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피아니스트 원재연 “나는 오직 한 명, 아무도 닮지 않은 피아니스트 되겠다”
[Culture Interview]피아니스트 원재연 “나는 오직 한 명, 아무도 닮지 않은 피아니스트 되겠다”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1.08.09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슈만과 브람스로 전국 투어 리사이틀 시작
콩쿨의 지나친 상업주의 경계, 나만의 예술성 가꾸는 게 중요
“사람에게서 우러나오는 음악” 마리아 주앙 피레스에게 배워

코로나 상황에서도 젊은 비르튜오소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쇼팽 콩쿨 우승자 조성진도 훌륭하지만 오로지 조성진만 찾을 일이 아니다. 탄탄한 실력과 명성으로 대관령음악제를 이끌고 있는 손열음, 최근 귀국한 자유와 열정의 아이콘 임현정, 젊은 세대의 어법으로 소통하는 신세대 피아니스트 한지호, 한국인 특유의 음악성으로 가난의 악조건을 돌파한 문지영, 잘츠부르크 유학 중 올해 몬트리얼 콩쿨을 석권한 김수연 등 일일이 이름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이 개성있는 피아니즘을 선보이고 있다. BTS가 주도하는 K-Pop한류에 이어, 이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K-클래식 한류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피아니스트 원재연의 연주 모습 ⓒDAEGU CONCERT HOUSE
▲피아니스트 원재연의 연주 모습 ⓒDAEGU CONCERT HOUSE

이 중 정직한 음악성과 학구적 태도로 꾸준히 내공을 더하고 있는 원재연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17년 부조니 콩쿨 준우승과 청중상을 수상했지만 콩쿨 체질이 아니라며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 왔다. 모차르트부터 라흐마니노프까지 협주곡 레퍼토리를 확장해 왔고. 음악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기 위해 작은 음악회나 지방 연주회를 마다하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이런 그가 이 더위와 코로나의 시련 속에서 슈만과 브람스로 전국 투어에 나섰다니 그 열정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지난 7월 31일 고양아람누리에서 시작된 그의 전국투어 리사이틀은 오는 8월 21일 저녁 7시 광주문예회관, 8월 26일 저녁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9월 2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으로 이어진다. 첫 연주회 사흘 뒤인 8월 3일 오후 2시, 고양아람누리에 있는 카페 아람뜨레에서 피아니스트 원재연을 만나 약 한 시간 반 가량 대화를 나눴다. 

연주 끝나고 휴식 시간을 가졌나?

그렇다.(웃음) 좀 쉬었으니 또 연습하려 한다.

그날 연주, 만족스러웠는지?

내가 생각한 소리와 웨이브가 그대로 잘 나왔고, 진심이 청중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아서 괜찮았다. 음악이 좀 불편하다 싶으면 괴롭기 마련이다. 실수 없이 잘 연주했어도 이건 내가 생각한 음악이 아니야, 그런 느낌이면 속상하다. 이번에는 내가 생각한 음악을 청중들과 잘 교감한 것 같다. 

마음을 담아서 조용히 연주했던 슈만 <환상곡> 3악장이 가장 인상 깊었다. 

슈만의 원래 악보를 읽고 클라라는 싫다고 했었다. 1악장 끝에 나온 베토벤 <멀리있는 연인에게> 모티브가 3악장 끝에 또 나오는 건 중언부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수정한 버전이 출판됐고 다들 그렇게 연주해 왔다. 하지만 나는 클라라 의견에 동의가 되지 않았다. 같은 모티브가 두 번 나오지만 화성이 다르지 않나. 1975년 부다페스트에서 원래 버전의 악보가 발견됐을 때, 이 버전으로 연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5년 동안 벼른 끝에 이번에 연주하게 됐다.

