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 바그네리안 되기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 바그네리안 되기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1.07.1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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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클래식이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 앞에 바그너 음악을 내밀 수는 없다. 음악이 너무 거창할 뿐 아니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그의 대표작 <니벨룽의 반지>는 하루 네 시간 씩 나흘 동안 공연하는 4부작 오페라다.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뤄진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려면 무려 16시간이나 걸린다. 이건 웬만한 클래식 마니아들에게도 버거운 일이다. 일단, 4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발퀴레>에 나오는 ‘발퀴레의 말달리기’가 귀에 익을 것이다. 아버지 보탄의 명령을 어기고 노여움을 산 브륀힐데가 말을 타고 나타나기 직전 상황이다. 무시무시한 관현악에 이어 8명의 발퀴레가 “호요토호” 고함을 지른다. 발퀴레는 전쟁터에서 죽은 영혼을 신들의 성(城) 발할라로 모셔 와서 다시 생명을 주는 전쟁의 여신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 미군 헬기가 베트남의 한 마을을 잿더미로 만드는 장면에서 이 음악이 흐른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 중 ‘발퀴레의 말달리기’ 장면

중학 시절, 내겐 베토벤 음악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이었다. 청각 상실의 비극이 하필이면 가장 뛰어난 음악가 베토벤에게 닥치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이에 굴하지 않고 삶을 긍정한 그의 의지와 예술혼은 거의 기적처럼 보였다. 인간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경지는 베토벤의 아홉 교향곡이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은 어떻게 발전했을지 궁금했지만, 베토벤을 뛰어넘는 교향곡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어느 점심시간, 도시락을 먹고 나서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뛰놀고 있었다. 한 순간 학교 스피커에서 생소한 관현악곡이 흘러나왔다. 거대한 산맥 능선처럼 구불구불 흘러가는 금관의 선율, 힘차게 요동치다가 마술처럼 요염하게 변하는 현악기의 음색…. 축구를 멈춘 채 우두커니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베토벤에서 들을 수 없었던 이 낯선 사운드는 뭘까? 도대체 누가 작곡한 음악이란 말인가? 나중에 알아보니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이었다. 금관의 선율은 유명한 ‘순례자의 합창’ 주제고, 현악기의 관능적인 율동은 ‘비너스산’ 장면의 주제였다. 호른, 트럼펫, 트럼본, 튜바 등 관악기들이 동시에 같은 선율을 연주하면 엄청나게 힘찬 에너지를 뿜어낸다. 이와 함께 목관과 현악이 매혹적인 디테일을 수놓는다. 이른바 ‘바그너 사운드’다. 운동장에서 고함치며 뛰어다니다가 얼떨결에 ‘바그너 사운드’의 화려하고 관능적인 색채와 마주친 것이었다. 아, 새로운 음악이 있구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입수한 바그너 음반은 게오르크 숄티 지휘의 빈 필하모닉이 연주한 <탄호이저>, <리엔치>, <방황하는 유령선> 서곡이 들어있는 LP였다. 중독성 강한 바그너 음악은 어린 나의 정신을 압도했다. 이 곡들은 교향곡이 아니라 오페라의 서곡에 불과했다. 바그너를 제대로 알려면 오페라를 들어야 했는데, 그럴 기회는 수십년 뒤에야 찾아왔다. 그런데, 바그너의 성악 부분은 <탄호이저>든 <트리스탄과 이졸데>든 좀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케스트라 부분은 매혹적이지만 성악 부분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귀가 스르르 닫혀 버리곤 했다. 바그너 오페라의 특징은 이른바 ‘무한선율’인데, 텍스트에 충분히 공감하지 않은 채 이 ‘무한선율’을 듣는 건 고통스런 일이었다. 전통적인 오페라는 대사를 간략한 선율로 처리한 레시타티보를 통해 스토리가 진행되며 아리아, 이중창 등 노래가 나올 때는 스토리가 멈추는 게 보통이다. 악보에는 노래 순서대로 번호가 붙어있기 때문에 ‘넘버 오페라’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바그너 오페라는 작품 전체가 음악으로 연결된 드라마로, 노래가 흐를 때도 드라마가 끊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한없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선율을 ‘무한선율’(Unendliche Melodie)이라 한다. 내가 바그너의 관현악곡에 열광하면서도 오페라에 좀체 다가설 수 없었던 건 바로 이 ‘무한선율’ 때문이었다.

나는 바그너에 대해 이를테면 선별적 음맹(音盲)을 앓고 있었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그의 최대 걸작인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2번 보았다. 한번은 천리안 고전음악연구회의 바그네리안 문정훈님의 해설로 진행한 LD감상회였다. 그는 많은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고, 각 인물을 상징하는 짧은 악구인 ‘유도동기’(Leitmotiv)를 하나하나 설명하며 감상을 도왔다. ‘유도동기’는 등장인물의 성격과 심리상태를 암시하며, 서로 섞이면서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과 사랑 등 감정변화를 드러낸다. 등장인물 뿐 아니라 신비의 칼 ‘노퉁’, 심지어 ‘구원’이란 관념도 나름의 유도동기가 있다. 이 유도동기는 전통 오페라의 주제와 달리 시종일관 변화하며 음악의 유전자 역할을 한다. 문정훈님의 친절한 해설은 바그너 이해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나의 선별적 음맹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두 번째는 2005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프가 이끄는 마린스키 오페라가 한국에서 선보인 <니벨룽의 반지> 전막 공연이었다. 이 4차례의 엄청난 공연을 한 번도 빠짐없이 보았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나흘의 인내 덕분에 스토리의 큰 흐름은 파악할 수 있었지만 오페라 자체에 열광하는 건 불가능이었다. 텍스트에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게 여전히 문제였다. <니벨룽의 반지>는 게르만족의 전설에 북유럽 신화를 가미하여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썼다. 영웅 지크프리트와 구원의 여성 브륀힐데의 사랑과 죽음에서 절정을 이루며, 그 과정에서 신들(보탄 · 프리카 · 프라이아 등), 난장이들(알베리히 · 미메 · 하겐), 거인들(파프너 · 파졸트), 그리고 영웅 지크프리트가 황금 반지를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이지만 결국 모두 파멸에 이르고 만다. 그런데, 이 수많은 등장인물이 벌이는 갈등이 내겐 여전히 와 닿지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