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박대성 개인전 《靜觀自得: Insight》, 과거-현재 산수를 담은 수묵화
[전시 리뷰] 박대성 개인전 《靜觀自得: Insight》, 과거-현재 산수를 담은 수묵화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8.2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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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듯한 붓질이 전하는 산세 기운...수묵화 다양한 주제 전하는 ‘고미’ 연작
내년 7월 미국 순회전 앞둔 국내 마지막 개인전
미국 서부 LA카운티미술관 시작으로 하버드대 등 명문대 순회전시 열어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여름의 설원, 눈 내리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함이 담긴 전시를 만났다. 우리나라 산수를 직접 답사하고 화폭 안에 풍광의 아름다움과 자연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까지 담아내는 수묵화 대가 소산 박대성 전시다.

▲박대성, 한라산 봉우리, 202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박대성, 한라산 봉우리, 202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23일까지 한 달간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박대성 개인전 《靜觀自得: Insight》는 박대성이 기존에 선보였던 작품의 주제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담아낸 신작들을 전시한다. 靜觀自得(정관자득)은 사물이나 현상을 고요히 관찰하면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다는 의미다. 박대성은 이번 개인전에서 그동안 대작으로 표현해왔던 산수를 소작으로도 표현해 조금 더 날카로워진 필법과 함축적 표현으로 의미를 전한다.

전시는 인사아트센터 세 개 층에서 선보인다. 1층과 2층에서는 산수화 작품을 전시하고, 지하 1층에선 박대성 작가의 새로운 ‘고미’연작을 공개한다. 1층 전시공간으로 들어서면 <한라산 봉우리>를 만날 수 있다. 전시장 바닥까지 펼쳐져 있는 거대한 한라산 그림은 관람객들을 단번에 녹음과 폭포가 뿜어내는 에너지 가득한 자연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림 우측에 자리 잡고 있는 나무 곡선과 좌측에 자리한 나무 곡선을 번갈아 보다 보면 나무가 뿜는 에너지와 자유로운 자연의 흐름을 느껴볼 수 있다.

<한라산 봉우리>를 감상하고 좌측으로 몸을 틀면 또 다른 대작인 <불국 설경>을 볼 수 있다. 기자는 이 그림을 마주한 순간 계절 잊는 경험을 했다. 기자가 서 있는 시간은 한여름 더위가 맹렬한 8월의 복판인데,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눈 내리는 소리만 들리는 불국사로 떠날 수 있었다. 전시장을 은은하게 울리는 에어컨 소리 또한 설원 속 고요하게 들리는 바람 소리와도 같았다.

▲박대성, 불국설경.202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박대성, 불국설경.202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박대성은 1990년대 초, 현대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다. 하지만 뉴욕에서 그는 서구 모더니즘 미술이 현대화의 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한국으로 돌아와 경주 불국사로 향했다. 그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이 깊어지는 계기가 된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전시 서문 통해 귀국길에서 곧장 불국사로 향한 박대성의 일화를 전한다. 경주로 향한 박 작가는 두 발로 서서 두 눈으로 불국사를 바라보자 그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고 한다. 기운생동의 느낌이 한순간에 전해진 때였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은 “붓끝이 운률(韻律)에 실린 양 살아 움직인다”라는 말이다. 박대성은 기운생동의 자질을 타고난 이지만 거기에 계속해서 배움과 노력을 보태 임계치(臨界値) 문턱을 넘어선 작가다. <불국 설경>이 전한 여름의 설원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눈발이 그려지지 않은 여백에서도 설원의 질감과 온도가 전해졌다.

전시에서 함께 볼 수 있는 영상에서 박대성 작가는 ‘끊임없는 노력’에 대해 얘기한다. 박 작가는 “사람들이 내게 그림을 몇 시간 그리냐고 물으면, 나는 ‘25시간’이라고 대답한다”라고 전한다. 붓끝이 흔적을 남기지 않은 여백에서도 기운을 녹여내는 그의 그림이 그 시간을 보여준다.

▲2층 전시장 우측 벽면 전시 작품, 작은 화폭 안 달과 나무가 돋보인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2층 전시장 우측 벽면 전시 작품, 작은 화폭 안 달과 나무가 돋보인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2층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4개의 작은 크기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화폭 안에는 모두 집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비슷한 듯 전혀 다른 힘을 뿜고 있는 것이 다채롭게 다가온다. 대작에선 터져 나오듯 번진 힘이 작은 화폭 안에서는 작게 휘몰아치며 묵직하게 힘을 전한다. 이 4개의 작품에선 달의 형상이 돋보인다. 여백으로 표현된 달과 노란색으로 채워진 동그란 달의 모양은 같은 것을 표현했지만 다른 감성을 전한다.

