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우리가 좋아하는 계절의 중간에 서서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우리가 좋아하는 계절의 중간에 서서
  • 윤이현
  • 승인 2021.07.24 0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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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언니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왔다. 그러나 이번 여름엔 지독한 더위의 기승에 힘없이 풀이 꺾였다. 몸엔 끊임없는 갈증이 이어지고, 마음엔 무기력만 가득하다. 한 주 휴식을 취했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은 어렵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동시에 그동안 해본 적 없는 유형의 반성과 후회가 잇따른다. 내가 좀 더 야물었다면, 좀 더 독했더라면 지금쯤 무언가 하나라도 이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왜 나는 언제나 실패할까? 우울한 여름이다.
 
 아빠는 이십 대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삶이 전부 잘못된 선택으로 이뤄진 건 아닐까 하는 후회와 아픔이 요즘 따라 진하게 느껴진다. 언제는 마냥 즐거워했다가 또 금세 이런 생각에 빠지고 마는 내가 밉다. 나는 왜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매번 말을 번복하며 무너져 내리는 것일까.

 오늘 작은 언니와 문자를 했다. 언니는 최근에 내 이야기를 자신에 블로그에 올렸다고 말하면서, 동생인 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혹여나 부담을 느끼진 않을까 하고 고맙다는 말을 한 뒤, 몰래 언니의 블로그를 찾아봤다. 최근에 있었던 개인적인 일들을 나열한 글이 있었고, 그 밑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끝으로 나는 늘 내 동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동생, 물론 더 애도 아니고 나보다 더 무서운 면도 있겠지만 내가 길 건널 때 손잡고 다니던 아이여서 난 그 아기가 슬퍼하고 혼자 무거운 고민에 괴로워할 걸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가슴이 아파서. 난 다른 사람한테는 이렇게 말할 자신이 없지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절대 이렇게 말 못 하지만 동생에게만큼은 네가 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 멈추고 네가 뭐 대단한 사람 될 필요도 없고 난 네가 그냥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고 그렇게 살다 죽는 게 소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생각해보면 언니와 나는 늘 붙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정한 선이라는 게 있어서, 속 깊은 이야기를 쉽게 꺼내 보이진 못했다. 서로에게 슬픈 일이 있을 때면 항상 맛있는 걸 먹었고 사소한 것에 농담을 주고받았다. 슬픈 시간을 견디기 위해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웃었다. 그러나 내가 성인이 될 무렵, 언니가 마곡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멀어져갔다. 그사이 나는 거듭되는 입시 실패로 지쳐있었고 언니는 새 직장에서 낯설고 두려움에 적응해야만 했다. 이제 더는 고민 없이 여름밤에 동네를 산책하거나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을 수 없었기에. 우리는 각자 이따금 찾아오는 공허함과 무기력에 맞서 싸우면서 그렇게 천천히 멀어져갔다. 

 그간 나누지 못한 대화를 대신해서 언니의 블로그를 읽어봤다. 생활에 꽤 안정을 찾은 느낌이었다. 전에 보인 우울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자신의 시간을 꾸려가고 있을 때, 나는 나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벌려놓은 여러 일을 정리하고, 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마음속에 내내 짐처럼 남아있던 고민 몇 가지를 정리할 수 있었다. 우선 올해를 마지막으로 입시를 완전히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결과에 떠나서 입시라는 자체를, 영화라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 영화를 꿈꿨던 어린 소녀는 없다. 오로지 입시라는 목적에 매진하는 내가 있었을 뿐.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를 보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도 이제 지쳤다. 이만하면 됐다고 자신을 위로하고 싶다. 동시에 가슴이 뛸 또 다른 무언가를 찾고 싶다. 그 전에 그간 해오던 입시를 마무리하기 위해 오늘도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다.

 이제 내년이면, 온전한 사회인이 되어야 한다. 입시생, 사수생이라는 핑계를 대어 애써 회피해오던 현실에 나아가 몸을 부딪쳐야 한다. 오직 ‘생존’을 위한 경쟁 속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뭘 잘하지? 내가 뭘 또 할 수 있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생각들이 머리를 돌고 돌아 온종일 두통에 시달린다. 그렇지만 나를 여전히 아가 때 그때로 봐주는 사람이 있기에, 거창한 게 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는 사람 덕분에 힘이 난다. 고민을 조금 내려놓고 언니의 말처럼 그저 잘 먹고 잘 웃고 잘 자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 여름에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 한입 물고서, 그저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웃어넘겨 보려고 한다. 그러고 어딘가에서 같은 여름을 보내고 있을 언니에게도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언니의 독한 모습 속에 잠재된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있다는 걸 알아서, 남은 생은 언니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귀한 존재로 대우받고 하고픈 일을 모두 성취해낼 수 있길 바란다. 모든 게 싫어지고 힘들어지는 순간엔 맨발로 달려와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직 여기에, 우리가 좋아하던 동네 어귀의 큰 나무 아래 서 있을 테니.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손을 잡고 다녀주어서,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우리가 좋아하는 이 계절의 중간에서. 언니의 동생 영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