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조선 후기 문인 상상 놀이서 착안 된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展
[현장프리뷰] 조선 후기 문인 상상 놀이서 착안 된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9.11 2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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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야외서 오는 11월 28일까지, 밤 9시까지 개장
조선 문인들 상상의 정원 ‘의원(意園)’ 현재 ‘메타버스’와 엮어내
외부활동이 어려워진 시대에 상상 속 치유 공간 선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2012년 처음 선을 보인 덕수궁 프로젝트가 2017년, 2019년 프로젝트에 이어 올해도 관람객들에게 현대미술과 어우러진 궁의 느낌을 전한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소장 원성규)가 함께 준비한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이 오는 11월 28일까지 덕수궁 야외에서 개최된다. 지난 9일에는 전시 개막에 앞서 언론 공개회가 있었다.

▲김명범, 원(사진=MMCA 제공)
▲김명범, 원(사진=MMCA 제공)

전시를 기획한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이번 ‘덕수궁 프로젝트’의 중요 기획 의도로 궁궐 정원에 집중한 점을 꼽았다. 박 학예사는 “기존에 진행했던 덕수궁프로젝트는 건축물을 통해 덕수궁과 역사를 되돌아볼 기회를 만들었다면, 올해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한자리에 자리하고 있던 ‘정원’으로 과거와 지금을 바라보는 기회를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정원(庭園)’은 넓은 관점에서 ‘만들어진 자연’ 혹은 ‘제2의 자연’을 뜻한다.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이자 자연과 문화에 대한 인간의 가치관과 시대정신이 총체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덕수궁 정원에는 조선 시대와 이전과 이후의 시간이 모두 담겨있다. 과거에 자리 잡았던 꽃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 외래종의 유입과 인간의 힘으로 심어진 꽃과 나무들은 시대의 흐름을 담아낸다. 서울 시청 옆 도심 속 오랫동안 자리하며 덕수궁이 나라의 흥망과 시대의 굴곡을 모두 지켜본 것처럼, 덕수궁 정원은 500년의 도심화 과정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이번 전시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은 그 시간의 켜를 넓게 바라본다.

《덕수궁 프로젝트》에는 현대미술가(권혜원, 김명범, 윤석남, 이예승, 지니서), 조경가(김아연, 성종상), 애니메이터(이용배), 식물학자/식물세밀화가(신혜우), 무형문화재(황수로) 등 다양한 분야와 세대의 작가 9팀이 참여했다.

▲이용배x성종상, 몽유원림, 함녕전에 들어가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작품 (사진=MMCA제공)
▲이용배x성종상, 몽유원림, 함녕전에 들어가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작품 (사진=MMCA제공)

총 9점의 작품들은 덕수궁 곳곳에 흩어져있는데, 언론 공개회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중심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돌아보며 전시작을 살펴봤다. 기자는 금천교 QR코드 스캔을 처음으로 감상하고, 덕수궁 곳곳에 있는 7개의 작품을 자유로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중화전 좌측에 설치된 지니서 <일보일경>을 마지막 작품으로 즐기는 것을 관람 방법으로 제안한다.

금천교에서 만나는 QR코드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예승 작가 작품이다. 이 작가는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관람객들이 과거와 현재의 혼종적인 덕수궁을 만나게 한다. ‘금천교’는 덕수궁에서 처음 만날 수 있는 건축물이다. 궁궐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모두 ‘명당수(대궐 부근의 물, 명당자리를 지칭하는 뜻이기도 하다)’가 흐르는 데, 그 위에 놓인 다리를 금천교라 한다.

경복궁 금천교에는 명당수를 지키는 상상의 동물 천록수(天祿獸)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발상을 얻은 이 작가는 덕수궁 금천교를 지키는 동물을 가상 공간에 구현했다. 금천교 우측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아름다운 새를 가상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다. 마치 새로운 공간으로의 진입을 환영하는 듯하다.

