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장혜림의 <침묵>
[이근수의 무용평론]장혜림의 <침묵>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8.1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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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침묵은 금’(토마스 칼라일)이고 ‘소리 없음이 최고의 소리’(無音至音, 장자)다. 장혜림(99아트컴퍼니)의 ’침묵‘(6.24~26, M극장)은 제목과 같이 50분 공연시간 대부분 소리를 지운 채 진행된다. 여섯 명 여자무용수들의 팔 동작이 만들어내는 시위 소리와 숨소리만이 작은 무대를 빼곡히 채운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침묵’의 원작은 루마니아 태생 여류작가 헤르타 뮐러의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그네를 타듯 규칙적으로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숨쉬기란 뜻을 <숨그네>로 명명하면서 어떠한 악조건 하에서도 끝까지 살아남고마는 생명의 끈질김을 묘파한 작품이었다. 2016년 ‘침묵’의 초연을 보고 썼던 기록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시종일관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작품의 주제의식이다. 장혜림은 ‘침묵’이 ‘숨그네’(2015), ‘심연’(2016)과 함께 영혼을 어루만지는 나인티9(Ninety Nine)의 춤 레퍼토리를 구성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첫 작품인 ‘숨그네’가 추위와 배고픔에 기인하는 육신의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두 번 째 ‘심연’의 주제는 소중한 것을 잃고 울부짖는 비탄과 상실감일 것이다. ‘침묵’의 텍스트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른다. 시간과 공간은 바뀌지만 고통 속에 침묵하는 인간의 조건은 동일하다는 것이 작품의 주제가 된다.”

2021년 침묵은 새롭게 창작된다. 전쟁의 위험이나 재해로 인한 상실감을 표현했던 전작들과 달리 장혜림이 새롭게 주목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다. 공정성이 상실되고 불평등이 평등으로 포장된 사회, 기득권자에 의한 성폭력이 빈발하는 주변을 바라보면서 젊은이들이 느끼는 고통이 작품의 주제가 된다. 거대한 음모처럼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박탈된 기회를 바라보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2~30대가 느끼는 절망과 무력감은 소리 없는 몸짓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숨소리가 음악소리를 대체하고 무대미술은 어둠으로 대치된 가운데 희미한 국지조명아래 여섯 명 젊은 무용수들의 극한적인 몸짓만이 무대를 채운다.

흰색 천이 4각의 무대바닥 전체를 덮고 있다. 한 여인(장서이)이 오른쪽 무대 상수에서 움직임을 시작한다. 양 팔을 들어 올려 하늘을 행하고 두 손목을 모아 땅을 가리킨다. 온 몸을 바닥에 대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하늘과 땅과 몸이 하나가 되는 의식이다. 다섯 명 무용수(송효영, 양설희, 이고운, 이승아, 추세령)는 무대 왼쪽 가장자리에 ‘ㄱ’자 형으로 도열해 있다. 아래 위 모두 검정색으로 통일된 옷차림이다. 장서이의 춤 다음 다시 침묵과 어둠, 그 뒤에 다섯이 한 덩어리 되어 일사불란하게 펼치는 군무 동작은 크고 활달하며 빠르고 힘차다.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은 오직 ‘Yes' 한 마디 뿐이다. 앞으로 모아진 두 손은 묶여 있는 몸의 구속을 은유하고 반복되는 ’Yes' 구령은 복종을 의미할 것이다. 시선은 어딘가 위 쪽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그들의 동공은 모두 닫혀 있다. 눈먼 채 무언가에 고정된 시선은 그들이 마지막 본 빛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그 형상이 마음속 깊이 박혀 갈망을 형성한다. 눈먼 자들의 세계에서 몸짓은 고통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고 과거의 기억과 회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침묵과 어둠으로 대변된다. 무용수의 몸이 끌릴 때마다 흰 바닥 위에 이미지가 생성된다. 홍건한 피처럼 이미지가 얼룩져갈 떄 그들의 몸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무대 한 쪽에 낡은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객석에서 일어난 피아니스트(강 다니엘)가 무대로 올라서면 새 음악이 연주된다. ‘Frei aber einsam(자유롭지만 고독하게)’란 제목의 창작곡이다. 음색은 밝고 서정적이다. 군무에 이어 장서이와 이고운의 듀엣이 펼쳐지고 50분 공연은 이고운의 마지막 솔로로 막을 내린다. 강 다니엘의 마지막 음악이 죽어가는 영혼을 깨우듯 장혜림의 ‘침묵’이 고통받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     

장혜림의 무용단 이름은 나인티나인(99)이다. 99%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1%는 무용가의 현실인식이다. 현실에 대한 이 1%의 영감을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99%의 땀을 흘린다는 뜻이다.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이 1%의 영감을 포착하는 능력이다. 영감이 살아있고 영감을 상징화할 수 있는 땀이 있기에 예술은 가치있고 예술가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