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당, 1970년대 중반 한국 문화예술 현대사 비춘 『글, 최민』
열화당, 1970년대 중반 한국 문화예술 현대사 비춘 『글, 최민』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9.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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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시인‧ 한예종 초대 영상원장 ‘최민’ 글 134편
유고(遺稿) 문집 역사 이어 '글'로 '사람' 읽어
▲열화당 『글, 최민』/ 최민 저 / 145×220mm / 864면 / 양장 / 38,000원 (사진=열화당 제공)
▲열화당 『글, 최민』/ 최민 저 / 145×220mm / 864면 / 양장 / 38,000원 (사진=열화당 제공)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뛰어난 통찰력과 필력을 가졌지만, 생전에는 제대로 된 저서를 출간하지 못한 미술평론가이자, 시인, ‘현실과 발언’ 창립동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영상원장 최민(崔旻, 1944–2018)의 글이 다시금 세상으로 나왔다. 열화당에서 출간한 『글, 최민』이다.

『글, 최민』은 1970년대 중반부터 사십여 년 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과 미발표 글을 모은 최민의 최초이자 유일한 저서로, 한국 문화예술 현대사의 단면이자 그 시대를 살아 간 한 지식인의 고뇌가 담긴 기록이다. 제목이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듯, 『글, 최민』은 사십여 년에 걸쳐 이어지는 글들로 최민이라는 사람을, 그가 관통한 시대를 충실히 비춰 보여준다.

최민은 오랜 시간동안 끊임없이 공부하고 부지런히 글을 쓰는 이였다. 이미지 연구, 미술비평, 사진비평, 전시평, 작가론, 영화시론, 미술사, 문학평론, 서평, 단상 등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며 짧거나 긴 글들을 잡지나 일간지에 꾸준히 기고했다. 그 분량과 주제의 폭, 내용의 깊이가 상당하다.

그를 따르며 가까이했던 전시기획자 이섭은 이번 책의 서문 「너르고 느린 경각(警覺)의 글밭에서」로 최민을 이해하는 몇 가지 방향과 그의 글을 읽는 의미를 짚어 준다. 자신의 안내가 독자들의 자유로운 사유를 막지 않도록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 글이다.

본문에는 최민이 1976년부터 2018년까지 쓴 134편의 글이 실려 있다. 글의 성격이나 주제에 따라 크게 8개 묶음으로 나누고 그 안에선 연도순으로 배열하되 연관 주제는 이어지도록 적절히 조정한 편집이다. 프랑스 유학 시절과 직후 이어진 이미지 연구(‘이미지의 힘’)를 가장 먼저 배치하고, 미술비평(‘미술의 쓸모’), 전시평 및 작가론(‘전시장 안과 밖에서’), 사진비평(‘사진의 자리’), 영화시론(‘영화, 시대유감’), 서양미술사(‘서구미술의 정신’), 짧은 칼럼(‘생각의 조각’), 서평 외 산문(‘책과 사람들’) 순으로 구성했다.

출판사는 ‘책의 편집 방향은 하나의 방식일 뿐, 읽는 방법은 각자 찾아 나가도 좋다’라는 조언을 건넨다. 시대별이나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를 추출해서 몇 가지 타래를 만들어 가며 읽는 방법도 제안한다.

『글, 최민』은 언뜻 흔한 글 모음집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자가 세상을 떠난 뒤 출판되는 유고(遺稿) 문집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열화당 측은 “요즘은 책을 하나의 상품으로 기획, 집필, 출판하는 것이 가장 표준적인 방식이 돼 버렸으나, 유고(遺稿) 문집의 원형은 한 사람이 생전에 남긴 글을 모으고 그를 제대로 아는 가까운 이의 글을 덧붙여 정리함으로써, 후대가 역사를 배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토대로 삼기 위한 목적이 컸다”라고 설명한다.

츨판사는 ‘요즘처럼 책을 너무도 쉽게 내는 시대에서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려는 욕망이 없었던 성정을 가진 이의 글’로 『글, 최민』을 소개한다. 이 책은 동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고답적인 형식일지라도 실은 가장 기본적인 ‘읽기’의 한 방법을 다시금 지금으로 끌어올린다. 『글, 최민』 은 그 단정한 본보기 중 하나로 제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