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정관조 감독 “지나온 길에 핀 꽃을 잊지 않으리”
[Culture Interview]정관조 감독 “지나온 길에 핀 꽃을 잊지 않으리”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1.07.14 0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음악회 <지나온 길에 핀 꽃을 잊지 않으리>…7.18, PM 5:00, 혜화동 JCC아트센터 콘서트홀
은성호 피아니스트·한지연 서울시향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출연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수상작 <녹턴> 주인공 은성호와 그의 가족에게 바치는 꽃다발
▲은성호 피아니스트
▲은성호 피아니스트

2020년 10월, 모스크바로부터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정관조 감독의 <녹턴>(Nocturne)이 제42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것. <녹턴>은 자폐증이 있는 음악 청년 은성호와 그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 뒷전으로 밀려난 동생 건기 등 가족들의 사랑과 희망과 아픔을 10년 동안 촬영한 작품이다. 이들의 사랑과 갈등과 화해의 순간마다 쇼팽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모스크바 영화제는 옛 소련 시절인 1935년 처음 개최됐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됐다가 1959년에 재개된 세계 굴지의 국제영화제다. 이러한 유서 깊은 영화제에서 정관조 감독이 최우수상을 탄 것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에 버금가는 우리나라 영화계의 일대 쾌거였다. 정 감독은 안타깝게도 코로나19 때문에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멀리 시베리아 상공을 날아서 영광의 트로피가 날아왔다. 정 감독은 이 영광이 자기만의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주인공 성호에게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주고 싶었다. 그의 어머니와 동생 또한 주인공이었고, 정 감독은 <녹턴>의 이 모든 주인공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계획한 축하 파티 또한 코로나19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정 감독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음악회였다. 다큐 주인공이었던 은성호씨가 피아노를 맡고, 서울시향이 제1바이올린 수석 한지연씨가 바이올린을 맡아서 베토벤 <봄>과 모차르트 E단조 소나타를 연주한다. 음악회는 <녹턴>의 주인공 성호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동생 건기에게 정 감독이 바치는 꽃다발이다. 이 아주 특별한 음악회의 제목은 <지나온 길에 핀 꽃을 잊지 않으리>다. 오는 18일(일), 오후5시, 서울 혜화동 JCC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서울시향 수석 한지연씨, 기꺼이 참여하기로

▲한지연 서울시향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한지연 서울시향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이 특별한 음악회에는 서울시향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한지연씨가 기꺼이 함께 했다. 정 감독과 한지연씨는 2019년 EBS 성탄특집다큐 <행복한 음악회>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내레이션을 맡은 이 다큐는 서울시향의 음악가들이 발달장애 음악가들과 함께 한 작은 음악회와 그 준비 과정을 담은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정 감독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 프로젝트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한지연씨의 순수한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음악회를 기획한 정관조 감독의 말. 

“장애인들을 ‘타자’로 여기지 않고, ‘나와 내 가족을 포함,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한지연씨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꼈습니다. 올봄, 다큐 주인공 성호하고 한지연씨가 함께 하는 듀오 컨서트를 기획해 보고 싶다고 처음 말을 꺼냈죠. 성호씨가 실력으로는 한지연씨를 뒷받침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은 충분히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한지연씨는 흔쾌히 이 제안을 수락했다. 

“서울시향의 <행복한 음악회>를 통해서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연주자들과 몇 차례 연주를 같이 했고, 레슨도 할 기회가 있었기에 관심도 가고 마음도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정관조 감독님의 작품을 통해 은성호군 가족을 가깝게 느끼게 된 점이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아요. 이런 유명 연주자와 연주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오히려 제가 감사한 마음이지요.” 

그는 정 감독의 다큐 <녹턴>을 통해 성호씨를 알고 있었다. 

