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작은 빛들을 모아 도시의 밤을 아름답게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작은 빛들을 모아 도시의 밤을 아름답게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1.09.08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필자가 사는 동네는 오래된 동네라서 가로등이나 보안등 시설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해가 지면 꽤 어둡다. 게다가 가로수는 세월에 따라 무성해져 그렇지 않아도 뜨문뜨문 설치된 가로등을 가려버리기 일쑤이다. 살기에 불편함은 없으나 경관조명 개념이 없던 때에 지어진 아파트라 건물 조명도 따로 없고 사람이 드나드는 입구에도 침침한 조명이 하나 켜져 있다. 주변에 나무는 무성하나 요즘 짓는 공동주택처럼 나무를 멋지게 비추는 조명 하나 볼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낯선 빛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는데 마침 우리 아파트 건물 바로 앞에도 못 보던 네모 조명이 하나 서있어 살펴보니 건물별 번호 표시 사인이었다. 

아파트 꼭대기 옆면에 커다랗게 쓰여진 그 숫자가 밤에 잘 보이지 않을 뿐 더러 잘 보인다고 해도 낯선 사람이 근처에 와서 확인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20년이 넘게 살면서도 건물 배치에 맞게 일목요연하게 번호를 붙이지 않아 늘 혼란스러웠는데 참 잘했다 싶었다.

저녁이 되면 이 사인에 조명이 들어와 별 것도 아닌 것이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머리를 들어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되어 좋고, 밝게 빛나는 숫자가 나를 환영하는 착각마저 든다. 청사초롱을 들고 마중 나와 있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이랄까.

우리는 도시의 경쟁력을 이야기 할 때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기준을 삼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주로 어디를 가는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통계를 내고 이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신중하게 검토한다. 

이 때, 처음 방문하는 장소에서 낯설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처음 가는 장소에서 어디로 움직일지를 고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공간에 대해 편안함과 호의를 갖게 한다. 따라서 백화점이나 호텔 등 공간에 오래 머물게 하고 재방문률을 높이기 위하여 공간을 쉽게 읽도록 여러 장치- 예를 들면, 에스컬레이터를 숨겨놓는 백화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 를 한다. 

도시의 주간의 이미지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익숙해질 기회가 있지만 야간 이미지는 그렇지 않다. 도시마다 자랑하는 야간경관 이미지를 보면 선으로 보이는 도로, 점으로 보여지는 번화가, 빌딩숲의 실내에서 나오는 조명, 이 정도가 표현이 될 뿐이다. 그 속 안에 들어 있는 독특한 그 도시만의 이미지가 보여 지기 쉽지 않다. 

낯설지 않은 도시, 아인트호벤은 필립스 본사가 위치해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산업구조의 변화로 사람들은 떠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을 때, 도시 조명 개선을 통해 지금의 도시 위상을 이루어 냈다. 2004년경 아인트호벤은 이미 도시조명 계획과 더불어 공공조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였는데 공공 건축물과 공공오픈 스페이스, 도로, 광고, 행사 및 축제로 나누고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을 기능별로 분류, 각각의 색조명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서 - 예를 들면, 상업 시설은 초록색, 업무 시설은 파란색, 문화 예술 관련 시설은 핑크 - 도시의 구조를 읽기 쉽게 계획하였다. 또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몰 후까지 활동이 기대되는 상업지역의 공공 공간은 작가와의 협업을 통한 미디어 아트와 같은 예술을 도입, 명소화될 수 있도록 통합적인 야간경관을 계획하였다.

도시의 야간경관에 있어서 조명에 의한 시각적 언어는 그 어떤 이정표보다 그 도시를 돌아보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도시를 둘러보면 수많은 요소들이 잠재적 조명기구의 역할을 하고 이들이 신호로서 말을 걸어 올 수 있다. 공원의 파고라나 벤치, 가로의 펜스와 화분대, 교차로의 볼라드, 자전거 거치대, 휴지통 이러한 것들에 빛을 더했을 때 밝기가 필요한 곳에서는 보안등의 역할을 할 것이고 좁은 골목길에서는 비록 기준 조도에는 미칠지 못할지라도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될 것이다.

광원의 크기가 작아지는 데에 한계가 있었고 그 수명도 현저히 짧았던 과거에는 불가능했으나 이제 광원이 작아지고 수명도 늘었을 뿐 아니라 조명이 소비하는 에너지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 보행등과 가로등에만 의지했던 공간조명 요소를 이제는 다양하게 고려하고 확장해 보자고 제안한다.

물론 유지, 관리라는 엄청난 숙제를 해결해야 하겠지만 도시의 삶 속에서 정서적으로 안정과 안전의 메시지에 대한 비용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아직 도시 빛 정책 속에 들어오지 않은 십자가나 독보적으로 높은 휘도값을 인정받고 있는 간판류 역시 도시조명 요소의 하나로 다루어져 밝기나 발광방식에 대한 기준을 다른 조명요소들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도록 바꾸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