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집콕문화소개, 좋은 영화 다시보기
[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집콕문화소개, 좋은 영화 다시보기
  •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 승인 2021.08.1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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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With코로나시대 Self-Culture의 방법이 다양해지는 가운데 필자의 지난 컬럼에서 운을 띄운 것을 시작으로 집콕 문화의 소개 중 여운이 남는 예술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연탄가스 사건으로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배우와 작품을 보호하고자 고통을 감내하며 침묵을 지켰다는 조창호 감독에 대한 최근 기사를 접하며 호기심으로 해당 영화 ‘다른 길이 있다’를 보았다. 이에 감동받은 필자는 그의 작품세계가 궁금하여 또 다른 영화 ‘피터팬의 공식’을 찾아 보았고 본 글은 영화 ‘피터팬의 공식’에 대한 글이다.

성장하는 이들을 안아주는 영화 ‘피터팬의 공식’

영화 ‘피터팬의 공식’은 2006년 개봉된 조창호 감독의 데뷔작으로 감독 특유의 진중함과 감성으로 등장인물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다소 파격적인 설정과 독특하고 참신한 스토리 구성이 특징이며 당시 ‘무서운 신예’ ‘빛나는 연기’라는 평가를 받은 온주완 배우의 초기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함께 호흡을 맞춘 김호정 배우의 연기는 그야말로 캐릭터의 안성맞춤 연기로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강한 흡인력을 갖게 한다.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제8회 프랑스 도빌영화제’에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 한 바 있으며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드라마 경쟁 부문 등에 초청되는 등 이미 국제적으로 인증받은 영화지만 대부분의 예술영화가 그렇듯 대중에게는 잘 알려진 영화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를 읽어보겠다.

“바닷가에서 울고 있는 너를 보았지”

영화는 수영을 하는 주인공 19세의 한수(온주완 분)가 엄마의 자살기도 이후 힘든 과정을 겪으며 몸과 마음으로 방황을 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성장통을 혹독하게 겪는 주인공과 옆집 음악선생(김호정 분)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되는 데 이사 온 첫날부터 들리는 음악선생의 잔잔한 피아노 소리는 소년에게 필요한 것이 정서적인 위로이며 외부의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위로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예고한다. 식물처럼 누워있는 엄마와는 반대로 파도처럼 점점 밀려 나가는 주인공. 삶이 불안정한 19세 소년은 스타킹을 쓰고 마트를 털기도 하며 옆집 음악선생의 속옷을 훔치기도 한다. 누워있는 엄마의 몸을 닦아주는 모습과 대답 없는 엄마에게 무덤덤히 말을 건네는 장면에서 필자는 잠시 영화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성적호기심이 가득한 주인공이 자위를 할 수 있도록 뒤돌아서 돕는 음악선생과의 장면은 매우 자극적인 것 같지만 이게 전부다. 두 대상의 행위를 독특하게 연출한 감독의 의도를 고민해보았다. 방황하는 주인공에게 마음을 건네는 어른, 음악선생을 통해 좀 더 성숙한 이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한다. 열아홉 살 틴에이저의 솔직한 욕구가 그려지는 동안 힘든 소년을 황폐해지도록 놔둘 수 없기에 언저리에서 돕는 성인. 두 대상자의 문제해결 간극을 오묘하게 느낄 수 있다. 감정의 절제로 영화는 더욱 솔직하게 묘사되며 다양한 인물들의 소소한 등장도 여운을 남긴다.

두 주인공의 상징성을 필자의 방법으로 분류해보았다. 시기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과 그를 바라보는 어른, 또는 정서적으로 힘든 이와 그에게 손 내미는 이. 본능적으로 구조가 다른 남자와 여자로 분류할 수 있겠고 바다에서 울고 있는 아이와 더 큰 바다로 갈 수 있도록 보내고 싶은 어른 등 다양하게 해석해보니, 불안정한 십대의 성장영화의 틀 속에 다양한 층위가 읽혀진다. 누구든 성장에 동참하도록 만들어주는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감독은 영화 속 대사로 비유와 상징을 보물찾기처럼 숨겨두었다. 예리하게 은은하게.

김명종의 영화음악

영화 속 음악선생이 주인공 한수의 집으로 이사 오는 첫날 집 밖에서 연주하는 피아노선율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과 정서를 보여주는 데 충분하다. 처한 환경만큼이나 불안정한 주인공과 그것을 걱정하며 지켜보는 감상자들에게 모차르트처럼 연주되는 선율은 모두의 마음을 감싸며 위로와 용기를 제공한다. 장면마다 이어지는 음악이 소나타형식처럼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느꼈는데 역시 찾아보니 1악장부터 4악장의 피아노 소리가 영화구성을 잘 따르고 있었다. 김명종 음악의 특징인 듯 피아노 타건의 선명함으로 영화의 깊이를 전달하고 조력할 뿐 옥타브를 넘나들거나 화성적으로 극적 코드를 제시하면서 음악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다. 영화를 밟으며 욕심을 부리는 음악이 의외로 많은데 오히려 김명종의 곡은 영화에 대한 배려가 느껴져서 스크린의 감성에 빠지게 만든다.

“안아주면 안돼요?”

지인에게 어렵게 구한 피터팬의 공식 CD에 쓰인 문장이다. 어쩌면 코로나19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잃어버린 행위의 말 아니겠는가. 19살 주인공만큼 불안정한 존재들이다. 나의 친절이 너의 방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 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바라봐주는 것이 진정한 어른. 성장이 필요한 이들에게 용기를 찾을 수 있도록 안아주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성장통의 중심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좋은 영화인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한줄기 빛도 없이 암흑 속에 있거나 성장하는 것이 두려운 청소년, 성장에 대한 이슈가 있는 모든 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다. 코로나19가 문화의 성장마저 더디게 만들고 있다. 각자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다 보면 어느덧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네 꼭 안아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