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오페라 ‘박하사탕’ : 통속(通俗)과 영성(靈性) 사이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오페라 ‘박하사탕’ : 통속(通俗)과 영성(靈性) 사이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1.09.0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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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작품을 보고 말씀해주세요.” 이소영 제작감독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당당한 한 마디에서, 소신과 믿음이 전달되었다.

오페라 ‘박하사탕’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 또한 기대보단 우려였다. 주변인들은 왜 우려를 했던 것일까? 첫째, 영화 ‘박하사탕’(2000)에 대한 인상이 워낙 강하다. 철로에서의 자살장면을 비롯해, 인상적인 장면과 대사가 모두 ‘영화적’이다. 둘째, 영화에서는 주인공(김영호)의 개인적 고뇌에 크게 초점을 둔다. 2000년대 초반이라면, 공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 세대가 과연 시민군의 진압의 앞잡이가 된 공수부대원에게 관심이 갈까? 셋째, 기존 영화의 서사에 충실히 오페라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노래를 통해서 감동할 부분은 어디인가?

오페라 ‘박하사탕’을 보았다. (8. 27~28. 국립극장 해오름) 앞의 모든 우려가 기우였다. 박하사탕은 심지어 ‘한국창작오페라의 새로운 지평을 연 완성도 높은 문제작’이었다. 초연작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비평적 안목’으로 걸러낸 작업을 거친 수작을 보는 듯했다. 이건 분명 평론가이기도 한 이소영 제작감독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오페라 ‘박하사탕’을 ‘통속(通俗)과 영성(靈性)의 현명한 줄타기’라고 부르려 한다. 통속은 조광화(대본)에 해당하고, 영성은 이건용(작곡)에 해당한다. 영화 ‘박하사탕’에선 김영호에게 치중하게 되는데, 조광화는 주변인물들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특히 그런 인물들이 모두 ‘평범한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순임은 물론이요, 홍자, 명숙, 미애, 함지박, 화순댁이라는 여성이 무대에서 모두 살아난다. 조광화가 그녀들의 ‘현실’을 잘 보여주었다면, 이건용은 노래를 통해서 ‘내면’을 잘 드러낸다. 캐릭터가 전혀다른 조광화와 이건용이 서로를 상보했고, 결국 상생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건용은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발표해서 대개 인정을 받았다. 오페라 ‘박하사탕’은 이제 이건용의 첫 번째 꼽을 대표작이 되었다. 1980년을 겪은 한 사람(작곡가)으로서, ‘지식인으로서 부채감’과 ‘작곡가로서의 사명감’이 작품의 진정성과 깊이에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이 작품은 당시를 살았던 많은 이에게 ‘소시민으로서의 동일감’을 주면서, 저마다 조금씩 갖을 수 밖에 없는 ‘광주(시민군)에 대한 미안함’을 상쇄시키게 해주었다. 

1부의 명장면은 ‘망월동의 노래’. 묘비의 이름을 불러낸다. 이건용 특유의 종교음악적 영성(靈性)으로 그들을 불러낸다. 담담하게 절제된 선율과 지나침이 없는 화성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페라 ‘박하사탕’의 카피이기도 한 ‘삶과 죽음 한꺼번에 있으니...’를 실감케 하면서, 이 오페라를 성가(Chants)이자, 진혼곡(Requiem)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제의(ritual)처럼 숭고하다. 

오페라 ‘박하사탕’에는 ‘그렇지요’ (하종오 시, 이건용 곡)가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맞물린다. 나처럼 이 노래를 이미 아는 사람에겐 더 없는 연민으로 눈물흘리게 하지만,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과 세대들에게도 앞으로 ‘광주의 역사성’ 또는 ‘생사(生死)의 연관성’과 연결되는 잠언(箴言)같은 노래가 되리라 예감한다.  

오페라로 만들어진 ‘박하사탕’이란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일까? 오페라 박하사탕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 김영호가 나쁜 사람인가? 강현기가 나쁜 사람인가? 저마다의 삶의 테두리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자 노력한 소시민이었다. 오페라는 대조되는 여러 사람을 담담히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들 모두가 ‘오일팔’이라는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임을 절절히 깨닫게 한다. 오페라 ‘박하사탕’은 사려 깊고 현명하다. 김영호도 한 땐 쑥부쟁이꽃을 좋아했던 인물임을 알려준다. 

해마다 그날이 오면, 오페라 ‘박하사탕’의 무대를 보고 싶다. 나이와 성별, 세대와 감성에 따라 저마다 끌리는 부분이 다르겠지? 나는 이 3중창에 가슴 저민다. “잘 살피어 / 몸을 간수하는 게 효도 / 그게 사랑 / 내 목숨이 / 다만 나의 것만이 아님을 / 아는 게 사랑” (박명숙 & 화순댁 & 함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