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Interview]배우 겸 연출가 김명곤 “나는 전통과 현대 사이 줄 타는 광대”
[Culture-Interview]배우 겸 연출가 김명곤 “나는 전통과 현대 사이 줄 타는 광대”
  • 이은영 발행인‧진보연 기자/김재성 작가
  • 승인 2021.09.0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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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흥보展>, 오는 15~21일 해오름극장
“공연 영상화는 시대의 요구, 우리를 세계에 알릴 기회”
전통 예술 활성화 위한 국가적 노력 필요
무형문화재 정책, 보호 아닌 융성 차원의 접근 필요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김재성 작가]지난 2017년 6월, 우리가 알고 있던 내용과는 사뭇 다른 ‘흥보전’ 최고본(最古本), 『흥보만보록』이 발견됐다. 이 책은 우암 송시열 후손인 송준호 전 연세대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조사하면서 2017년 세상에 공개됐다. 1833년 필사본으로,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흥보전 필사본으로 알려졌던 1853년 필사본(하버드 옌칭 도서관 소장)보다도 20년이나 앞선 것이다. 

▲송준호 전 연세대 교수가 소장한 흥보만보록(사진 출처=송준호 전 교수)
▲송준호 전 연세대 교수가 소장한 흥보만보록(사진 출처=송준호 전 교수)

『흥보만보록』이 밝힌 이야기의 무대는 지금까지 발견된 삼남(경상ㆍ전라ㆍ충청) 지방이 아닌 평양 서촌이다. 흥보와 놀보의 경제력 차이는 부모님의 유산을 독차지한 못된 형님 탓이 아닌 가난한 부모 탓으로 그려진다. 또한 흥보가 무과에 급제해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서술, 놀보를 악인(惡人)으로 설정하고 있지 않은 점 등도 기존 이야기와 다르다. 

‘흥보전’처럼 창악으로 구비전승되다가 문자로 기록돼 전해지는 것을 판소리계 소설이라 한다. 판소리의 창자는 창을 엮어냄에 있어, 전래해 오던 이야기를 근간으로 다채롭게 윤색ㆍ개작했기 때문에 전승 과정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야기는 소비자에 따라 변형된다. 

배우 겸 연출가 김명곤은 오는 9월 15일 국립창극단과 함께 새로운 <흥보展>을 선보인다. 판소리 ‘흥보가’에 담긴 전통적 가치와 재미, 감동을 지켜내고 원작의 줄거리는 유지하되 행간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상상을 불어넣어 극적인 재미를 부여할 예정이다. 

▲국립창극단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명곤 연출가 ⓒ김재성 작가
▲국립창극단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명곤 연출가 ⓒ김재성 작가

국립극장장(2000~2005년)과 문화관광부 장관(2006~2007년)을 지낸 김명곤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에서 아버지 ‘유봉’ 역으로 1993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많은 이들에게 배우로 기억되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여러 방면에서 활동해온 예술가다. 

서울대 사범대학 연극반에서 연극 활동을 시작한 김명곤은, 기자와 교사를 거쳐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며 배우와 연출의 길에 들어섰다. 또한 그는 판소리에 매료돼 전통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10년간 명창 박초월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또한 그는 영화 ‘서편제’, ‘춘향뎐’ 각본을 비롯해 국립창극단 완판장막창극 ‘춘향전’, ‘수궁가’, ‘백범 김구’, ‘우루왕’, ‘춘향’ 등 다수의 창극 작품의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국립창극단과 2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김명곤은 지난해 <춘향>에 이어 올해 <흥보展>으로 다시 한번 관객들과 만난다. 창극단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전통과 현대라는 두 절벽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고유한 우리 전통 소리와 현대 관객들의 감수성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한 균형 잡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예술이란 줄 위를 자유롭게 노니는 광대(廣大) 김명곤을 만나 전통과 현대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예술에 대해 들어봤다.

코로나로 많은 인원이 모이기부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연습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는지?

연습 초반에는 부분 연습으로 진행했는데, 이젠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아 전부 모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단원과 창작진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준비 중이며, 최대한 집중해 연습 시간이 너무 늘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는 등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음악을 비롯한 모든 연습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고, 이번 주부터 무대 리허설이 시작될 예정이다.

