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문화재부터 근‧현대미술까지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MMCA, 문화재부터 근‧현대미술까지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7.1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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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오는 10월 10일까지
성‧아‧속‧화로 바라본 한국 미술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우리나라 미술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해 흐르고 있을까?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남북분단, 민주화운동, IMF 등 굴곡진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뺏기지 않기 위해 버텨오는 것에 온 힘을 다했었다. 강국의 억압과 권력자들의 이권다툼 속에서 차분하게 무엇을 오랫동안 연구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는 게 다반사였다.

지금까지 한국의 미를 얘기하는 두 개의 축은 소박미(素朴美)와 자연미(自然美)였다. 단순하고 꾸밈없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본래의 아름다움이 한국이 가진 미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 미의 정체성을 찾고자 닿아갔던 성급한 답, 불완전한 답으로 볼 수 있다. 뛰어난 IT기술력으로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빠르게 국가의 변화를 꾀할 정도로 성장한 지금의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

국가의 주권을 찾고 정체성을 세워야 한다는 강박과 콤플렉스 아래 조급하게 결론 지으려했던 과거에서 한 발 나아가 차분하게 한국 미술을 연구하고 그 답을 찾아가고자 하는 시도가 이뤄졌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이 그 시도의 결과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이 한국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 자리에 모아 한국의 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을 오는 10월 1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청자상감 포도동자무늬 주전자, 고려, 높이 19.7cm, 몸통지름 2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이중섭, 봄의 아동, 1952-1953, 종이에 연필, 유채, 32.6×49.6cm, 개인소장, 청자의 동자문양과 이중섭 그림의 아이들이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사진=MMCA제공) 

이번 전시는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박물관 문화재와 미술관 미술작품을 서로 마주하고 대응시킴으로써, 시공을 초월한 한국 미의 DNA를 찾고자 했다. 전시를 관람하다보면 몇 백 년의 공백을 뛰어넘어서 이어지는 한국 미의 DNA를 느껴 볼 수 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화폭들 사이에 아름다운 빛깔의 연결선이 보이는 느낌이다.

전시는 동아시아 미학의 핵심이자 근현대 미술가들 전통 인식에 이정표 역할을 해온 네 가지 키워드, 성(聖), 아(雅), 속(俗), 화(和)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꾸밈없고 자연스럽다는 얼핏 완성도에서 부족함을 얘기하는 듯한 시각에 새로운 파동을 일으킨다. 또한, 이번 전시는 문화재 사진가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문화재 사진을 단순 기록 문화재 사진으로 봐야 할 것인지,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가의 작품인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유리벽면이 설치된 전시장, 서로 다른 공간에 배치된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다(사진=서울문화투데이)
▲유리벽면이 설치된 전시장, 서로 다른 공간에 배치된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다(사진=서울문화투데이)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품을 한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라며 “한국의 미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20세기 미술에서 전통을 어떻게 인식하고 풀어나가고 있는 것인가 탐구하고, 우리 시대에 여전히 유효하고 주요한 화두로 자리하고 있는 전통을 바라보고자 한다”라고 전시가 지향하고 있는 지점을 설명했다.

여태껏 우리는 한국의 옛 미술을 보기위해서는 박물관으로 향해야했고, 근‧현대 미술을 보기위해서는 미술관으로 가야했다.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 곳에 모여 있는 전시장은 관람객에게 낯설고 독특한 경험을 전한다.

이번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의 그림 배치와 전시장은 전체적으로 이어져 있는 느낌을 자아낸다. 한 쪽 벽면에 작품을 줄지어 걸지 않고 옛 미술 작품과 근‧현대 미술 작품이 대화를 하듯 마주보게 배치했고, 관람객이 그 안으로 들어가 작품의 연결성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전시실에 유리 벽면을 사용하는 공간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이는 각기 다른 공간에 있는 작품들을 한 번에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사는 “전시에 있어서 공간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조선 시대 미술과 현대 미술을 하나의 시야각 안에 배치시킴으로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모티프와 도상의 연결성 한국 미술의 순환‧역동성을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강조했다.

▲강서대묘 현무 모사도, 고구려 6세기 말~7세기 전반(1930년 모사), 종이에 채색, 238×31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사진=MMCA 제공)
▲강서대묘 현무 모사도, 고구려 6세기 말~7세기 전반(1930년 모사), 종이에 채색, 238×31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사진=서울문화투데이)

한국미술의 성(聖)을 드러낸 첫 번째 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은 현무를 그린 고구려고분벽화 <강서대묘 현무 모사도>다. 한국회화사의 실질적인 첫 페이지인 고구려고분벽화는 20세기의 한국미술, 특히 회화에 큰 영감을 제공했다.

