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용 《Bodyscape》展…그리는 존재를 담아내
이건용 《Bodyscape》展…그리는 존재를 담아내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9.09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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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대, 오는 10월 31일까지
‘그리기의 방법’으로 창작된 ‘Bodyscape’ 연작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실험적인 창작법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이건용이 물질적 육체를 근간으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갤러리 현대에서 오는 10월 31일까지 열리는 《Bodyscape》전시다. 8일 전시 개막에 앞서 이건용 작가의 작품을 언론에 공개하는 자리가 열렸다.

▲이건용, Bodyscape 76-1-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71 x 151cm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이건용, Bodyscape 76-1-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71 x 151cm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그린다는 것은 신체를 쓰는 것이고, 회화에서 하나의 선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8일 열린 간담회에서 밝힌 이건용 작가의 회화에 대한 핵심 정신이다. 이 작가는 자신은 항상 미술 바깥에서 미술을 바라본 사람이라고 말했다.

미술을 할 거라면 ‘홍익대’에 가서 하라는 어머니 뜻에 따라 이건용은 홍익대 미술 입시 시험을 준비했다. 그 당시 홍익대 학장은 김환기였다. 이건용은 당시 홍익대 입시 시험을 치르러 간 날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전했다.

이 작가는 시험일에 조금 늦게 시험실로 들어갔다고 한다. 시험 과제로 나온 아폴로 동상의 앞자리는 이미 다른 수험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건용은 어쩔 수 없는 아폴로 동상 뒷모습을 그리는 자리로 가게 됐다. 한참을 그리고 있는데, 김환기 학장이 와서 이건용에게 ‘너는 왜 아폴로의 뒤통수를 그리고 있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에 이건용은 ‘미술하면 홍대라고 하는데, 특별한 것을 그려야 할 것 같아서 뒤통수를 그립니다’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건용은 이 일화를 통해 미술계 주요 흐름과 항상 조금씩 빗겨 서 있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전통적 의미의 ‘회화’는 작가 내면에서 쌓이고 완성된 작업이 바깥으로 발화돼 형상을 갖는 구조를 갖는다. 이건용은 이 구조를 뒤집은 작가다.

▲이건용, Bodyscape 76-4-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91 x 116.8cm(사진=갤러리 현대 제공)
▲이건용, Bodyscape 76-4-2021,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91 x 116.8cm(사진=갤러리 현대 제공)

1960년대 말 본격적으로 미술계에서 활동한 이건용은 AG(한국 아방가르드 협회) 중요 작가였으며, 1969년 ST(Space and Time 조형학회)를 결성하는 등 당대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흐름을 이끌었다. 1976년 이건용은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회 ST전》에서 총 아홉 가지의 방법론 중 일곱 가지의 ‘그리기의 방법(The Method Drawing)’을 발표했다.

먼저 발표된 일곱 가지 ‘그리기의 방법’은 화면의 뒤에서(76-1), 화면을 등지고(76-2), 화면을 옆에 놓고(76-3) 선을 긋는 것. 손목과 팔꿈치를 부목으로 고정하고 이를 하나둘 풀면서(76-4), 다리 사이에 화면을 놓거나(76-5), 화면을 코앞에 둔 채 양팔을 활짝 벌리고(76-6), 어깨를 축으로 삼고 반원의 선을 침착하게 화면에 남기는 것(76-7)이었다. 이후 온몸을 축으로 거대한 반원을 만들거나(76-8), 두 팔과 다리를 위아래로 점프하듯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날개 형상의 선을 드러내는 방법(76-9)까지 발표했다. 그리기의 방법’으로 창작된 이건용의 <Bodyscape> 연작은 76년도 이후 꾸준하게 창작돼왔으며, 2000년대 이후부터는 캔버스 사이즈가 커지고 컬러가 다채로워지는 변화를 겪었다.

이 작가는 “미술을 하되 그 내부의 논리를 따라가지 않는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건용의 방법론은 화면을 눈으로 마주하고 머리의 생각을 손으로 옮겨 그리는 전통적인 회화방법론을 폐기하고, 미술가로서 ‘그리는’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담는다.

<Bodyscape>연작은 작가 신체의 한계, 가용 범위가 ‘그리기’의 전제 조건이다. 그림이 담긴 캔버스의 크기는 모두 이건용의 키, 양팔과 다리 길이와 연관성을 갖는다. 그가 팔을 쭉 뻗은 높이만큼의 캔버스를 사용하고, 그의 다리 사이 넓이에 들어가는 캔버스가 선택된다. 신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고, 손이 닿는 만큼,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이동하며 수행하듯 천천히 선을 화면에 담는 과정을 이건용은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설명한다.

이 작가는 “화가는 모름지기 자기 앞에 현전해 있는 평면에 무언가를 그리지만, 나는 화면을 제 앞에다 놓고 제 신체가 허용하는 것만큼만, 화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선을 그린다”라며 “그것은 평면을 보고 그 위에 무언가를 의식이 지시하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 팔이 움직여서 그어진 선을 통해서, 내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간담회 현장에서 '76-1'그리기의 방법을 시현하고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한 이건용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간담회 현장에서 '76-1'그리기의 방법을 시현하고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한 이건용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76년도 발표된 이건용의 ‘그리기의 방법’ 중 주목할 만한 방법은 손목과 팔꿈치를 부목으로 고정하고 이를 하나둘 풀면서(76-4) 선을 긋는 방법이다. 이 방법론은 팔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상태의 그리기 방법이다. 팔의 손목, 팔목, 어깨가 제어 축이돼 선은 3가지 형태를 갖는다.

이 방법론은 1970년대 군부독재 시절 통제 시스템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제어 축 안에서 창작되기 시작해, 제어를 벗어나는 선까지 나아가는 과정은 독재 권력 아래서도 작가가 닿아가고자 한 표현의 방법, 지각과 존재의 확인을 담고 있다.

이건용 작가는 갤러리 작품 소개 이후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 이뤄진 다과자리에서 ‘76-1’방법을 시현하기도 했다. 다과가 담겨있던 종이 상자에 이 작가가 소지하고 있던 몽블랑 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후 그는 작품과 함께 장난기 어린 포즈를 선보였는데, 진중하면서도 삶에 대한 작가의 유연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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