지난해 국립창극단과 20년 만에 <춘향>으로 협업한 이후, 또 한 번 작품을 함께 만들게 됐다.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심청전>(1999)으로 시작된 국립창극단과의 인연이 벌써 20년도 넘었다. 국립극장장으로 일하는 동안 <우루왕>(2000), <수궁가>(2000) 등에 작ㆍ연출로서 작업을 함께하기도 했다. 국립극장을 떠난 이후, 지난해 정말 오랜만에 창극단과 <춘향>이라는 작품으로 다시 만났는데 세월을 뛰어넘는 익숙함이 있어 반가웠다. 당시 30대였던 젊은 단원들이 이제는 50대 원로가 되어있는 모습을 보고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새롭게 선보인 <춘향>을 많은 관객이 좋아해 주신 덕분에 이번 <흥보展>으로 다시 한번 창극단과 함께하게 됐다. ‘춘향전’에 이어 우리 전통 판소리를 기반으로 창극을 현대화하는 또 다른 시도다. 

▲국립창극단 ‘흥보전’ 연습실 사진 ⓒ국립극장
▲국립창극단 ‘흥보전’ 연습실 사진 ⓒ국립극장

창극단과의 작업을 통해 주고 또 받는 것은 무엇인가?

창극단에서 나의 역할은 대본 작가 그리고 연출이다. 내가 공부하고 좋아했던 판소리를 새로운 드라마로 만드는 이들과의 작업은, 작품 내 나의 롤(role)을 넘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막연하게 머릿속으로만 그려봤던 아이디어가 뛰어난 기량의 사람들과 좋은 제작 여건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 이는 아주 큰 즐거움이다.

<흥보展>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창극으로 공연된 작품인데, 이번 신작은 어떻게 다른가.

<춘향>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은 ‘전통 판소리의 맛’을 살리는 데 역점을 뒀다. 그동안 창극단은 새로운 관객을 끌 작품 발굴에 주력하다 보니, 창극의 현대화 작업에 집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역시 중요하지만 고유한 우리 소리의 맛을 살리는 작품도 놓쳐선 안 된다. <흥보展>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흥보가’의 음악적 선율, 가락 등을 최대한 살려냈다. ‘제비노정기’, ‘가난타령’, ‘박타령’, ‘비단타령’, ‘화초장타령’ 등 주요 눈대목의 멋은 오롯이 살려내고 각색한 대본의 말맛에 맞는 작창을 통해 다양한 우리 소리 맛을 제대로 선보일 예정이다. 판소리의 고어(古語)는 어렵지 않은 우리말로 풀어냈다. 

아울러, 작품을 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 해봤다. 판소리 ‘흥보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코믹ㆍ판타지적 요소가 곳곳에 녹아 있다. 이것을 활용해 현대판 동화처럼 만들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공간 역시 흔히 떠올릴 법한 초가집, 기와집 세트에서 벗어나 미디어 아트를 활용해 새로운 장소를 탄생시켰다. 

더불어 현대적인 위트를 많이 가미했다. ‘흥보가’ 원전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지만, 요즘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흥보, 동생의 행복을 시기하는 탐욕스러운 놀보는 잘 먹고 잘살기를 바라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기존 ‘흥보가’에서 강조되던 권선징악, 형제간의 우애 등의 메시지보다는 그 이면에 드러나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 초점을 맞췄다.

▲국립창극단 신작 ‘흥보전’ 김명곤 연출가
▲국립창극단 신작 ‘흥보전’ 김명곤 연출가

국립창극단은 전통과 현대 사이 양단의 균형을 맞추는 과도기에 있다. ‘전통의 보존과’ 대중화를 위한 ‘현대화’ 사이에서 창극단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국립창극단뿐만 아니라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무용단 모두가 안고 있는 어려운 딜레마다. 우리의 숙제는 현대의 대중에게 전통의 문턱을 낮추는, 순수 예술의 대중화이다. 이는 국립국악원처럼 원형의 전통을 보존하는 기관과는 다른 성격이다. 보존ㆍ계승한 것을 시대에 맞춰 새롭게 창작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나는 항상 전통과 현대라는 두 절벽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작업한다. 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균형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 쪽으로만 쏠리다 보면 전통을 잊게 되고, 너무 전통에 집중하다 보면 현대 관객들의 감수성과 공감대를 놓치게 된다. 

