DIMF, ‘조선변호사’ㆍ‘Toward’…“세상의 편견에 맞서다”
[공연리뷰]DIMF, ‘조선변호사’ㆍ‘Toward’…“세상의 편견에 맞서다”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7.05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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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변호사>,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 도운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츠지’ 이야기
한국-대만 공동 기획 뮤지컬 <Toward>, 중화권 화제 인물 ‘임휘인’의 생 다뤄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편견들과 마주한다. 때론 그 주체가 되고 때론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편견의 가장 큰 이유는 ‘다름’이다. 틀림이 아닌 다름이지만, ‘진실’이야 무엇이든 편견의 대상이 되는 쪽은 늘 소수다. 승자와 다수의 목소리만이 세상에 가득하다. 세상이 소수의 목소리를 듣게 하려면, 소수는 가장 시끄러운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올해 DIMF에서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 끊임없이 소리쳤던 인물을 다룬 두 작품 <조선변호사>와 <Toward:  내일을 사는 여자, 휘인>을 만나봤다.

▲제15회 DIMF 창작지원작 ‘조선변호사’ ⓒDIMF
▲제15회 DIMF 창작지원작 ‘조선변호사’ ⓒDIMF

조선변호사
DIMF의 지원으로 탄생한 창작지원작 <조선변호사>(작 김세한, 곡 유한나)가 지난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봉산문화회관 무대에 올랐다. 일제강점기 시대상과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변호하고 친우가 되어준 독립유공자 ‘후세 다츠지’라는 인물의 삶을 조명한 <조선변호사>는 뮤지컬배우 안재영ㆍ박시원ㆍ금조ㆍ박한근ㆍ이규학 등이 출연해 역사 속 인물들을 표현했다.

‘그는 언제나 졌다.’라는 메인 카피처럼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던 그는 승리보다 패배가 지배적인 길을 걸었다. 그는 계속되는 패배 앞에 굴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바위에 몸을 던지던 달걀을 자처했다. ‘나는 당신들을 대변할 것이나, 조선은 당신들 스스로가 변호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더라도 당신들의 뜻은 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후세의 말 속에서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뮤지컬이기에, 팩트를 기반으로 하여 픽션을 가미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농도 조절이다. 픽션을 너무 많이 가미하면 인물이 소설 속 등장인물로 전락하고, 픽션을 너무 적게 가미하면 이해가 어려운 인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극적 재미와 인물의 입체적 성격, 기승전결도 중요하나, 역사적 인물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제15회 DIMF 창작지원작 ‘조선변호사’ ⓒDIMF
▲제15회 DIMF 창작지원작 ‘조선변호사’ ⓒDIMF

‘후세 다츠지’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칭송 받을 수 없던 인물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평생을 굳건한 신념으로 투쟁해온 후세는, 작품 속에서 계속되는 패배에 좌절해 돈을 쫓는 도피성 인물로 표현돼 아쉬움을 남겼다. 

정의와 사명감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웠을 고뇌와 좌절이 그에게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것으로 후세 다츠지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작품의 대부분을 채우기엔 우린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조선 건국 헌법 초안’을 저술하고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일본인 최초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역사에 큰 공로를 세웠으나, <조선변호사>에서 후세는 계속되는 패소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주로 그려질 뿐이다. 실제로 투옥을 두 번이나 당하기도 했던 후세. 일본 측 검사가 그의 죄를 밝히는 과정이 거꾸로 우리에겐 그의 위업을 알리는 과정이 되게 설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후세의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과 더불어, 박열과 후미코를 단순히 애틋한 연인으로 그려내는 것 또한 다시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범인(凡人)이 아닌 이들을 너무 평범하게 다룸으로써, 그들을 장고 끝에 변호키로 결심한 후세의 노력까지 왜곡되는 결과를 낳았다. 

