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가나아트, 이근배 전시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
[전시 리뷰] 가나아트, 이근배 전시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7.08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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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이근배 시인 등단60주년 기획전
세필화로 그린 듯 고아한 벼루의 재조명
정조 서명이 담긴 ‘정조대왕사은연’ 전시 돼
이 시인 “벼루는 청자‧백자 못지 않은 우리의 자랑거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내면이나 관심사는 우리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집약돼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쓰는 화법부터 관심 있는 분야‧콘텐츠가 모두 담겨있다. 현대인들에게 스마트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이 됐다. 그럼 과거에는 어떤 물건이 지금 우리사회 스마트폰과 같았을까? 동양에서는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있었다.

‘서재에 꼭 있어야 할 네 가지의 벗’이라는 뜻의 문방사우는 종이, 붓, 벼루, 먹을 말한다. 글을 읽고 쓰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였다. 현대인들은 항상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에 개성 있는 케이스를 끼우거나, 장식을 하는 등 본인의 취향을 드러내곤 한다. 우리 조상들 역시 문방사우를 자신의 미감에 따라 갖췄다.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에 대한 뜻을 담기도하고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도구를 지니기도 했다.

▲이근배 시인이 직접 쓴 시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근배 시인이 직접 쓴 시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우리 조상들이 품어왔던 문방사우 중 벼루를 다루는 전시가 열렸다. 어린 왕족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벼루부터 정조대왕이 사용했던 벼루가 이근배 시인의 시조와 어우러져 관람객을 찾아왔다.

가나아트센터에서 지난달 16일 문을 열어 27일까지 진행됐던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전시는 이근배 시인이 소장해왔던 한국 옛 벼루 100여점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정조대왕사은연, 위원화초석장생문일월연, 남포석장생문대연을 포함해 위원화초석벼루 60여점, 남포석벼루 40여점으로 구성됐다.

가나문화재단 주관으로 열린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인 사천 이근배 시인의 등단 6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다. 이 시인은 어릴적 할아버지의 남포석 벼루를 보며 자란 기억으로 벼루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 시인은 신춘문예 다관왕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열혈 벼루 수집가’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그는 어림잡아 1000점 이상의 벼루를 소장하고 있고, 벼루에 관해 쓴 연작시만 80여 편에 이른다.

이 시인은 한·중·일 벼루 중에서도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문양,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우리나라 옛 벼루를 으뜸으로 치며, 특히 남포석 벼루와 위원화초석 벼루를 가장 아낀다고 한다. 보령의 남포석으로 만든 남포석 벼루는 다산 정약용이 으뜸으로 꼽은 벼루로 전해진다. 위원화초석 벼루는 벼루의 소재인 위원석이 겉은 녹두색과 속은 팥죽색을 띠고 있어, 조각을 하면 마치 벼루에 색을 입힌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벼루는 단순한 골동품이 아니라 선비정신이 깃든 문화의 한 단면이자, 백자 못지않은 우리의 자랑거리다”라고 강조하는 이 시인의 말처럼 전시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는 우리나라 벼루의 다양한 면을 조명해냈다.

▲〈정조대왕사은연 正祖大王謝恩硯〉, 중국 단계연, 20.2x27.7x3.5cm, (좌) 벼루 전면 (우) 벼루 후면, 정조의 자호와 남유용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정조대왕사은연 正祖大王謝恩硯〉, 중국 단계연, 20.2x27.7x3.5cm, (좌) 벼루 전면 (우) 벼루 후면, 정조의 자호와 남유용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이번 전시의 백미로 꼽을 수 있는 벼루는 단계연으로 제작된 <정조대왕사은연 正祖大王謝恩硯>이다. 전시장에서는 정조대왕 벼루의 앞면만을 볼 수 있는데, 이 벼루의 진면목은 벼루 후면에 담겨있다. 전시장에서는 벼루 후면은 실물이 아닌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단계연은 강가의 고운 진흙이 수 만년, 수 억년 동안 눌려서 만들어진 돌을 재료로 삼는다. 돌을 갈면 미세한 진흙이 갈린다.

정조가 사용한 이 벼루 뒷면 우측에는 정조의 자호 ‘만천명월 주인(萬川明月主人)’이라 적혀있다. 정조는 백성을 만천에 비유하고, 그 안에 비치는 명월에 자신을 빗댔다. 왕의 권력으로 천하를 책임지겠다는 포부와 모든 백성 아우르겠다는 통치 철학이 담겨있다. 정조는 실제로 조각을 한 임금이기도 했다. 정적들의 살해 시도 때문에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 조각을 행했다고 한다. 정조는 후에 자신의 벼루를 본인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스승이기도 했던 남유용에게 하사한다. 그 기록이 <정조대왕사은연 正祖大王謝恩硯> 후면에 적혀있다. 벼루 후면 중앙에는 ‘남유용’이라는 이름 석 자가 적혀있다.