원재연은 이번 연주곡목을 내년에 독일에서 녹음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년에 녹음할 때는 이 버전과 출판된 버전을 둘 다 연주해서 비교 감상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그에 앞서 1월에는 뉴욕에서 스카를리티 소나타를 녹음할 계획이다. 스카를라티는 오랫동안 흥미를 느껴온 레퍼토리다. 레퍼토리에 경계를 두진 않지만 독일에서 공부했으니 아무래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브람스 등 독일 작곡가의 작품을 많이 하게 된다. 내년은 유럽 여러 도시에서 데뷔 무대가 있어서 바쁠 것 같아요. 

그는 1988년생,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 피아니스트 중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이다. 

요즘 개성 있는 연주자들이 많은데, 눈길이 가는 연주자를 꼽는다면?

솔직히 다른 사람의 연주를 그렇게 많이 듣진 않는다. 어떤 기자가 플레트네프에게 질문했다. “마에스트로, 유튜브에서 마르타 아르헤리치 등 다른 분의 연주 들으시나요?”. 이에 플레트네프 선생은 씩 웃으며 “다른 분 연주는 안 듣고, 어린이들의 합창이나 피아노, 바이올린 연주 같은 거 듣는다”라고 대답했다. 우문현답일 수 있는데, 그런 데서 영감을 얻는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 경지는 아니지만, 젊은 연주자들이 SNS에 올라온 거 보는 정도일 뿐 열심히 찾아듣진 않는다. 경쟁이나 비교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연주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원재연의 연주 모습 ⓒDAEGU CONCERT HOUSE
▲피아니스트 원재연의 연주 모습 ⓒDAEGU CONCERT HOUSE

원재연은 2017년 부조니 콩쿨에서 준우승과 함께 청중상을 수상하여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콩쿨이라면 손사래를 친다. 젊은 음악가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줄 세우는 콩쿨이란 게 음악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부조니 콩쿨의 특징은 무엇일까?

부조니는 20세기 초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다. 레퍼토리가 좀 무겁다. 그의 곡을 연주해야 하는데 아방가르트한 면이 커서 어렵다. 게다가 그가 편곡한 바흐 곡도 연주해야 해요. 아무튼 유서 깊은 콩쿨이긴 하다. 

부조니 콩쿨 때 재미있는 기억이나 에피소드가 있나?

콩쿨? 재미있는 기억 하나도 없다. 심사위원 중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아서 내 생각을 잘 이해해 주셨기 때문에 1라운드부터 점수가 좋았다. 특히 케빈 케너 선생님이 나의 예술성을 좋아해 주셨고, 개성을 높게 평가해 주셨다. 선생님은 “한국 피아니스트와 많이 연주해 봤는데 너는 특별하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1등은 못 했지만, 진정한 쇼팽 전문가에게 그런 칭찬을 받으니 자부심을 느꼈고, 굉장히 고마웠다. 

케빈 케너는 1990년 제12회 쇼팽 콩쿨에서 1등 없는 2등을 수상한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듀오 연주를 많이 하는 피아니스트다.

콩쿨 안 나가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였나?

부조니 콩쿨 끝나니 나이가 벌써 30살이더라. 그 뒤엔 연주 기회가 많아졌고, 시리즈 녹음도 했고, 그래서 콩쿨은 그만 나가게 됐다. 워낙 콩쿨을 좋아하지 않기도 했다. 콩쿨 경력이 피아니스트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콩쿨 우승하면 지명도가 올라가고 연주 기회가 많아지니 좋은 건 사실이지만, 중요한 건 음악의 퀄리티이다. 

“이 젊은 피아니스트는 진한 재능을 천부적으로 타고났다. 대단히 섬세한 음악과 매력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1980년 쇼팽 콩쿨 우승자인 베트남의 거장 당 타이손 선생은 원재연에게 빛나는 찬사를 남겼다. 그는 원재연에게 상업주의를 경계하라고 강조하셨다. 