전시에서는 조안(鳥眼)과 어안(魚眼)으로 바라본 산수를 그려낸 작품도 만날 수 있다. 1층에선 <금강> 작품인데, 독수리의 시각으로 땅을 내려다본 부감법과 다시점을 적절히 이용한 작품이다. 거대한 산맥이 하나의 행성처럼 표현된 작품은 익숙한 우리네 산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작은 화폭 안에서 가까이 있는 산세와 저 멀리 있는 산맥까지 아울러 볼 수 있게끔 하는 작품은 공간 사이의 거리를 확확 좁혀 새로운 감각을 전한다.

또한, 2층에서 볼 수 있는 <금수강산>은 물고기의 시각으로 바라본 금강산맥이다. 박 작가는 “강산을 열 번도 넘게 가보고 많이 그려봐서 주요 봉우리들의 특징이 눈에 보이는 듯 해 새로운 구도를 고민하던 중 물고기의 시각으로 보면 둥글게 보인다는 것에 착안해 형상을 상상해 그렸다”라고 작품을 설명한다. <금수강산> 속 힘있게 찍힌 붓질은 먹이 가진 생의 느낌을 그대로 가둬놓은 듯했다. 거칠게 찍혀나간 붓질은 산맥 위에서 풍파를 견디고 자라온 나무가 됐다. 검은 먹의 표현 안에서 반짝이는 빛들은 새롭게 느껴지는 금수강산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박대성, 금강, 202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박대성, 금강, 202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금강설경>은 2층에 자리하고 있는 대작이다. 작품을 먼 곳에서 한 번 바라보고 우측에서 좌측으로 걸어가면서 천천히 감상했다. 멀리서 봤을 땐 금강 산맥이 전하는 오랜 시간의 웅장함이 전달됐다면, 걸어가며 본 <금강설경>은 금강산 수많은 봉우리를 직접 다녀오는 느낌을 전한다. 거대한 화폭은 걸어가면서 그림을 즐길 수 있고, 움직이면서 바라보게 되는 화폭 속 절경은 관람객이 직접 그곳을 딛고 나아가는 느낌을 선사한다.

박대성의 담대하면서 섬세한 붓질과 농묵, 담묵의 기술적인 조절로 탄생된 수묵화는 광각렌즈를 통해 보는 듯한 파노라믹 뷰를 평면적으로 연출한다. 수묵화의 현대성을 탐구하고자 뉴욕으로 떠났다가 다시 고국에서 붓을 든 그의 작품은 자신이 이룩한 현대 수묵화와 과거 수묵화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지하 1층에 전시된 ‘고미’연작은 박대성이 직접 수집한 전통 도자기와 공예품을 사실적이고 담백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외에 그의 서체작품과 말과 소를 그린 작은 크기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기존 ‘고미’연작도 큰 크기의 작품이 많았는데, 이번엔 예전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금이 가고 깨진 막 사발과 청화백자를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은 마치 그것을 사진처럼 보이게도 했다. 하지만 빛을 받으며 드러나는 색의 흔적들이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고미’ 연작에서는 농익은 미를 품고 있는 공예품과 어우러져 그림으로 보이는 서체들도 주목할 지점이다. 박대성은 글씨인가 하면 그림이고, 그림인가 하면 글씨인 서화동원(書畫同源)을 추구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는 내년에 열리는 미국 순회전에 앞서 개최되는 마지막 개인 전시다. 김 가나아트 이사장은 이번 전시를 “해외 순회전을 앞둔 국내 애호가들을 위한, 개봉 영화 시사회 같은 출국전시”라고 설명한다.

내년 7월부터 박대성은 미국 서부에 있는 LACMA(LA카운티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같은 해 가을에 미국 동부의 여러 명문대학교에서 순회전을 진행한다. 하버드대학교의 한국학연구소(CGIS)를 시작으로 다트머스대학교(Dartmouth College) 내에 위치한 후드 미술관(Hood Museum of Art),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 메리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Mary Washington)에서 연이어 개최될 예정이다.

▲박대성,구룡폭포, 2021, Ink on paper, 140 x 60 cm, 55.1 x 23.6 in.(사진=가나아트 제공)
▲박대성,구룡폭포, 2021, Ink on paper, 140 x 60 cm, 55.1 x 23.6 in.(사진=가나아트 제공)

북미 순회전 기간에는 다트머스 대학교의 김성림 교수를 중심으로 미국 미술사학자들이 집필한 한국 현대미술을 다루는 서적이 출간될 예정이다. 서양에서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을 미술사적으로 비교·분석한 최초 서적으로, 한국 전통 수묵화 현대화를 이끈 박대성 작가를 주목한다.