▲〈남포석 월송문연〉, 조선 18세기, 24x30x2.7cm(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남포석 월송문연〉, 조선 18세기, 24x30x2.7cm(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이외에 주목할 만한 벼루로는 가로 26cm, 세로 41cm의 큰 화면에 매죽문을 빽빽하게 채운 ‘위원화초석 매죽문일월대연’, 가로 21, 세로 40cm의 검고 큰 석판에 펼쳐진 화려한 조각솜씨가 일품인 ‘남포석 장생문대연’ 등이 있다.

전시장에는 공주나 왕자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벼루들도 자리하고 있다. <위원화초석 ‘일로일과’ 문연>은 목재 상자 안에 담긴 형태로 전시가 됐다. 이처럼 나무 함 안에 있는 벼루의 경우 귀족집안의 딸이나 공주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전시장에서는 일반 벼루보다 조금 작은 벼루들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어린 왕자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벼루의 아름다움은 조각과 제작에 사용된 돌에서 나타난다. 보령 남포석 벼루는 색이 있는 돌을 사용하지 않아서 위원석 벼루에 비해 조각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단색에서 발하는 고아함을 가지고 있다. 또한, 보령 남포석에는 금성분이 섞여있어서 빛을 받으면 벼루 표면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남포석 벼루 중 화석연은 화석으로 만든 벼루이기에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돌의 형태가 벼루에 자리 잡고 있다. 칼로 깎아 만든 조각이 아닌,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진 조형성은 벼루의 가치 높여준다.

▲위원화초석 '일로일과' 문연, 나무 함 안에 담긴 벼루로 귀족 집안 딸이나 공주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위원화초석 '일로일과' 문연, 나무 함 안에 담긴 벼루로 귀족 집안 딸이나 공주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우리나라 벼루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온 공예가들의 뛰어난 솜씨도 추측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전시 서평을 통해 “위원석은 우리의 특출했던 조형성을 낱낱이 보여줄 것이다”라며 “해와 달, 새와 나무, 뱃놀이, 밭갈이 등의 농경사회 풍경이 마치 세필화로 그린 듯 전개되는 조형은 감탄불금이다”라고 우리 벼루를 극찬했다. 아쉬운 지점은 우리나라 최고의 공예가들을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데려가 남아있는 기술자가 많이 없다는 것이다.

벼루에 새겨진 조각은 이야기와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설화를 모티프로 한 조각부터 장생문, 포도문 등 여러 의미를 담은 조각들이 벼루에 담긴다. 특히 <위원화초석 독작탐금문 일월연>의 경우 5명의 인물이 등장 하는 조각을 품고 있다. 일월의 연지‧연당 주위를 매화, 대나무, 소나무, 운학문으로 가득 채웠고 술을 마시는 인물, 거문고를 타는 인물, 나무를 하는 인물 등을 벼루 곳곳에 배치해 조형성을 높였다.

▲위원화초석 독작탄금문 일월연 하단 부분, 벼루 전체 조각에 5인의 사람의 조각이 담겨있다, 상세 사진에는 2명의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위원화초석 독작탄금문 일월연 하단 부분, 벼루 전체 조각에 5인의 사람의 조각이 담겨있다, 상세 사진에는 2명의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엄청난 조형성을 보여주는 벼루도 이번 전시에서 공개됐다. <위원화초석 투각 기국농경장생문연>은 벼루의 바닥까지 다 들어내는 기법의 조각이 담겨있다. 조각의 기술적 난이도도 어마어마하지만 돌을 손상시키지 않고 섬세한 조각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난이도도 있는 조각으로 평가받는다. 섬세한 조각들 사이로 빛이 통과하면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위원화 일월연 벼루 중에는 해와 달을 벼루 안에 담아내면서, 중앙에 사각의 홈을 판 조각을 남긴 것이 있다. 이는 당시에 별을 표현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의 미와 선비의 정신을 드러내는 묵직한 벼루의 미학을 더욱 드높여주는 것으로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사천 이근배 시인의 글귀와 시조가 눈에 띤다. <정조대왕사은연 正祖大王謝恩硯> 옆에 적혀진 이 시인의 “어느 날 만천명월주인萬川明月主人이 내게 와서-벼루읽기”는 벼루가 품고 있는 역사와 이야기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한다.

▲위원화초석 투각 기국농경장생문연, 벼루의 밑 바닥까지 드러내는 조각으로 기술적 난이도가 뛰어나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위원화초석 투각 기국농경장생문연, 벼루의 밑 바닥까지 드러내는 조각으로 기술적 난이도가 뛰어나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김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우리 벼루에 대한 대접은 극히 제한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여주는 벼루는 오직 한 점이라 들었다”라며 “추사 김정희의 서예를 보여주는 자리에서 당신의 붓을 적셨던 벼루라며 짐짓 ‘부수적’으로 전시할 뿐이라 했다”라고 여지껏 한국의 벼루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시인은 “한국의 벼루는 청자, 백자 못지않은 우리의 자랑거리다”라고 말한다. 한국 벼루에는 옛 조상의 생활상과 미학, 기술적 조형성 모두 담겨있다. 번 전시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벼루의 조형성을 다시금 짚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단순히 먹을 가는 돌 아닌, 사용자의 취향과 미학 담겨있는 한국 미의 정수로 재조명 해볼 수 있는 기회의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