▲금천교에서 QR코드를 스캔하면 볼 수 있는 가상 공간 속 새 이미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금천교에서 QR코드를 스캔하면 볼 수 있는 가상 공간 속 새 이미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번 프로젝트 제목인 ‘상상의 정원’은 조선 후기 ‘의원(意園)’ 문화에서 차용됐다. 18~19세기 조선 문인들은 글과 그림으로 경제적 형편에 제한받지 않고 마음껏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의원, 즉 ‘상상 속 정원’을 향유했다고 한다. 박 학예사는 ‘의원’ 문화가 현재 ‘메타버스’와 닮아있는 것 같다고 보고, 전시 기획 키워드로 사용했다.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자유로운 외부활동이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2021덕수궁 프로젝트 ‘상상의 정원’은 관람객들에게 위안과 휴식을 얻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이예승 작가는 증강현실 기술로 조선후기 의원 문화와 관련된 이미지를 관람객 눈앞으로 펼쳐낸다. 덕수궁 곳곳에 숨겨져 있는 8개의 QR코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상상의 정원’은 덕수궁 정원에 숨겨진 시간의 틈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이 작가는 “과거에는 천천히 정원을 거닐며 공간을 즐겼다고 하는데,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지금 세대가 정원을 즐기는 방법, AR로 노는 방법을 새롭게 엮어서 선보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석조전 앞 QR코드를 인식하면 볼 수 있는 가상공간 이미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석조전 앞 QR코드를 인식하면 볼 수 있는 가상공간 이미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QR코드로 구현된 가상공간 이미지 외에 이 작가의 작품은 덕홍전에 설치된 <그림자 정원: 흐리게 중첩된 경물>과 덕홍전 맞은편 행각에 있는 <구곡소요>도 있다. <그림자 정원: 흐리게 중첩된 경물>은 가상공간에서 봤던 이미지를 3D프린트로 만든 오브제와 모니터, 거울로 지금 현실로 가져온다. 영상과 거울로 만들어지는 이미지들은 무질서하게 배치되고 영상과 거울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뒤흔들고 만화경 같은 순간을 만든다.

▲권혜원, 나무를 상상하는 법 (사진=MMCA 제공)

중화전 우측 행각에 설치된 오디오 비디오 작품 권혜원 <나무를 상상하는 법>은 몇백 년 전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덕수궁 터에서 정원을 가꾼 5인의 가상의 정원사 이야기를 전한다. 고요한 궁궐 공간에서 볼 수 있는 20분의 영상은 현실을 뛰어넘어 비인간 존재·다른 생명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틈을 선보인다. 윤석남 <눈물이 비처럼, 빛처럼:1930년대 어느 봄날>은 폐목을 재생시킨 작품으로 이름 없는 조선 여성들의 얼굴과 몸을 명쾌한 윤곽선과 밝은색으로 그려, 덕수궁에서 새로운 시대를 마주한 그들의 의지와 기대를 담았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작가들과 함께 중요 무형문화재, 식물학자가 참여했다.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으로 장식되지 않은 석어당에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 124호(궁중채화) 황수로 작품 <홍도화>가 설치돼 있다. ‘채화(彩華)’는 조선 시대 궁중을 꾸미던 가짜 꽃으로 궁중 공예의 정수이자 정원문화다. 황수로는 일제강점으로 맥이 끊긴 이 채화 문화를 직접 연구하고 발굴해낸 인물이다.

▲황수로, 홍도화 (사진=MMCA 제공)
▲황수로, 홍도화 (사진=MMCA 제공)

<홍도화>는 천연 염색한 비단, 모시, 송화가루, 매화 가지 등의 천연재료를 사용한 작품이다. ‘채화(彩華)’는 왕조의 영원성을 염원해 만들어진 시들지 않는 꽃으로 생명존중 사상이 담겨 항상 천연재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재료의 특성 때문인지, 실제 살아있는 나비와 벌이 작품 근처에 머물러있다고도 한다. 황수로는 문화재가 현대미술과 어우러질 수 있다는 점에 굉장히 즐거워하며, 본인 정원에 심겨 있던 매화꽃 나무를 이번 작품 재료로도 사용했다 한다. 정원이 가진 시간의 켜를 비추는 작업에서 세대를 뛰어넘는 화합도 이뤄져 의미가 깊어진 작품이다.