일본의 콩쿨에서 떨어졌는데, 심사위원이던 당 타이손 선생께서 부당하다며 굉장히 분노하셨다. 그때 인연이 시작됐고, 지금도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어릴 적부터 당 타이손 선생의 쇼팽 마주르카 들으며 자랐으니 내겐 커다란 영광이다. 2년 전 볼차노에서 연주할 때 마침 부조니 콩쿨이 열리고 있었고 당 타이손 선생님이 심사위원으로 와 계셨다. 아침을 함께 먹자고 부르셔서 갔는데, 내게 속마음을 토로하시더라. “쇼팽 콩쿨 1등 하고 나서 연주를 많이 했지만 피아노를 관두고 싶은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연주하면서 행복하지 않았다, 돈도 많이 벌었지만 이게 정말 내게 맞는 일인가 회의가 들었다, 상업적인 게 너무 힘들었다, 돈을 못 벌어서 경제적으로 힘들지언정 상업적인 것에 휘둘리지 말라.” 당 타이손 선생은 제가 질문하면 언제나 친절히 답해 주신다. 나의 재능과 잠재력을 신뢰해 주셔서 언제나 감사한 마음이다.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포르투갈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 원재연에게 그녀는 영혼의 멘토와 같다. 피레스는 리스본에서 3시간 거리의 시골 자택에 세계의 젊은 피아니스트를 초청, 레슨을 해 주며 음악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이 또한 음악의 상업화에 맞서는실천으로 볼 수 있다. 

마리아 주앙 피레스 선생님도 말씀하신다. “음악만 하고 싶은데, 꿈만 갖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피레스 선생님은 집에서 연주회를 여신다. 콘서트 시리즈를 기획해서 직접 하시는데, 이게 꽤 유명해져서 폴란드,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온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너무 큰 연주회 욕심 부리지 말고 이런 데서 시작하면 재연도 얻는 게 많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일이 선생님에겐 가능하지만 내겐 어렵다. 너무 큰 연주만 추구하면서 뒷풀이 가서 와인 마시며 인사하는 것, 그런 것 너무 하지 말라, 맞는 말씀이지만, 그런 걸 안 하면 커리어를 만들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클래식이란 것도 결국은 아티스트의 인지도가 중요하고, 후원자가 누군지도 중요하니, 어쩔 수 없이 시장 논리가 지배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적절히 조화시켜야 할 것 같다. 

▲2019 교향악축제 대전시향과의 공연 후 지휘를 맡은 제임스저드와 포옹하는 피아니스트 원재연 ⓒ예술의전당
▲2019 교향악축제 대전시향과의 공연 후 지휘를 맡은 제임스저드와 포옹하는 피아니스트 원재연 ⓒ예술의전당

마리아 주앙 피레스 선생에겐 요즘도 계속 배우는지?

부조니 콩쿨 끝나고 쾰른에서 공부할 때, 뵙고 싶다고 연락 드렸더니 어느 날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네 연주 좋았다, 원한다면 여름에 와라.” 그래서 8일 정도 있으면서 레슨을 5번 받았다, 레슨도 좋았지만 대화에서 많이 배웠고, 생각하는 법에서 자극을 받았다.  

피레스 선생 다큐 보니까 학생들에게 줄 빵을 직접 만드시더라. 깜짝 놀랐다. 피아니스트의 소중한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하시다니, 그만큼 소탈하다는 뜻일 거다. 이런 면이 음악에도 자연스레 배어나는 것 같았다.

그렇다. 피레스 선생님의 쇼팽 정말 좋아하는데, 이건 만들어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에게서 우러나오는 음악이다. 음악 자체가 사람이다.