“<녹턴> 마지막 연주회 장면에서 성호가 피아노 치는 동생을 배려해서 두어걸음 뒤로 가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감동이었어요. 성호같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남들을 도와주고 배려해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 감동을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프로 연주자도, 성호씨도 활동이 끊겨서 힘겨운 나날이었다. 가끔 열리는 연주회도 마스크를 쓰고 해야 하니 두 배나 힘들었다. 이러한 난관이 음악회에 걸림돌이 될 수는 없었다. 정 감독은 음악회의 제목을 <지나온 길에 핀 꽃을 잊지 않으리>로 정했다. 무슨 의미일까.  

▲영화 <녹턴>의 한 장면
▲영화 <녹턴>의 한 장면

“내가 어렵고 힘들다고 여겼던 그 길이 사실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길이었다, 뭐 이런 뜻이죠. 성호 가족이 지나온 길은 외형만 보면 절망으로 채워져 있지만 성호와 어머니는 늘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하는 행복한 삶을 누렸던 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봤습니다. 성호가 연주한 아름다운 음악들만 생각한다면 성호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멋지게 살아온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 거죠. 성호가 앞으로도 그 꽃들을 잊지 않고 살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고요.” 

우리 인생의 ‘화양연화’

늦은 봄, 리허설이 시작됐다. 정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모차르트 E단조 소나타는 전문 연주자들에게는 무척 어려운 곡이다. 다른 소나타들에 비해 ‘여백의 미’가 많아서 음악적 표현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차르트를 특별히 좋아하는 한지연씨는 이 선곡에 기꺼이 동의했다. 한지연씨의 말. 

“정 감독님께서 서울시향에 촬영 오셨을 때 발달장애 청년들과 소통하시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어요. 그 친구들에 대해 너무 잘 아신다는 느낌이 들었고, 눈높이를 맞추시며 깊이 있는 질문들로 마음 속 생각을 끌어내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팬이 되었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저도 감독님처럼 음악을 해보려고 합니다. 연주회를 기획하시고 준비하시고 연습과정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은 제게는 소통입니다. 언어로 소통이 어려운 사람과 음악으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보여주고 싶은 거지요. 실제로 성호군은 호흡을 맞추려 하고요, 저는 성호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며 연주를 하고 있고요.”

▲정관조 다큐멘터리 감독
▲정관조 다큐멘터리 감독

한지연씨가 은성호씨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함께 연습하면서 성호군의 소리가 너무 예쁘다고 느꼈어요. 저와 나이가 비슷한데, 이런 게 내공인가 싶었지요. 끈기있게 긴 시간을 집중하며 함께 해 줘서 놀라웠고, 고맙기도 합니다. 일상에 힘든 부분도 많지만 음악을 비롯하여 다양한 것에서 즐거움을 느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약간 반성을 하며 즐거운 것을 찾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번 연주 화이팅하고, 오시는 한 분 한 분 감사해하고 기억을 하기로 해요!”
 
정관조 감독은 매회 리허설을 참관했다. 인간에게 말이 먼저인지 음악이 먼저인지 아직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자폐증을 앓는 은성호씨는 타인과 말로 소통하는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그가 음악으로 한지연씨와 멋지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정관조 감독은 이게 바로 ‘음악의 위대성’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언제나 성호씨를 믿었고, 그때마다 그는 ‘역시 은성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성호씨는 삶의 존귀함을 실천으로 증명하는 멋진 음악가입니다. 저는 그를 존경합니다. 그가 평생 음악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벚꽃 지는 늦은 봄, 베토벤의 소나타 <봄> 리허설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정 감독은 펄펄 날리는 벚꽃과 베토벤의 <봄>의 아름다운 소리가 어우러지는 순간에 취하여 행복했다. 정관조 감독 인생의 ‘화양연화’였다. 이번 음악회가 한지연씨와 은성호씨의 인생에도 ‘화양연화’로 피어나기를….


아주 특별한 음악회 <지나온 길에 핀 꽃을 잊지 않으리>

-공연일시 : 7월 18일(일) 오후 5시
-공연장소 : 서울 혜화동 JCC아트센터 콘서트홀

*세트리스트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8번 E단조 K.304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F장조 Op.24 <봄> (1, 2악장)
폴디니-크라이슬러 <춤추는 인형> 
엘가 <사랑의 인사>
마스네 <타이스의 명상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