한 작품에서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순 없다. 따라서 1년이고 2년이고 여러 레퍼토리 구성을 통해 이 균형감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현대적ㆍ서구적인 작품을 전통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작품을 1년에 두 편 정도 선보였다면, 전통이 가지는 색깔이 잘 보존되는 선에서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도 두세 편 선보이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단원들의 기량을 위해서도 지켜져야 할 부분이다. 너무 현대적인 작품만 하다 보면 소리의 공력이 점점 떨어지기 마련이다. 창극단의 목적은 판소리를 모태로 한 창극을 무대화하고 창작 창극을 활성화해 관객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 함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되겠다.

국립창극단 작품의 배역별 캐스팅을 보면, 주연을 맡는 사람은 항상 주연만 맡고 조연ㆍ앙상블을 맡는 사람은 계속 그 배역에 머무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배우가 다양한 비중의 역할을 통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작품별로 필요로 하는 메인 캐릭터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에 배우가 항상 고정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폭이 좁은 것은 사실이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작품이 많아져서 여러 단원이 골고루 출연할 기회를 주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대형 작품,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작품만이 아니라, 소규모의 작품들도 많이 개발해서 단원들이 기량을 갈고닦을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극장의 역할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연 준비 과정과 공연계 패러다임도 디지털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 한 해 연극 <흑백다방> 무관중 실시간 스트리밍과 <늙은 부부 이야기: 스테이지 무비> 영화관 상영을 통해 ‘공연 영상화’를 몸소 체험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변화를 직접 맞이하는 기분은 어떠한가?

작년부터 내가 참여한 작품들이 공연 영상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동참하게 됐다. ‘공연 영상화’는 나도 오랫동안 생각했던 이슈다. ‘영화’와 ‘공연 영상’은 어떤 차이가 있고, 현장 예술인 무대 공연을 어떻게 영상화해야 성공할 수 있을지, 이 부분에 대해서 지금도 고민하는 중이다. 이전에도 공연 실황을 영상으로 남기는 경우가 없진 않았지만 거의 기록용에 불과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공연 영상 작품이라 부르기 어렵다. 

공연의 영상화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때문에 아직 이 분야의 전문가도 많지 않은 편이다. 공연을 영상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에 대한 전문성과 작품에 대한 이해다. 그냥 단순히 보이는 것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별 연출/배우의 의도 파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한두 번 만에 마스터 될 수 없는 부분이다. 연극, 뮤지컬, 무용, 창극 등 장르별 특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이번에 선보일 <흥보展>도 기록용이 아닌 작품으로서의 영상화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촬영 팀과 미팅을 진행했는데, 창극에서 가장 중요한 ‘관객과의 교감’을 영상으로 어떻게 담아낼지 함께 고민했다. 사실 ‘현장성’은 모든 공연 장르의 특징이기도 하다. 현장성이야말로 일반 영화/드라마와 무대 예술을 구분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NT Live 버전 연극 ‘워호스’를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 ⓒ국립극장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NT Live 버전 연극 ‘워호스’를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 ⓒ국립극장

국립극장이 매해 진행하고 있는 영국의 NT Live가 사실 작품의 영상화를 구현한 대표적 사례다. 우리가 수입하는 것처럼 앞으로 국립극장에서 만드는 작품도 역수출하지 못할 이유도 없을 거로 본다. 그러나 현장 예술인들 가운데 아직 무대 영상화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순간의 현장감이 영구적으로 남는 게 익숙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국립극장에서 지난 2014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NT Live는 영국 국립극장이 연극 화제작을 촬영해 전 세계 공연장과 영화관에 생중계 또는 앙코르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외에도 ITA Live(이타 라이브), Pathe Live(파테 라이브) 등 공연 영상화 사업은 전 세계에서 이미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립극장 역시 공연 영상화 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우리 극장에서 해외 작품을 관람할 수 있듯, 우리의 연극ㆍ무용ㆍ판소리ㆍ창극도 국내외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국립극장장과 문화부장관 재임 당시 전통예술 진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간의 노력들이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재직 시절, 전통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전통예술진흥 10개년 계획을 추진했고, 부내에 전통예술정책팀을 신설해 관련 정책업무를 강화했다. 하지만 나의 임기가 끝나자 다시 원위치 됐다. 아직도 국가 정책에 있어 전통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단순한 지원 문제가 아니다. 과거부터 전통 예술을 지켜오던 분들이 현대 시대에 전달하고, 새로운 전통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거시적인 정책은 부재한 상태다. 문화재 지정, 보존이 능사가 아니지 않나. 우리나라 문화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 전통도 세계화를 향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국악밴드 ‘이날치’가 새로운 형태의 전통 음악을 선보이며 큰 성공을 거뒀지만, 그건 그 친구들의 자발적인 작업이 이뤄낸 성과다. 전통 예술을 하는 젊은 세대 중에는 이들처럼 뛰어난 재능과 감각을 가진 인재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자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인들의 작업이 작품이 되고, 작품이 확산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 주는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문화 쪽에는 이미 거대 자금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인재가 몰릴 수밖에 없다. 전통을 하던 이들이 외부적 요인으로 전통을 버리고 다른 선택을 하도록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는 ‘무형문화재’ 지정 문제처럼, 발전하고 있는 시대를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역시 전통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판단된다. 

