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 개막
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 개막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9.0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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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맞아 변화된 시대 풍경 다룬 젊은 작가 주목
올해 11회 맞은 국공립 미술관 개최 비엔날레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코로나19 확산으로 개막이 연기됐던 제 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One Escape at a Time)》가 6일 온라인 개막식을 갖고 그 막을 열었다. 서울시립미술관(관장 백지숙)은 오는 8일부터 11월 2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비엔날레에 참여한 국내외 작가 41명과 팀의 작품 58점을 선보인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코로나19 유행으로 연기돼 3년 만에 개최된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도피주의(escapism)’다.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개인의 욕망을 예술과 대중문화의 상상력으로 연결해 살펴본다. 현실 밖을 향한 상상력은 타자와 공감하는 통로를 만들고,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을 경험하도록 이끈다.

융 마(Yung Ma) 예술 감독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도피주의’에 얽힌 부정적 함의를 걷어내고, 인식의 전환과 폭넓은 사회적 연대를 얘기한다. 온라인 개막식에 참여한 융마감독은 이번 비엔날레의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미국시트콤 “One day at a time(원데이앳어타임)”을 소개했다. 미국시트콤 원데이앳어타임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방영된 작품으로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는 3대 가족의 일상을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온라인 개막식에서 비엔날레 모티프를 설명하는 융마감독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온라인 개막식에서 비엔날레 모티프가 된 "One day at a time(원데이앳어타임)”을  설명하는 융마감독

융마 감독은 “도피주의를 어떻게 얘기해야할지 고민이 많았을 때 대중매체로 얘기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One day at a time’은 관습적인 시트콤 영상 언어를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지만, 시트콤 속에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긴급한 이슈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어, 도피주의를 얘기할 수 있는 흥미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도피주의’가 단순히 현실을 도피하려는 것인지, 우리가 매일 직면하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항해하고 연결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 될 수 있을지 탐구하는 플랫폼이 된다. 인종주의, 젠더, 계급, 정체성, 이주, 경제 위기, 환경 문제 등 코로나 팬데믹 장기화로 더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쟁점들을 ‘도피주의’를 비평적 도구로 삼아 탐색해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1년 연기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코로나 이전 기획에서 많은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었다. 기획자들의 대면 만남은 줄어들고, 재택근무 일상화, 온라인 회의 등으로 작품을 준비하고 논의해야 했다.

초대된 작가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심리적으로 두려움, 불안, 슬픔과 불확실성 등을 경험하게 됐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코로나와 함께한 1년이라는 시간은 작가들에게 현실 도피와 고립이 일상화되는 우울한 시대적 풍경을 감각하게 했다. 작가들은 1년이란 잠시 멈춘 시간동안 변화하는 주변 상황을 감지하고, 새로운 감각을 작품에 반영해 형식적 전환을 이루는 기회로 삼았다.

▲미네르바 쿠에바스, <작은 풍경을 위한 레시피>, 2021, 벽면에 아크릴, 가변 크기 (사진=SeMA 제공)

비엔날레에서는 시대에 닥쳐온 변화와 우울을 예술의 언어로 전유하는 작가들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 중국 작가 리랴오(LI Liao)는 코로나19 확산 당시 중국 우한에 거주하고 있었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리랴오는 우한 봉쇄를 경험하게 됐다. 그 시간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작품을 준비하고 있던 작가에게 새로운 감각을 전했다. 리랴오는 코로나 확산 이전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전부 취소해야 했고, 완전히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이게 됐다. 리랴오는 이번 비엔날레에 손바닥 위로 기다란 나무 장대의 균형을 잡으며 봉쇄령으로 인적이 드문 우한의 거리 곳곳을 누비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비디오 작품을 소개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세계 대중문화의 지형도에 하나의 음악 장로로 자리 잡은 케이팝에 대한 탐구도 선보인다. 케이팝이 구성되는 방식을 참조하거나 기존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등 대중문화의 여러 면모를 미술적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들을 소개한다. 필리핀 작가 아이사 혹슨(Eisa JOCSON)은 동료들과 ‘슈퍼우먼’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한국 케이팝 아이돌의 음악과 안무를 차용해 팬데믹 시대에 대처하는 필리핀 정부의 모순을 비판한다.

융마 감독은 개막식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비엔날레가 연기되고, 서로 만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코로나 전과 후 달라진 기획방향에 대한 질문에 융마 감독은 ‘당연히 많이 달라졌다’라고 답했다.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영국은 18개월 간 봉쇄조치가 있어서,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라며 “온라인으로 준비하는 과정이 까다로웠고, 개막에 대한 불확실성도 경험하는 과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아이사 혹슨, 슈퍼우먼 돌봄의 제국, 2021
▲아이사 혹슨, 슈퍼우먼 돌봄의 제국, 2021, 뮤직 비디오와 설치, 컬러, 사운드, 12분 17초, 가변 크기 (사진=SeMA 제공)

그는 팬데믹 시대에서 비엔날레를 준비하며 온라인 채널에 대한 탐험을 많이 하게 됐고, 현시대 온라인 공간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융마 감독은 ‘온라인 공간’이 시대의 흐름이긴 하나, 작품을 실제로 마주하고 느끼는 것도 필요한 과정일 것이라는 견해를 전했다.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개막식 인사말을 통해 지난해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백 관장은 “작년에 비엔날레를 연기할 때만해도 1년 후에는 이 코로나가 끝나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 지구적 위기는 아직까지 수그러들지 않았고, 사회적 갈등도 더욱 심해졌다”라며 “‘하루하루 탈출한다’는 이 시대의 적중률 높은 예언이었고, 이번 비엔날레가 시대에 신선한 전환을 가져오고 미래를 향한 탈출구가 돼주길 바란다”라며 비엔날레 개막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