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Asian Fusion’과 원융무애(圓融無礙)의 정신성 Ⅰ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Asian Fusion’과 원융무애(圓融無礙)의 정신성 Ⅰ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1.08.1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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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Ⅰ. 예술 실험의 파이어니어로서의 홍지윤

홍지윤은 전방위 작가다. 그녀는 비단 전공인 동양화뿐만 아니라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 사진, 미디어 아트, 출판, 공공미술, 패션, 그리고 예술상품 콜라보레이션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그 중심에 서화동원(書畵同源)과 시서화 일체(詩書畵一體), 지필묵(紙筆墨)을 기본으로 하는 동양화의 화론이 자리 잡고 있다. 말하자면 동양화 특유의 원칙에 철저하되, 그 원칙으로부터 다양한 예술적 변용과 매체의 융합(convergence)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홍지윤은 동양화를 전공한 대다수의 작가들이 지필묵(紙筆墨)만을 고집하는 것과는 달리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에 능하다. 그녀는 2001년 연세 디지털 헐리우드에서 3D, 에니메이션 과정을 이수할 만큼 새로운 매체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보인다. 이 디지털 기반이 결국은 오늘의 전방위 작가 홍지윤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즉, 수묵영상을 실험하는가 하면,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융합을 꾀하는 가운데, 이미 2008년에 LED미디어 파사드(A Patner for Life, 삼성생명사옥, 서울)를 필두로 홍지윤의 예술세계는 보다 폭이 넓어져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녀 특유의 서체와 꽃과 새, 인간을 테마로 한 예술언어의 양식화(樣式化)는 캔버스를 비롯한 다양한 표현매체에 시서화(詩書畵) 3절(三絶)을 담아냄으로써, 동양화의 주체성을 견지하는 한편, 세계화(globalization)를 전제로 한 현대화에 성공하고 있다.

오늘날 떠오르는 글로벌 아티스트로서 홍지윤을 거론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녀의 예술세계가 지닌 이러한 장점 때문일 것이다. 즉, 오늘날 국제 미술계의 현장에서 보편적인 언어로 소통되는 오브제와 설치, 미디어 아트와 같은 매체를 수용할 줄 아는 개방성과,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국제적 감각이 어우러져 세련된 예술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홍지윤의 경우, 각종 비엔날레를 통해 국제무대에 진출한 대다수의 한국작가들과는 달리, 한국화를 바탕으로 한 뚜렷한 미학적 정체성과 지필묵과 한지를 비롯한 고유의 매체, 오방색을 근간으로 한 특유의 색채로 무장하여 확고한 미감적 정체성을 확보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이러한 성과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것은 한국 고유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문화적 유산에 뿌리박지 못한 예술세계는 그만큼 뚜렷한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즉, 당대의 문화적 보편성이라는 미명 하에 서구화된 예술은 역으로 객관적인 문화적 특수성에 기인한 세계적 보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며, 보다 엄격히 말하자면 평준화된 예술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예술이 과연 영속성을 지닐 수 있을까? 우리는 세계 미술의 현장이나 미술시장에서 자국(自國)의 문화와 전통, 역사에 젖줄을 대지 못하고 단지 세계의 미술 트렌트에 편승한 일시적인 유행으로는 미래라는 엄격한 시간의 검증을 통과하기 어려우며, 후세에 거장이나 혹은 고전으로 남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통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미술의 현장에서 뛰고 있는 한국의 작가 중 과연 그런 작가가 몇 명이나 되는가 하는 사실을 상기할 때, 우리는 부정적인 인식에 도달한다.

홍지윤이 거론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맹목적으로 현대의 미술 트렌드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의 문화와 예술적 전통에 대한 강한 애정을 바탕으로 현대의 미감적 보편성을 추구하는 그녀의 태도야 말로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돋보이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세계는 이제 선의의 문화 경쟁이라는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그런 연유로 각국의 작가들은 이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소리 없는 문화의 경쟁은 국제무대에서 자국(自國)의 목소리를 뚜렷이 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국 작가가 영국의 목소리를 내거나 아프리카 작가가 일본의 목소리를 내는 것만큼 큰 웃음거리는 없을 것이다.

홍지윤은 일찍이 20대 시절에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지필묵에 의한 동양화의 기본에 충실했다.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고르게 섭렵하고 드로잉을 포함, 수 천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문인화의 기본인 사군자를 비롯하여 산수화의 정석이라 일컫는 다양한 준법(峻法)도 터득했다. 채색화 역시 수묵화 못지않게 기본에 충실하여 표현의 다양한 기교를 키웠다. 오늘날 홍지윤이 화려한 오방색을 바탕으로 꽃과 새, 여인상 등을 모티브로 하여 눈부신 형광색을 도입하기까지에는 채색화의 탄탄한 기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의식의 밑바닥에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방성은 홍지윤의 장점이다. 그녀는 불가사리가 쇠를 먹고 자란다는 전설처럼, 자신의 호기심을 끄는 것이면 무엇이든 일정한 실험을 거친 후 과감히 수용하는 아방가르드 전사의 기질을 타고 났다. 그녀가 패션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의상 디자인의 영역에 까지 도전한 사례는 단순히 호기심의 차원이라기보다는 패션 디자이너를 어머니로 둔 가계(家系)의 영향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