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학의 바이 더 웨이, 디지털!] 디지털시대, 변화의 문화현장 ❻ 줄탁(啐啄)혁명
[김정학의 바이 더 웨이, 디지털!] 디지털시대, 변화의 문화현장 ❻ 줄탁(啐啄)혁명
  •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
  • 승인 2021.07.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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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 1959년생. 영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년 동안 한국과 미국 등에서 방송사 프로듀서를 지냈으며, 국악방송 제작부장 겸 한류정보센터장, 구미시문화예술회관장 등을 거쳤다. 현재 대구교육박물관장으로 재직 중. 지은 책으로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등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쯤 와 있는지 그야말로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모두들 분위기만 잡고 기다리기만 할 뿐이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큰 변화가 온다는데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대세가 될 거라는데, 백안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1차 산업혁명이 기계화 과정에서 물과 증기의 힘을 사용했다면, 2차 산업혁명은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대량생산 체제를 만들어 냈다. 뒤이은 3차 산업혁명에선 전기기술과 정보기술을 이용해 자동화된 생산체계를 만들어냈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모습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현재의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혁명이라는 3차 산업혁명 과정의 기반 위에서 창조되고 있다고들 평가한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고 일하고 있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의 직전에 와 있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 등은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클라우스 슈밥 WEF(세계경제포럼) 회장이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2016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꺼내들었고, 쉽게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것이 ‘현재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세 가지 근거(속도, 범위와 깊이, 시스템 충격)도 댄다.

하지만 행동주의 철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최근 3차 산업혁명이 폭발적인 속도로 진행된 것은 맞지만 여전히 3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마케팅을 목적으로 생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우리 모두를 혼란스럽게 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디지털화의 혁신적인 변화에는 동의하지만, 그 변화가 곧 4차 산업혁명을 의미한다는 말은 아니다’는 뜻이다.

소위 ‘디지털 혁명’의 와중에서 디지털을 아날로그의 탁월한 대체재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아날로그 가치의 융합이 중요한 것 아닌가.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디지털화가 가능한 사물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잡지는 온라인으로만 존재할 것이고, 모든 상거래는 웹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며, 교실은 가상공간에 존재할 것이었다.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는 일자리는 곧 사라질 일자리였다. 프로그램이 하나 생길 때마다 세상은 비트와 바이트로 전환될 것이고, 그 결과 우리는 디지털 유토피아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터미네이터와 마주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술 혁신의 과정은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 그리고 가장 좋은 것으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반대로 아날로그적 경험은 디지털적 경험이 주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지는 못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최고의 솔루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턴가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가에 통합, 융합, 복합, 통섭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세계인들이 솔깃해졌다가,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지던 한 순간부터 마침내 무감각해져버린 것 아닌가.

▲(왼편에서부터) 클라우스 슈밥 WEF회장, 에드워드 윌슨, 최재천 교수,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 2016 다보스포럼 보고서<직업의 미래>

한마디 말로 파고(波高)높은 트렌드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는 법, 우리는 작은 단초라도 알고 싶어진다. 통합은 대학에서의 학과 통합처럼 상당히 이질적이고 물리적인 단위들을 단순히 묶는 고장으로 물리적으로 두 단어를 합치는 것일 테고, 융합은 방송통신처럼 하나 이상의 것이 녹아서 하나가 되는 과정으로 화학적으로 두 단어를 합치는 것일 것이다. 통섭은 녹아 합쳐진 곳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물학적 합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다 하이브리드개념까지 더해지면 유전학적 합침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이다.

특히, ‘학문의 경계를 넘었다’는 호평과 ‘지적 사기’라는 악평을 동시에 듣고 있는 ‘통섭’은 국내에서 ‘융합’이라는 뜻을 지닌 보편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1998년 쓴 『컨실리언스 consilience』를 최재천 교수가 원효대사의 화엄사상을 빌려 ‘통섭’이라고 번역하면서 알려졌다. 집단지성 역시 통섭의 과정을 통해 정립된 개념이고, 뇌과학을 마케팅과 접목시킨 뉴로마케팅, 위키피디아, 웹2.0의 개념도 모두 통섭의 결과라고 보면 된다.

우리에게 4차 산업혁명이 온다면, ‘줄탁동시(啐啄同時)’로 나타날 것이다. 이 말은 안과 밖에서 함께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로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게 되는데 이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서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줄탁’은 어느 한 쪽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만 세상 밖으로 새 생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줄’의 지혜와 ‘탁’의 이치에다, 서로의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 놀랍기 짝이 없을 시대도 우리 스스로가 기여해야 이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다만 그날이 아득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