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소리를 깨우는 새로운 무대…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뮤지컬 ‘금악(禁樂)’
[현장프리뷰]소리를 깨우는 새로운 무대…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뮤지컬 ‘금악(禁樂)’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8.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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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공연
국악·뮤지컬·연극 등 장르 어우러짐 돋보여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절대 연주 되선 안 될 금지된 악보 ‘금악(禁樂)’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손을 거쳐 세상 밖으로 나왔다.

통일신라로부터 비밀스럽게 전해져 온 금지된 악보 <금악>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기묘한 사건을 다루는 뮤지컬 <금악:禁樂>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예술감독 원일)이 처음 시도하는 창작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장악원’을 배경으로 한다. 조선 순조 재위 말기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장악원에서 펼쳐지는 사건을 담았다.

▲뮤지컬 ‘금악’ 프레스콜 장면 시연/성율 役 유주혜, 갈 役 추다혜 (제공=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뮤지컬 ‘금악’ 프레스콜 장면 시연/성율 役 유주혜, 갈 役 추다혜 (제공=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공연 개막 다음날인 19일 오후, 뮤지컬 <금악> 온라인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인해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됐다. 이날 자리에는 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과 김정민 작가, 성찬경 작곡가, 손다혜 작곡가, 한웅원 음악감독, 조인호 안무가, 배우 유주혜, 고은영, 조풍래, 황건하, 추다혜, 윤진웅, 남경주, 한범희, 조수황, 함영선이 참석했다.

원일 감독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공연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 음악은 이 시대의 모든 음악을 표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플랫폼을 통해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쉽게 듣는 것이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에 다양성에 맞춘 뮤지컬을 제작해야할 때라고 생각했다”라며 “궁중 장악원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이 시대의 다양한 음악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헛소리를 하거나 혼잣말을 할 때 문득 누군가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작곡가라면 그런 경험을 한 번쯤을 하는 것 같다. 인간이라면 또 다른 목소리나 욕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을 소리로 불러내는 능력을 재밌게 그려내고자 했다”라고 덧붙였다.

작곡은 각 분야의 4명의 창작자가 함께 했다. 뮤지컬 <니진스키>의 작곡가 성찬경과 창극과 경극의 만남으로 큰 이슈를 모은 창극 <패왕별희>의 작곡가 손다혜, 국악과 재즈 등 다양한 음악 분야에서 활동 중인 음악감독 한웅원, 원일이 공동 작곡으로 함께 해 다양한 음악 장르의 융합을 보여준다.

▲뮤지컬 ‘금악’ 프레스콜 장면 시연/성율 役 유주혜, 갈 役 추다혜 (제공=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뮤지컬 ‘금악’ 프레스콜 장면 시연/성율 役 유주혜 (제공=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작곡가들은 이번 협업 과정에서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성찬경 작곡가는 “<금악>이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멜로디를 작곡하는 게 중요했다.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갈’이라는 캐릭터는 신비롭고 영험하기도 하면서 직관적이고 자극적이면서도 대중적이어야 했다. 굉장히 많은 것들을 염두에 둬야 했다. 작곡 초기부터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작업했다”라고 말했다.

손다혜 작곡가는 “4명의 창작자가 만든 작품인데, 특별히 튀는 음악이 없도록 오랜 시간 협업하며 많은 논의를 거쳤다. 한 명의 작곡가가 쓴 것처럼 통일감을 유지하되, 장단이나 궁중 악기 등으로 넘버 별 특색을 살리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한웅원 음악 감독은 “음악감독으로서 오케스트라 편곡과 음악 전체를 조율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세상의 모든 소리’라는 것에 초점을 뒀다. 소리들이 서로 만났을 때는 효명세자가 추구하는 소리처럼 질서 있게 배열되기도 하고, ‘갈’을 만난 ‘율’처럼 혼란을 야기하면서도 매력적인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소리들이 합쳐졌을 때 어떤 서사가 만들어질까 고민하며 작업했다”고 작업 과정을 전했다.

배우들은 오프닝곡 ‘애애하다’를 시작으로 ‘소리’, ‘눈 속에 우는 학’, ‘들려주고 싶어’, ‘갈’, ‘자연스러운 것’ 등을 통해 한국 음악의 창법과 전통 악기를 적극 활용한 음악적 시도가 눈에 띄는 무대를 선보였다. 