이 작품과 마주보고 있는 그림은 이숙자 <1999-19, 전통암채기법의 강서고분벽화 청룡도>다. <강서대묘 현무 모사도>처럼 사신도 특유의 숭고함과 역동성이 닮아있고 기법과 안료에 있어 고민한 흔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이숙자 작가에게 중요한 소재인 보리밭을 청룡 아래쪽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고구려고분벽화를 마주하고 뒤로 돌아 이숙자의 그림을 보게 되면 시간을 넘어서 하나의 소재를 탐구해 온 한국의 획과 기개를 느껴볼 수 있다.

▲혜원 신윤복,미인도(복제본),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114×45.5cm, 간송미술관 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혜원 신윤복,미인도(복제본),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114×45.5cm, 간송미술관 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사진=MMCA 제공)

한국의 미와 근‧현대 작가의 연결성은 이중섭과 김환기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이중섭은 직접 도자를 수집할 정도로 고려청자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작가라고 한다.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자유로운 필선과 한국적인 문양들을 고려청자의 문양과도 닮아있다. 특히 고려 시대 <청자상감 포도동자문 주전자>의 동자 문양과 이중섭 <봄의 아동>에서 보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현에선 같은 정서를 발하고 있다. 김환기의 점화가 발휘하는 시각적 리듬 역시 조선 시대 <분청사기 인화문 자라병> 표면 인화문에서 그 뿌리를 추측해볼 수 있다.

맑고 바르며 우아함을 뜻하는 아(雅)를 선보이는 두 번째 전시장에선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반향으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추구하고자 한 국내 미술계의 노력을 볼 수 있다. 비정형의 미감이라는 차원에서 추구됐던 졸박미(拙朴美)와 한국적 표현주의를 살펴본다. 특히 두 번째 전시장에선 한국 미의 정수로 자리하고 있는 ‘달 항아리’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달 항아리’에 꽃을 꽂아 미감을 드러낸 기록은 우리 역사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배 학예사는 “도천 도상봉화백이 달 항아리를 소재로 우아하고 서정적인 그림을 선보이면서 달 항아리의 현대적 미감이 점점 확장돼갔다”라며 “과거 궁중화나 의궤기록화에서 달 항아리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어, 과거에 달 항아리에 무엇을 담았는지는 앞으로 다시 한 번 연구해봐야 할 지점”이라고 언급했다.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종이에 채색, 46.5×42.5cm, 개인소장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종이에 채색, 46.5×42.5cm, 개인소장(사진=MMCA 제공)

세 번째 전시장에서는 한국 풍속화, 민화 등을 살펴보며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한국의 속(俗)을 보여준다. 이 전시실에서는 해외 속 한국의 미로 대표되고 있는 혜원 신윤복 <미인도>의 복제품이 전시 돼있다. 이 작품과 마주 하고 있는 현대 작품은 장운상<청향>과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이다. 각각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진 미와 여성 작가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미를 보여준다. 이어서 전시는 민화 속 호랑이와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차례로 선보인다. 민화에서 디자인으로 이어지고 있는 호랑이란 소재를 탐구하게 한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불화를 종교화가 아닌 풍속화 영역에서 다루는 시도를 보여줬다. 백 학예사는 “한국 미술 속 불화는 대중 친화적 회화로 민중 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불교를 드러낸다”라며 “불화에는 내러티브적 요소가 담겨있고, 이는 현대 민중미술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전시장에선 국가가 제안한 한국의 정체성을 벗어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개인의 정체성과 함께 각기 다른 한국의 정체성을 제안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동양 사상과 서양 문물의 조화로 탄생한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백남준 <반야심경>은 서구 문명인 텔레비전 수납장 안에 브라운관을 빼내고 동양사상의 결정체인 불상을 넣어 감상자에게 동‧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 전시실에는 보물 제 399호인 신라 금관 <서봉총금관>과 이수경 작가 <달빛왕관 신라금관 그림자>의 연결성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삼국 시대 신라 금관은 고대인들의 천상 개념, 인간이 천상에 오르려는 욕망의 표상이었다. 이 작가는 이러한 신라금관을 오마주한 공예품을 창작했다. 황금의 나라라 지칭되었던 신라 금속 공예의 기술, 모계사회로서의 국가적 성격, 고대 미술의 신화성을 현대의 미감, 시각과 융합적 관점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서봉총 금관(보물 제339호), 신라, 금속(금), 높이 3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사진=서울문화투데이)
▲서봉총 금관(보물 제339호), 신라, 금속(금), 높이 3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의 마지막 작품은 조덕현 <오마주 2021-Ⅱ>다. 이 작품은 100년 전 과거 한국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유리건판에 근거해 약 1,000장의 사진을 배치했다. 이 그림 속엔 한국미의 개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연구자와 예술가들의 얼굴로 들어가 있다.

이미 사라진 수백 명의 실존 인물들이 소환된 이 그림은 한국미가 형성됐던 근간을 은유하며, 관람객에게 우리의 미를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업業이자 각각의 시대가 가진 사명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