지금의 문화재 제도가 문화재를 거의 말살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문화 발전보다 문화재 보존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무형문화재의 경우 산업화 과정에서 거의 사라져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무형문화 산업에 대한 수요는 늘어가고, 무형문화재 종목들은 소멸할 위기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이제 보호가 아닌 융성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물론 아직도 보존이 필요한 분야들이 있지만, 일부의 상황이 아닌 전체적 흐름을 읽어야 한다. 

▲국립창극단 신작 ‘흥보전’ 김명곤 연출가

전통은 그저 지키기만 한다고 이어지는 게 아니다. 끊임없는 창작이 수반돼야 한다. 지금의 정책은 우리 문화를 완전히 죽은 골동품으로 만들어 놓고 물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시점엔 특정인이 아니라 종목 자체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 일부 사람들이 독점하는 시스템을 넘어야 문화 발전이 가능하지 않겠나. 특히 인기 분야의 경우 자리싸움이 더 치열하기 때문에 비리와 로비 등 권력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예술가가 왜 타이틀에 목매달게 됐는지, 탈락한 사람은 예술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인생을 살게 만드는 이 제도가 유지되는 것이 정말 옳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현 국립극장장의 임기가 이달 중순 마무리된다. 새로운 극장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할 국립극장을 이끌 새로운 극장장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국립’극장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극장인 동시에, 세계의 수많은 국립극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자질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국립극장의 세계화에는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무용단의 세계화도 포함된다.

선진적인 제작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고, 참여하는 예술가의 수준 역시 상향평준화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을 세계무대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획자, 일종의 매니지먼트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양성하며 다방면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런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는 극장장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처음 극장장이 됐을 땐 교류하던 해외 극장, 공연 리스트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세계 유명 극장장들을 만나러 다녔다. 명함을 교환하고, 영문 브로슈어를 만들어 배포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하나씩 더해 가다 보니 해외 네트워크가 쌓였고,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 전속단체, 직원, 극장장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 모든 걸 이끌어야 하는 극장장의 비전과 방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명곤이라는 이름 앞에는 배우, 연출, 작가, 문화행정가, 소리꾼, 성악가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지만, 그간의 활동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예술 창작의 현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걸 그냥 계속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연극이든, 영화든, 국악이든 예술 속에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되면 계속 공부하고 노력해서 개발했다. 내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한 가지를 뛰어나게 잘하는 재능을 타고났다면 나는 여러 가지를 두루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보단 잡가지를 하는 ‘잡놈’이라고.(웃음) 나한텐 이게 재밌고 잘 맞는 것 같다.

▲국립창극단 신작 ‘흥보전’ 김명곤 연출가
▲국립창극단 신작 ‘흥보전’ 김명곤 연출가

쉴 새 없이 도전하는 가운데 아직 해보지 못한 작업이 있다면?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보다 이런저런 작품을 하고 싶다는 구상들이 있다. 그중 궁극적으로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은, 우리 고대 신화의 대서사 드라마를 작품화하는 것이다. 연극, 영화, 창극, 뮤지컬, 드라마 등 어떤 형태라도 좋을 것 같다. 특히 우리 고대 신화 중 삼국유사 이전의 신화, 고대 상고사를 모티브로 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규모가 방대하다 보니 거대 자본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함께 협업해보고 싶다. 작품화되지 못하면 대본으로라도 꼭 남겨놓으려 한다.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평생 이것저것 하다가 죽은 놈.(웃음) 이게 다른 말로 ‘광대’가 아닌가. ‘넓을 광(廣)’에 ‘큰 대(大)’. 특정 예술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많은 일을 하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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