이번 전시 기획에 참여한 신리사 담당은 “출간될 책에서 박대성 작가를 한 섹션으로 뽑아 다루며 박 작가의 ‘고미’ 연작을 강조했다”라며 “박대성 작가가 직접 수집해 회화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가 가지고 있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주목했고, 서예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2층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달과 나무, 집이 놓여있는 <칠성각>, <추정>, <만월>, <버들>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가까이서도 바라보면 나무가 가진 역동성과 둥그렇게 떠 있는 달에서 동양의 힘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먹먹한 고요의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불국사가 가진 정취를 김상옥 시인의 구절을 빌려 얘기한다. “하나는 전쟁, 하나는 평화”라는 감상이다. 삼국통일 전쟁 끝에 신라가 얻었던 평화의 노래였다.

1945년 태어나, 6·25 전란 속에서 부모를 잃고 자신의 팔 한쪽을 잃었다. 박 작가가 걸어온 시간은 우리 민족의 겪은 아픔을 정통으로 간직한 채 살아온 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산수의 힘과 아름다움 전하는 화폭에서 물에 먹이 번지듯 슬픔이 퍼지는 것은, 박대성이 지나온 시간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박대성 작가 인터뷰>

내년 미국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어떤 경향을 담고 있는가.

국내 전시와 특별히 구분할 지점은 없다. 내가 평소 살아오며 느낀 지극히 우리적이고, 한국적인, 동양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을 구사하고자 한다.

미국 전시 기간 중에 출간되는 서적에서 박대성 작가 고미 연작을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고미 연작에 특별한 관심이 쏟아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동양화에서 전통 공예품을 평소에 잘 다루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고미 연작을 시작한 이유는, 그 고미에 우리의 참미(美)가 담겨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네 미학은 선조들의 생활 풍토에 스며든 여러 가지 소품들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의 도자기, 목기, 신라 토기 등. 그런 것이 아주 한국적이다. 다른 나라도 고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것에는 특유의 자연중심의 소박함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 내가 고미를 그려온 이유 중 하나는 동양화의 리얼리티에 대한 탐구가 있다. 과거에 그림으로 생활하고 생활비를 벌 때 왜 동양화는 리얼리티가 없는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리얼리티를 고민하다가 고미를 그리게 됐다. 오늘 날 나의 고미는 잘 들여다봐야한다. 서양화의 경우 그 배경을 모두 다른 색을 칠해야 그 하고자 하는 말이 전해진다. 하지만, 동양화는 그 제약에서 벗어나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넣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채색을 친환경적인 토채를 사용하다보니 현실감을 갖고 있다. 흙이나 돌가루 같은 자연채로 종이자체를 물들여버릴 수 있어 서양화에 비해 오랜 시간을 견디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고미연작의 배경 그려진 글씨들도 인상적으로 봤다.

그 지점이 인상적인 것은 서와 화의 동화 때문일 것이다. 서(書)가 화(畵)가 되고, 화가 서가 돼 한 몸체를 이루는 그림들이다. 나는 우리의 언어가 바로 우리 문화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림이자 글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인간이 신문명을 이루고 발달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서(書)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신석기 구석기 때 상형에서 시작돼 문자가 생겨 소통이 시작됐고,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의 위대한 창제로, 빠른 시일 내 많은 문화를 담아내고 소통할 수 있는 자질을 갖게됐다. 언어는 문화를 담고 표현할 수 있다.

작품 속, 달을 여백으로 두기도 하고 노란색을 입히기도 한다. 또 불국설경의 경우 눈을 완전한 여백으로 표현했다. 전시에서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채색으로 일관된 서양화보다 먹으로 색을 절제해 색을 쓰는 동양화의 특성이 돋보였을 것이다. 여백이 동양화의 묘미이자, 동양의 정신을 의미한다. 서양사회에서는 불국설경을 표현 불가능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흰 색을 칠하지 않고, 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우리네 특유의 정신일 것이다. 여백의 표현 동양 정신을 구현해내는 과정과 같다.

미국에서 동양화를 선보이는 순회 개인전을 열게 된다. 그림에 담고 있는 지향이 있다면.

우리민족이 우리네의 예술적 능력을 자각하길 바라는 뜻을 항상 품고 작품을 하고 있다. 우리 민족만큼 아트적 기질을 가진 이들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많은 곳을 여행하고, 음식과 풍광을 모두 즐기고, 외국의 재래시장‧박물관을 가봤다. 그런데, 우리 민족만큼 아기자기 하고 다양한 기질을 가진 민족이 드물다.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삼면의 바다와 거대한 산맥들도 주목해볼 수 있다. 금수강산, 백화만발. 우리네 국토 역시 우리가 가진 예술적 자양분을 빛내준다.

한국의 문화는 BTS(방탄소년단)가 시작이라고 본다. 한류가 우리 문화 전부가 아니라 국악, 동양화 등 세계를 뒤흔들 문화적 원석을 우리는 갖고 있다. 최근 우리 모두가 서양문명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우리 문화장점을 깨우고 싶다. 우리는 잘 할 수 있고, 잘하고 있다. 이 점을 계속해서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