유주혜는 ‘들려주고 싶어’와 ‘불’을, 고은영은 ‘자연스러운 것’과 ‘비가 되어’를 시연하며, 들려오는 모든 소리의 비밀을 풀어내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성율’을 그려냈다.

유주혜는 “성율이라는 역할이 소리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친구여서 실제로 귀를 많이 열려고 노력했다. 집중하니 많은 소리가 들렸다”라며 “사극이지만 판타지물이기 때문에 성율이 듣는 것, 보는 것,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됐다. 성율의 시선을 통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고, 진정성을 가지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고은영은 “두 시간 반 동안 다양한 서사가 나오는데, 그 심리를 어떻게 따라갈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대본과 음악이 너무 좋아서 그 순간을 잘 살아내고 집중해서 들으면 새롭게 찾아지는 감정이 많았다”라고 캐릭터 표현 과정을 전했다.

▲뮤지컬 ‘금악’ 프레스콜 장면 시연/이영 役 황건하 (제공=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뮤지컬 ‘금악’ 프레스콜 장면 시연/이영 役 황건하 (제공=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이영 역을 맡은 조풍래는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객석에서 그 시대의 말투나 의상, 행동을 봤을 때 편하게 볼 수 있고, 어색하지 않게 느낄 수 있게 노력했다”라고 설명했다.

<금악>을 통해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황건하는 ‘눈 속에 우는 학’ 등을 선보이며 자연스러운 연기와 무대를 장악하는 가창력으로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그는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읽었고, 이 작품을 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공연을 앞두고 있는데, 오랜 시간 꿈꿔온 자리인 만큼 행복하게 이 시간을 누릴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사람의 욕망을 먹고 자라나는 존재로 <금악>의 판타지적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갈’ 역은 ‘추다혜차지스’의 추다혜와 뮤지컬배우 윤진웅이 맡았다. 추다혜는 “‘갈’은 사람이 아니다 보니 움직임, 손짓, 발짓, 표정 등 외적인 부분에서부터 내면으로 채워가며 캐릭터를 구축하려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같은 역을 맡은 윤진웅은 “이 캐릭터가 사람이랑 다른 부분은 뭘까 고민했다. 갈은 욕망에 의해 태어났고 갈증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사람과 다른 움직임을 중점으로 해석하려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소리꾼, 연극배우 등 기존 뮤지컬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캐스팅 조합이다. 

김조순 역의 한범희는 “극단에서 정극 연기만 하다가 이런 작업을 처음 해봤다. 낯설기도 했지만 새로운 도전이었다. 한 무대에서 뮤지컬 배우, 소리꾼 등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과 함게 작업할 수 있다는 게 무한한 영광이다”라며 “아직 무대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고민이고, 이 고민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것 같다. 끝날 때까지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했다.

임새 역의 조수황은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처음이라 어려움도 있었지만, 음악적 영역을 넓힐 수 있어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연기적인 부분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길을 찾을 수 있었다”라며 “임새라는 캐릭터를 단순히 ‘눈치가 없다’고 생각될 수 있는데, (그가 짝사랑하는) 성율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다른 걸 챙기지 못한다는 해석으로 연기했다”라고 준비 과정을 전했다.

▲뮤지컬 ‘금악’ 프레스콜 장면 시연/성율 役 고은영, 이영 役 조풍래 (제공=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뮤지컬 ‘금악’ 프레스콜 장면 시연/성율 役 고은영, 이영 役 조풍래 (제공=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금악>에서 눈에 띄는 또 한 가지는 최소화 된 무대 장치다. 원일 감독은 “상업 뮤지컬에 비하면 예산이 충분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소리를 자신 있게 무대의 메인 테마로 내세우려 했다”라며 “처음부터 (상징적이고 단순화 된) 양식적 무대를 만들기로 작정했다. 소리에 따라 공간이 변하고,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관객들을 상상하게 한다”라고 무대에 대해 설명했다.

원 감독은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상실하고 있다. ‘성율’ 역시 커다란 상실감을 안고 있지만, 소리로 삶의 존재를 찾아가는 인물이다. 뮤지컬을 보며 코로나19로 뭔가를 상실한 분은 채울 수 있는 에너지를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선보이는 첫 번째 뮤지컬 <금악>은 오는 29일까지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