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현대인을 위한 처용무”…국립무용단 <다섯 오>
[현장프리뷰]“현대인을 위한 처용무”…국립무용단 <다섯 오>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9.03 0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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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5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손인영의 첫 안무작
환경문제 바라보는 안무가 시선 동양사상에 접목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역병에 대한 두려움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전염병을 퍼뜨리는 역신은 고대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등장한 인물이 바로 처용이라는 신인(神人)이다.

처용이 역신을 물리친 춤과 노래의 힘은 우리 문화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조선 궁중의 나례, 즉 귀신 쫓는 의식에서 처용무는 가장 중요한 춤이었다. 그리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처용의 힘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립무용단 ‘다섯 오’ 창작진 (왼쪽부터) 라예송 음악감독, 손인영 예술감독, 정민선 미술감독 (사진=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다섯 오’ 창작진 (왼쪽부터) 라예송 음악감독, 손인영 예술감독, 정민선 미술감독 (사진=국립극장 제공)

국립극장(극장장 김철호) 전속단체 국립무용단은 신작 <다섯 오>를 이달 초연한다. 손인영 예술감독의 첫 안무작으로,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안무가의 시선을 동양의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접목해 풀어낸다. 

2일 오후 진행된 <다섯 오> 프레스콜에서 손인영 감독은 “지금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것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의 삶이 초래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라며 “지금의 이런 상황을 작품으로 풀어내고 싶었고, 제작진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역병을 몰아낸 처용이 나왔다. 처용을 소환해서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며 주제를 전달하고자 했다”라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다섯 오>는 오방처용무, 승무, 씻김굿 등을 바탕으로 만든 ‘현대적 한국무용’이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환경문제를 동양의 음양오행과 접목해 풀어냈다. 총 3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환경이 파괴된 현재–음양오행의 에너지-공존에 대한 깨달음’의 흐름으로 전개된다. 

▲국립무용단 ‘다섯 오-화(火)’ 장면 시연 모습(사진=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다섯 오-화(火)’ 장면 시연 모습(사진=국립극장 제공)

1막은 환경 파괴로 고통받고 불안해하는 현대인들 앞에 오행과 동양적 자연관을 상징하는 다섯 처용이 등장해 오방처용무를 선보인다. 2막은 오방처용무를 길잡이 삼아 음양오행의 에너지를 만나는 무대다. 새로운 생명과 성장을 상징하는 목(木)은 현대적인 춤사위로 풀어내며, 화(火)는 승무에서 영감을 얻어 사방으로 발산하는 에너지를 표현한다. 죽음을 나타내는 수(水)는 씻김굿에서 차용한 움직임으로, 균형을 의미하는 토(土)는 전통 무술인 택견에서 영감을 받은 안무로, 원시적인 힘과 생명력을 드러내는 금(金)은 남성 무용수의 에너지 넘치는 군무로 풀어낸다. 3막에 이르러서는 인류에게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만 있다면, 건강한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다섯 오’ 안무를 맡은 손인영 예술감독은 전통과 현대, 두 개를 구분 짓기보다 이들을 전부 소화해 새로운 형태로 표현하려 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한국무용의 순환적인 호흡과 낮은 무게중심의 원리를 뿌리에 두고 현대적인 움직임을 결합해 ‘현대적 한국무용’을 선보이려 했다. 이는 곧 우리 춤이 나아가야 할 방향”라고 설명했다.

 

▲국립무용단 ‘다섯 오-수(水)’ 장면 시연 모습(사진=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다섯 오-수(水)’ 장면 시연 모습(사진=국립극장 제공)

무대·의상·영상디자인은 정민선 미술감독이 맡았다. 반사가 잘 되는 댄스플로어를 활용해 이면의 세상을 보여주는 듯한 신비로운 공간을 연출하며, 끝없이 반복하는 구조물을 사용해 오행의 흐름을 극대화했다. 

정 감독은 “목ㆍ화ㆍ수ㆍ토ㆍ금은 사계절의 흐름을 상징하는 대표 원소로 상생 관계를 이룬다”라며 “이는 일부 작은 조각이 전체와 비슷한 우주의 프랙탈(fractal) 구조와도 같다. 즉, 자연의 자기복제성을 나타내고자 했다. 결국 우리는 하나이고 다 이어져 있다는 것”이라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음악감독 라예송이 음악감독은 음양오행의 상징성을 담은 음악을 새롭게 작곡했다. 그는 “다섯 가지 원소의 특성을 반영한 악기로 구성해 음악을 만들었다”라며 “토(土)에서는 흙으로 빚은 뒤 구워서 만든 관악기인 훈과 가죽 타악기를 넣어서 소리를 냈고, 뒤에 나오는 금(金)에서는 훈이 당연히 빠지고 쇳소리를 내어 금의 기운을 형상화하는데 받침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오는 것은 사람의 소리, 인성(人聲)이다”라고 밝혔다.

방역 지침 등 여건상 부득이하게 현장 라이브 연주를 진행하지 못했지만, 음원은 기계를 쓰지 않고 모든 연주자가 실제 공연처럼 실연하여 녹음했다. 현장에서 “다른 무용 작품보다 사운드가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기자의 의견에 라 감독은 “각 장면별로 등장하는 악기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많은 것이 6~7대”라며 “원래 라이브로 연주하려 했기 때문에, 5명이 연주해도 객석을 압도할만한 에너지를 내고 싶었다. 그 의도가 전달됐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국립무용단 ‘다섯 오’ 장면 시연 모습(사진=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 ‘다섯 오’ 장면 시연 모습(사진=국립극장 제공)

작품 타이틀이 단조로운 것 아니냐는 현장의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손인영 감독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에게서 (제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그중 어렵지 않은 것으로 선택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정민선 미술감독은 “‘다섯’은 동양의 음양오행을 뜻하기도 하지만, 서양의 5원소가 될 수도 있다”라며 “동서양을 아우르며, 세계관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앞서 손인영 감독의 ‘<다섯 오>는 우리 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답변에 대한 추가 질문도 있었다. ’방향’이 안무가 손인영 개인의 길인지 국립무용단 전체의 길인지 묻는 기자의 물음에 손 감독은 “춤은 추는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된다. 각자의 개성이 담기는 것이기 때문에, 단원들의 안무와 작품에는 나의 색깔이 묻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며 “아마 다른 예술 감독이 오게 되면 또 달라지겠지만, 내가 있는 동안 무용단의 움직임은 <다섯 오>와 비슷하게 갈 것 같다”

<다섯 오>는 지난 시즌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순연돼, 이달 2일부터 5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