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예술인가 놀이인가, 국립현대무용단 <HIP合>
[이근수의 무용평론]예술인가 놀이인가, 국립현대무용단 <HIP合>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9.0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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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예술의 정의는 끊임없이 확장되고 변모한다. 심지어 ‘예술가는 예술을 하는 사람’, ‘예술은 예술가가 하는 그 무엇’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말이다. 김설진, 김보람, 이경은은 한국의 대표적인 중진 현대무용가 들이다. 이들 세 예술가가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에 따라 <HIP 合>(8.20~22, CJ토월극장)무대를 꾸몄으니 이는 당연히 예술 공연으로 분류될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객석매진 현상도 벌어졌다. ‘현대무용과 힙합과 국악의 사용’, 이 세 가지가 국립현대무용단이 무용가들에게 주문한 조건이다. 세 사람 각각 세 요소를 결합하여 30분의 작품 세 개가 탄생했다. 그 모습들은 전연 다르다. 

김설진의 <등장인물>이 첫 무대에 올랐다. “나의 삶에 출연한 수많은 등장인물들, 나 또한 누군가의 삶에 등장인물로”란 콘셉트가 그대로 작품의 제목이 되었다. 프런트 아래에서 네 남자가 부상한다. 김설진, 서일영, 김기수, 김봉수 모두 저고리와 잠방이 차림의 편한 옷을 입었다. 국악기가 연주하는 멜로디와 청아한 정가(正歌)소리가 섞이어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홰치는 소리, 산사의 목탁 소리, 총소리, 도시의 소음과 자연의 음악 등이 다양하게 배경음을 구성한다. 그들의 몸은 소리에 따라 자유롭게 반응한다. 부분조명 아래 한 몸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딴사람이 되어 각자의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스냅사진을 찍어놓은 듯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정지했다가 다시 움직이고 몇 개의 동작들이 연속되면서 동영상을 구성하기도 한다. 힙합을 구성하는 특징적인 네 가지 요소 들인 Uplock(스탠딩워크동작), Downlock(손발플로어워크동작), Power Move(강조동작), Freeze(동결동작)를 골고루 사용하면서 힙합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들은 각양각색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등장인물이지만 무대에 선 그들에겐 관객이 바로 세상을 구성하는 등장인물로 비쳐질 것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각각의 장면들은 독립적인 단어다. 단어들이 문장으로 연결되지 않기에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도 따로 없을 것이다. 다만 움직이는 몸, 혹은 정지된 몸을 보면서 관객들은 숨죽이고 시간은 흘러갈 뿐이다. 지루하진 않은 30분이다. 작품의 특징을 구별해서 말한다면 ‘현대무용과 힙합의 합(合)’이라기보다 ‘현대무용의 힙합화(化)’란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김보람의 <춤이나 춤이나(Nothing to)>는 “춤에 부여되는 의미가 없음을 이야기하면서 원초적 본질을 탐구”한 작품이라고 안무자는 말한다.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동작이 아니라 동작 자체가 표현이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이 말은 힙합(Hip hop), 스트리트댄스(Street dance), 브레이크댄스(Break dance)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 부류 문화의 특징을 대변하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힙합댄스 자체가 발레나 현대무용, 한국무용과 같이 메시지를 갖는 순수예술과 태생을 달리하면서 재즈, 소울, 랩 등 대중적 음악과 함께 변두리문화로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메시지전달 보다는 몸 자체의 움직임, 음악에 맞춰 느끼는 각자의 자유로운 반응이 자연스럽게 힙합이 된다. 김보람의 설명은 메시지보다 이 느낌을 찾겠다는 뜻일 것이다. <춤이나 춤이나>엔 김보람, 공지수, 서보권, 성창용, 유동인, 조영빈, 조혜원 등 남녀무용수 7명이 출연한다. 얼굴만 내놓고 머리부터 온 몸을 감싼 운동복 차림으로 그들은 움직임을 계속한다. 음원은 ‘우리 소리를 찾아서’란 오래전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제공한 소리와 타령, 사설(辭說) 들이다. <등장인물>의 음악을 맡은 최혜원이 이 작품의 음악도 맡았다. 두 작품의 음악적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김설진이 독무를 위주로 하면서 동작들의 독립성을 강조한 반면 김보람은 무용수들의 통일된 움직임으로 장면과 장면간의 연결성을 추구했다는 것이 차별화된다. 아쉬운 점은 10개가 넘는 전통적인 우리소리를 나열하면서 이를 따라가는 동작들이 소리와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가락을 배경으로 하는 힙합댄스가 서양음악을 배경으로 탄생한 힙합댄스를 만날 때 보일 수밖에 없는 한계일 것이다. 힙합기술을 도입한 김보람 안무의 컨템퍼러리 작품을 보고 난 느낌이다.

마지막 순서로 보여준 이경은의 <브레이킹(Breakimg)>은 ‘현대무용+힙합+국악’의 요소를 한 무대 위에서 골고루 섞어 만들어낸 비빔밥 같은 작품이다. 아마도 국립현대가 트리플 빌(Triple Bill)을 기획하면서 최초에 기대했던 것은 이런 작품이 아니었을까. 무대엔 남녀동수인 출연자 8명이 등장한다. 김미리, 임재흥, 김영은, 김현주, 김동주는 무용수고 고준영, 김지영, 박지원은 스트리트 댄서들이다. 의상은 총천연색이고 완전히 자유로운 디자인들이다. 국악 기반인 록밴드 ‘잠비나이’ 멤버인 이일우, 이충우, 이준이 음악과 라이브연주를 담당한다. 무대 깊은 곳에 피리와 건반(이일우), 장구와 꽹가리(이충우), 가야금과 바라(이준) 등이 갖추어있다. 장르의 경계, 소리의 경계, 연출의 경계,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모두 깨는 것이 이경은의 의도인 것 같다. 조명은 무대를 비추다가 회전하면서 객석을 훑고 지나간다. 무대를 가득 채운 출연자들은 제멋대로 등장해서 마음대로 움직이고 제 나름의 놀이를 자유롭게 즐긴다. 모든 제약을 벗어버린 채 몸과 춤과 놀이에 집중하는 모습들이다. 러시아발레의 네 마리 백조(김영은, 김미리, 임재혼, 김동주) 디베르티스망과 김현주의 피케(Pique, 뺑글뺑글 돌면서 주변을 이동하는 발레기술)동작 들이 무대의 다양성을 더해준다. “춤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허락은 필요 없어” 마침 광화문 교보빌딩에 100번째로 걸렸다는 BTS의 글이 연상된다. 시골 장터처럼 분주하고 번잡해보이지만 가격과 이득이 시장의 기본질서를 구성하는 것처럼 이경은의 춤은 자유로움이라는 공통 목적이 작품의 질서를 형성한 인상적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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