<면면상처:식물학자의 시선> 작품을 선보인 신혜우는 식물학자이자 보태니컬 아티스트다. 우리나라 식물학은 1930, 40년대의 일본 식물학자의 기록으로 시작됐다. 신 작가는 일제강점기가 없었더라면, 우리나라의 식물학은 어떻게 시작됐을지를 상상하며 작품을 구성했다고 한다. 고종이 영국 메이플사의 가구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당시 식물학자의 방을 만들 때 영국의 가구를 사용했다고 한다. 신 작가는 작년 11월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받고 올 4월부터 덕수궁 식물 조사를 시작했다. 덕수궁의 160여 종의 식물을 조사했으며, 현재 덕수궁에는 20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덕수궁에는 인간에 의해 직접 심긴 식물뿐 아니라 저절로 들어온 잡초, 해외 식물도 있다.

신혜우_면면상처
▲신혜우, 면면상처 (사진=MMCA 제공)

<면면상처:식물학자의 시선>은 행각 한쪽 방에 마련돼 있는데 공간 입구로 들어서면 키가 큰 잡초 표본 옆, 신 작가의 6개월간의 기록이 적힌 작품을 볼 수 있다. 키가 큰 풀의 이름은 ‘망초’다. ‘망초’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 식물인데, 개항과 동시에 국내로 유입됐다. 경술국치(1910)를 전후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간 풀이라 우리 민족은 ‘대한제국이 망한 후 이상한 풀이 나라에 퍼졌다’라며 이를 나라가 망할 때 돋아난 풀 ‘망초’라 불렀다 한다.

이 망초는 봄에는 땅에 납작하게 붙어있다가 여름을 지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해 2미터 넘게 자라날 수 있다고 한다. 신 작가는 “4월에 망초를 발견하고 전시가 열릴 9월쯤 어떻게 생장해있을지 궁금해 꾸준히 지켜보고, 전시 개막 일주일 전 채집해 표본으로 만들었다”라며 “한 식물이 성인 여성의 키 만큼 자라날 동안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담아보고 싶었다”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신혜우,면면상처 공간에서 볼 수 있는 '망초'표본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신혜우,면면상처 공간에서 볼 수 있는 '망초'표본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 시대 화두와 우리 민족이 지니고 온 역사성을 엮어내고 있다. 기자가 마지막 작품으로 보길 추천하는 지니서 <일보일경>은 중화전과 석조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덕수궁에서 중화전은 전통 영역의 축이고, 석조전은 근대 영역의 중심축으로 볼 수 있다. 작품이 설치된 공간은 원래 중화전의 행각이 있었는데 석조전의 정원을 만들기 위해 훼철됐다.

지니서는 이 장소가 지닌 역사성에 주목했다. 동과 서, 전통과 근대의 ‘차이’를 이질성과 대립, 갈등 대신 소통 가능한 ‘간격’으로 간주하며 작품을 매개로 두 영역을 서로 마주 보게 한다.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의 공백을 마주 보게 하며, 정원이 가지고 있는 여러 층의 시간과 우리 민족이 마주해야 했던 굴곡의 역사를 보듬을 수 있는 감각을 전한다. <일보일경>은 매일매일의 햇빛과 바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설치 작품이면서 자연 속으로 녹아 들어있다.

▲석조전에서 중화전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본 지니서 일보일경, 작품을 통과해 중화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MMCA 제공)

한편, 이번 덕수궁 프로젝트는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협력해 미술과 음악을 함께 즐겨볼 수 있게 한다. 밴드‘잠비나이’의 심은용, 김보미가 윤석남, 김명범, 김아연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신곡을 제작했고 세 작가의 작품 앞에 놓인 QR코드를 태그하면 감상할 수 있다. 공감각적 체험이 마련됐다.

오는 10월 10일까지는 덕수궁에 방문하면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과 덕수궁 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시까지 함께 감상해 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한국의 미와 인간이 경험할 수 없었던 시간을 지나쳐 온 궁궐의 정원이 전하는 감각은 가을이 들어서고 있는 지금, 새로운 감각을 전할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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