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2021 전주시립예술단 연합공연 ‘시집가는 날’ 
[윤중강의 뮤지컬레터]2021 전주시립예술단 연합공연 ‘시집가는 날’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1.07.1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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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창작음악극 ‘시집가는 날’을 보았다. (2021. 7. 8 ~ 10.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시나리오 ‘맹진사댁경사’(1942)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근현대를 대표하는 시나리오이자 희곡이다. 권선징악을 기본으로 한 ‘한국적 신데렐라 스토리’이자, 일제강점기의 작품으로는 보기 드문 희극이다.  

작가 오영진(1916 ~ 1974)은 이 작품이 춘향전만큼 여러 장르로 작품화될 것을 예상했을까? 시집가는 날(1957, 이병일감독)이라 제목을 바꾼 흑백영화를 시작으로, 맹진사댁경사 (1962, 이용민감독), 시집가는 날(1977, 김응천 감독) 등 세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간 연극 뮤지컬 오페라 방송극 창극(판소리) 소리극(경서도민요) 등 전 장르로 만들어진 ‘시집가는 날’과 이번 작품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창작음악극 시집가는 날은 최기우 각색이다. 오영진의 희곡을 효과적으로 압축했고, 이 시대 젊은이와의 소통을 중시했다. 오영진 시나리오(1957)에서 맹진사(김승호) 대사가 “버리자니 대감댁이요, 주자니 무남독녀 외동딸이라.”인데, 최기우 각색(2021)의 맹진사 (강길원)는 “보내자니 우리 딸이 울고, 안 보내자니 우리 가문이 울고”로 바꾼 게 하나의 예다. 최기우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운율을 잘 살려내며, 이 시대 청충과 교감하려 애쓴 노력이 보인다. 

지금까지의 모든 ‘시집가는 날’은 봄 장면으로 시작한다. 춘향전이 단오의 떠들썩한 풍경이 그려진다면, 시집가는 날은 처녀의 설레는 여심이다. 그러나 작품에 따라서 ‘봄’을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오영진은 원래 처녀들이 봄나물을 캐는 것으로 설정했다. 영화 ‘시집가는 날’(1957, 임원식 음악)의 시작은 ‘도라지타령’으로 여성합창으로 편곡했다. 오영진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엔 이렇게 ‘도라지’를 모티브로 ‘도라지영감’이란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오영진을 특히 인정할 수 있는 지점이다. 개울물에서 도라지를 씻고 있는 입분(최은희) 앞에, 현실인 듯 환상인 듯 도라지영감(주선태)가 등장한다. 도라지영감 캐릭터는 세 편의 영화에선 모두 등장하지만, 아쉽게도 그간 무대 공연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21세기에 만들어진 ‘시집가는 날’이 그간의 작품과 가장 큰 다른 점은 무엇일까? 신체장애와 연관된 용어가 존재치 않는다. 절름발이 절뚝바리 다리병신이라는 표현은 없다. 창작음악극 ‘시집가는 날’에선 ‘바보천치’라는 말로 대신하면서 순화(純化)한다. 이 상황과 관련해선 맹진사(신랑은 바보천치), 갑분(상상조차 하기 싫어), 입분(사람의 마음을 보세요)의 노래로 이어진다. 그리고 “바보천치 입분이가 바보천지 도련님을 모십니다”라는 동병상련(同病相憐)적 심리를 부각시킨다. 

오영진의 원작부터 시작해서, 영화 ‘시집가는 날’엔 김명정(정민)이란 중요한 역할이 있다. 김판서의 아들이 장애가 있다고 소문을 퍼뜨리는 인물이며, 갑분(김유미)과 다르게 입분(조미령)의 심성이 착하다는 걸 확인한다. 

국립국악원의 경서도소리극 ‘시집가는 날’(2000)에선 김명정(金明正)을 이춘희(경기민요 인간문화재, 당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가 직접 맡았다. 명정(明正)이란 뜻이 그렇듯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밝히는 캐릭터로 그간 매우 중요했다. 지금 세상엔 이런 캐릭터는 매력적이지 않거나 필요치 않아 보인다. 창작음악극 ‘시집가는 날’에 김명정은 없다. 

기존 ‘시집가는 날’과 이번 ‘시집 가는 날’의 현격한 차이는 무엇일까? 사랑의 적극적인 주체로 주인공이 존재한다. 남주 미언(이건일)은 여주 입분(조민지)을 ‘직접’ 만난다. 결혼의 주체 미언(이건일)이 곧 소문의 진원지이다. 마치 ‘춘향전’에서 어사가 된 이몽룡이 거지꼴로 월매를 찾아가는 것처럼, 미언은 마을로 직접 찾아가 두 여자(갑분, 입분)을 직접 대면한다. 자신을 홀대하는 듯한 갑분(오윤지)에게 거리감이 생긴다. 시원한 물에 버들가지를 띄워 전해주는 입분(조민지)을 보며 심쿵한다. 바가지를 줍는 과정에서의 피부접촉은 관객에게도 찌리리 전해지는 확실한 ‘연애각’이다. 

창작음악극 ‘시집가는 날’은 많은 클리세Cliché)가 존재한다. 이는 연출(정경선)의 뚜렷한 의도이자, 재밌는 설정이다. 그동안 봐왔던 익숙한 장면의 파노라마는, 이 작품의 가치이자 미덕(美德)이다.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면서, 작품 속에 편하고 즐겁게 몰입하게 만든다. 

작곡은 임준희. 다양한 음악어법을 가져와서, 작품에 활기를 더한다. 이 작품의 주제선율이라 할 기본적인 출발은 타령(영산회상). 임준희가 일반인에게 알려진 건, MBC대학가곡제(1981)에서 금상을 받은 '바람에 실은 가락'이다. 영산회상 가락에서 영감을 얻는 곡이다. 창작음악극 ‘시집가는 날’에서도 국악(정악)을 기본으로 해서, 여러 장르의 음악을 교차시키면서 작곡적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족보타령’(맹진사)과 같은 전형적 판소리가 있는가 하면, 코라스의 군무로 즐기는 ‘대체 이게 무슨 조화?’(마을사람)는 마치 1990년대에 팝을 기본으로 한 댄스가요를 듣는 기분이다. 

네 명의 주역배우가 모두 빛났다. 맹진사(강길원)는 판소리 보컬, 입분(오윤지)는 클래식 보컬, 갑분(조민지)은 가요(국악) 보컬, 미언은 뮤지컬 보컬을 베이스로 하는데, 이런 노래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음악적 매력이자 특징이다. 특히 맹진사의 강길원은 같은 역할을 두 번이나 맡은 김승호 (1918~1968)에 버금간다. 무대의 장악력은 전성기의 조통달명창을 떠올린다. 소리와 연기의 양면을 갖춘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창작음악극 ‘시집가는 날’의 총감독과 지휘는 심상욱(전주시립국악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국공시립국악관현악단이란 전문연주단체의 예술감독으로서는 최연소(1982년생)이다. 이번 작품은 ‘2021 전주시립예술단 연합공연’이기도 하다. 올해로 3년차가 되는 심상욱 예술감독은 국악관현악을 넘어서 여러 단체를 원만하게 조절하는 컨트롤타워의 역량을 보여준 셈이다. 창작음악극 ‘시집가는 날’은 앞으로 계속 다듬는다면, 전주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 21세기의 남녀노소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보편적 뮤지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