▲제15회 DIMF 창작지원작 ‘조선변호사’ ⓒDIMF
▲제15회 DIMF 창작지원작 ‘조선변호사’ ⓒDIMF

한국인이라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조선인을 변호한 일본인이라는 소재에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너무 슴슴하다. 완성도 높은 넘버와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인과관계, 역사적 사건들이 너무 가볍게 다뤄지다보니 끓는점에 도달하지 못 하고 미지근한 상태로 남았다. 일제에 저항한 조선인들을 비호한 일본인 변호사의 삶과 그의 신념은 마땅히 기록돼야 한다. 선조들이 피로 그린 지도 위를 밟고 있는 우리는 그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나갈지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 이 극이 그 유의미한 노력의 결실 중 하나로 평가받길 기대해본다. 

Toward

DIMF와 ‘극단 죽도록달린다’, 대만의 ‘(재)타오위안시광예기금회’와 ‘C MUSICAL Production’까지 4개의 문화예술단체가 공동으로 기획한 뮤지컬 <Toward>는 지난 6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아양아트센터에서 한국 배우들로 꾸려진 캐스팅과 함께 글로벌 첫선을 보였다. 

▲제15회 DIMF 공식초청작 ‘Toward’ ⓒDIMF
▲제15회 DIMF 공식초청작 ‘Toward’ ⓒDIMF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뮤지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화권 여러 미디어에서 다뤄지고 있는 실존인물 ‘임휘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된 뮤지컬 <Toward>는 건축과 문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갖춘 중국의 일대 재녀(才女) ‘임휘인’과 남편 ‘양사성’, 당대 최고의 문학계 스타였던 ‘서지마’, ‘김악림’까지 그녀를 둘러싼 세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DIMF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기존에 캐스팅되었던 대만 배우들의 입국이 어려워 짐에 따라, 뮤지컬 인재 발굴 프로그램인 ‘DIMF 뮤지컬스타’ 및 ‘DIMF 뮤지컬아카데미’를 통해 직접 발굴한 차세대 스타들을 주·조연 등으로 대거 기용해 프로 무대의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대만 창작진들의 협업으로 첫발을 내딛은 본 작품은 당대 지식인들의 은유적인 표현과 문학적인 대사를 무대위로 구현한 한아름 작가의 대본에 더해 서정적이고 세련된 음악으로 시대적 상황을 그려낸 대만 장심자(张芯慈) 작곡가의 콜라보로 한편의 중국 문학을 감상하는 듯한 이색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기존의 국내 뮤지컬과는 또 다른 글로벌 합작 작품만의 매력을 선사했다. 

극의 흐름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앙상블의 군무 장면, 상황을 연결하는 듀엣곡들의 적절한 배치 등 뮤지컬 기법이 중국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낯설법한 관객들에게 높은 몰입을 이끌어냈다. 

​▲제15회 DIMF 공식초청작 ‘Toward’ ⓒDIMF
​▲제15회 DIMF 공식초청작 ‘Toward’ ⓒDIMF

작품은 단순한 인물의 일대기를 나열하기보다 전쟁의 위험과 여성 차별이라는 역경 속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미래를 꿈꾼 한 인간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췄다. 다만,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라고 해서 여성이 진정한 주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다시 한 번 고려해볼 문제다. 

분명 주인공 ‘임휘인’은 남편이나 주변인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피력한다. 그리고 그의 선택에 따라 서사는 추진력을 얻는다. 하지만 임휘인은 양사성, 김악림, 서지마에 의존하며 그들의 사랑에 목을 메고 흔들린다. 

임휘인이라는 여성은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자아를 가지고 내러티브를 진행시켰으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며, 남성에게 의존하고 사랑을 최고의 보상으로 받는 전통적 서사에 편입되는 모습을 보인다. 임휘인이라는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캐릭터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로맨스 중점의 서사에서 벗어나 건축, 문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그녀가 남긴 족적들을 따라가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제15회 DIMF 공식초청작 ‘Toward’ ⓒDIMF

한편, 한국에서의 초연을 성공적으로 선보인 ‘Toward’는 올해 11월부터 대만의 배우들로 새롭게 프러덕션을 꾸려 500석 규모의 타오위안 광예홀(桃園廣藝廳), 1,800석 규모의 타이중 국립극장 (臺中國家歌劇院) 등 대만 투어 공연과 향후 2022 시즌 중국 투어 공연을 펼치는 등 글로벌 콘텐츠로서 지속적인 행보와 함께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