음악적으로 배운 게 있다면 바로 그런 점이겠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정도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너같이 피아노 잘 치는 사람 처음 봤다, 하지만 피아노를 잘 치는 것과 음악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피레스 선생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선생님 앞에서 피아노를 치려니까 너무 떨려서 못 치겠더라. 그런 나를 눈치챈 선생님이 “재연, 일어나 봐요”, 하셨다. 그래서 일어났더니 “저기 갔다 와 봐요”라고 하시더라.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갔다 왔다. 그러니 다시 “앉아 봐요, 앉자마자 쳐 보세요.”라고 하셨고, 앉자마자 치니까 연주가 됐다. 그게 레슨은 아니겠지만,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문제라는 것, 자연스레, 편안하게, 프레시하게 연주하라는 것, 어렵게 생각하면 어려워지고 쉽게 생각하면 쉬워진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피레스 선생님을 모차르트 전문가로만 생각하는 건 그를 잘 모르는 것이다. 선생님은 손이 작아서 어쩔 수 없이 모차르트로 시작하셨지만 사실은 브람스와 베토벤이 좋다고 하신다. 젊었을 때는 모터사이클 타는 게 취미셨다. 선생님은 77살이 되셨지만 늘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좋은 피아니스트”라고 말씀하신다. 5년의 인연, 코로나 풀리면 뵙자고 했는데 아직도 포르투갈에 못 가고 있다. 내년에는 꼭 찾아뵈면 좋겠다. 

좀 가벼운 질문으로 돌아왔다.

▲피아니스트 원재연
▲피아니스트 원재연

연습은 하루 몇 시간 정도 하나?

연주회 앞두고 있을 때는 10시간 정도 하기도 하는데, 연습을 안 하는 날도 있다. 워낙 스트레스 받는 일이니까. 하지만 연습에서 얻는 즐거움도 있다. 브람스가 왜 이 곡을 이렇게 썼을까, 왜 이런 프레이즈를 만들었을까 생각하면 연습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한다. 

프로그램 노트 직접 쓰신 것 보니까 문헌도 많이 읽는 것 같다.

공부는 하는 편이지만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고 많은 걸 알아도 음악은 ‘학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고, 그게 음악의 진실성이라고 생각한다. 음악가로서 연주하는 그 순간에 느끼는 게 더 중요하지, 책 읽고 논문 읽고 아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운동이나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자전거를 즐겨 타는데 요즘은 너무 더워서 나가질 못 한다. 그래서 홈트레이닝, 기구를 사서 집에서라도 운동을 조금씩이라도 매일 하고 있다.

그는 피아노를 11살에 시작했다. 프로페셔널 연주자로는 좀 늦은 편이다. 그는 한예종에서 강충모 선생님에게 배우면서 전공을 결심하게 됐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시작했다. 처음엔 전공할 생각이 없었다. 늦게 시작한 게 좋은 점도 있다. 어려서부터 경쟁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갖고 있는 예술성을 자유롭게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강충모 선생님은 피아노를 치는 ‘손’이 아니라, 좋은 소리를 만드는 ‘귀’를 선물해 주셨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자라난 셈이다. 

그렇다, 콩쿨에 연연하지 않고…. 피아노 연주할 때 행복하다. 연주 자체가 행복하다는 피아니스트가 별로 없다. 아르헤리치도 자기는 불행하다 입버릇처럼 말했고, 호로비츠도 와이프가 등 떠밀어서 연주장 나갔고, 그런데 연습하고 공부하는 게 때로는 재미있고, 연주하면서 이 순간이 행복하다, 느낄 때가 많다. 이렇게 보면 참 축복받은 삶인 것 같다. 더불어, 연주할 때 가장 많이 배우는 것 같다. 레슨보다 더 많이…. 

원재연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먼 젊은 음악가다. 그가 꿈꾸는 미래의 자화상이 궁금했다. 

앞으로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가?

아르헤리치나 플레트네프 같은 분은 너무나 훌륭한 피아니스트지만, 나는 오직 하나뿐인 내가 되고 싶다. 아무도 닮지 않은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목표다. 소콜로프는 소콜로프, 볼로도스는 볼로도스, 호로비츠는 호로비츠, 이런 분들을 누구랑 비슷하다고 평가하지 않는 것처럼. 나의 재능과 개성이 무엇인지 계속 탐구해 가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