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대구오페라 개막작 '토스카' 대성황, 프리마돈나 이명주 단연 돋보여
[이채훈의 클래식비평]대구오페라 개막작 '토스카' 대성황, 프리마돈나 이명주 단연 돋보여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편집:이은영 기자
  • 승인 2021.09.12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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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드디어 막 올라
11월7일까지 59일간의 대장정, 비수도권 유일한 오페라 축제

[서울문화투데이]9월 10일 금요일,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막을 올렸다. 이날부터 11월 7일까지 59일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 축제는 비수도권에서 열리는 유일한 오페라 축제다. 따라서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라 이 나라의 오페라 팬들이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보는 국제 행사다. ‘보수의 아성’으로 알려진 대구지만 뮤지컬, 사진, 패션 등 여러 분야의 국제 페스티벌을 개최하여 2017년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지정되는 등 진취적인 문화 도시의 명성을 쌓아 가고 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2003년 출범한 이 도시의 대표 브랜드다.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1년 미뤄서 올해 막을 올리는 18번째 축제, 코로나의 난관을 뚫고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준비했을지, 현장이 궁금했다.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열리는 대구오페라하우스 전경.

축제 속으로

축제의 슬로건은 “오페라, 마음을 어루만지다”다. 정갑균 예술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는 치유의 컨셉으로 준비했다”며, “모두가 힐링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박인건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는 ”올해 초 극장을 리모델링하여 좌석 수도 1,508석에 1,602석으로 늘렸고, 시야가 막히는 좌석을 줄였고, 음향을 대폭 개선했다”고 밝히며, “오랜 팬데믹으로 지친 시민들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 KTX로 약 1시간 40분, 그리 멀지 않았다. 거리에는 ‘브라스 앙상블 프린지 콘서트’라고 써 있는 대형 투어버스가 눈에 띄었다. 이 버스는 축제 기간, 주말마다 거리를 누비며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축제 분위기를 전할 예정이다. KBS대구의 <라이브 오늘>이 행사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 앞에 중계차를 대고 축제의 이모저모를 전하고 있었다. 오페라하우스 앞뜰에서는 실내악단과 합창단이 베르디, 푸치니, 바그너의 귀에 익은 오페라 선율을 연주했고, 다른 한켠에서는 브로슈어와 함께 ‘드레스코드’인 빨간 손수건과 꽃 장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축제 주최 인사들은 물론, 전국의 오페라 관계자들이 오페라하우스 앞을 가득 메우고 환담을 나누었다. 6시 50분 시작된 개막식은 테입 커팅, 축제기 게양, 대구시장과 극장 대표의 인사말 등 예상되는 의전으로 채워졌다. 7시반, 개막작인 푸치니의 <토스카>가 지체 없이 시작됐다. 

야외에서 펼쳐진 개막식에서 이번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참여하는 성악가들의 합창 장면.

<토스카>, 감동의 물결

<토스카>는 1800년 6월 17일, 이탈리아 공화파와 왕당파가 운명을 걸고 대결한 마렝고 전투가 일어난 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토스카와 카바라도시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이 날 공연의 꽃은 단연 플로리아 토스카 역의 소프라노 이명주였다. 그는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에서 아름다운 음색, 풍성한 고음, 섬세한 표정으로 최상의 푸치니를 들려주었다. 매우 긴 음표를 흔들림 없는 호흡으로 매끄럽게 소화해 낸 그녀의 역량에 청중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이명주는 잔혹한 경찰총수 스카르피아와 영혼의 결투를 벌이는 2막에서 그녀의 고뇌 - 가장 착한 그녀가 살인을 하게 되다니! - 를 생생하게 표현하여 청중들을 감동시켰다. 

마리오 카바라도시 역의 테너 신상근도 열연했다. 아리아 ‘오묘한 조화’와 ‘별이 빛나는 밤에’는 푸치니의 서정성을 충분히 살려서 청중들을 만족시켰다. 좀 더 강력한 카리스마가 아쉬웠고 고음에서 음질이 다소 뻣뻣해진 대목이 있었지만 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는 가창력과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스카르피아 역의 바리톤 정승기도 힘 있는 톤과 안정된 호흡으로 많은 갈채를 받았다. 안젤로티의 박기옥, 성당지기의 정재홍, 스폴레타의 김찬우도 고른 실력으로 훌륭히 제몫을 해 냈다. 

개막작인 '토스카'의 토스카 역을 맡은 소프라노 이명주가 커튼콜에서 두 손을 모아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줄리안 코바체프가 지휘하는 대구시향은 금관과 종소리가 어우러지는 스펙터클한 대목에서 좀더 찬란한 음색을 만들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최선을 다해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3막, 카바라도시가 편지를 쓰는 대목에서 현의 질감은 매우 아름다웠고, 이어지는 ‘별은 빛나건만’의 클라리넷 솔로는 섬세하고 표정 있는, 멋진 연주였다. 

1막 어린이 합창(대구오페라유스콰이어)도 인상적이었다. 많은 연습으로 자신 있게 노래하여 청중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성인 합창(대구시립합창단)은 1막 뿐 아니라, 2막 멀리서 들리는 소리도 안정되고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무대 뒤 합창과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가 적절히 밸런스를 맞춘 것도 성공적이었다. 1900년 초연 당시의 무대를 연구하여 재연한 의상도 훌륭했고, 분리·결합되는 반추상 디자인의 세트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1막에서 막달레나 마리아 초상 - 안젤로티의 여동생이 모델 - 은 가로 세로 2배 정도로 크게 제작해서 멀리 떨어진 좌석에서도 그림의 얼굴과 표정, 눈빛을 볼 수 있게 해 주면 좋았겠다. 2막, 토스카가 칼을 발견하고 무서운 결심을 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보여 줄 방법이 없었을지 고민해 볼 여지가 있었다. 

개막작인 '토스카'의 커튼콜.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지고 있다.

59일의 대장정, 남은 일정들

밤 10시가 넘어서 공연이 끝나자 청중들은 모두 만족한 얼굴로 오페라하우스를 나섰다. 이번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는 개막작 <토스카>에 이어 5편의 메인 오페라를 선보일 예정이다. 

9월 17일(금)&18일(토) <허황후>(김주원 작곡, 김숙영 대본, 김해문화재단) : 김수로 왕과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사랑, 그리고 가야 건국 이야기. 치밀한 고증, 화려한 의상과 무대로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    

10월 1일(금) <윤심덕, 사의 찬미>(진영민 작곡, 김하나 대본, 영남오페라단) :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비극적 삶과 사랑. 2018년 대구오페라축제에서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고, 11회 대한민국오페라상 대상을 받음. 이번 공연을 위해 극적 효과를 더욱 높이는 등 수정 보완을 거듭했다.  

10월 22일(금)&23일(토) <아이다>(대구오페라단) : 베르디의 초대형 스펙터클 오페라. 고대 에집트의 라다메스 장군과 노예가 된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의 사랑 이야기. 대구오페라하우스 자체제작으로, 15회 대구오페라축제 폐막작으로 전석 매진을 기록한 화제작. 

10월 29일(금)&30일(토) <삼손과 데릴라>(국립오페라단) : 올해 서거 100년을 맞는 생상스의 대표작으로, 이스라엘 영웅 삼손과 팜므 파탈인 데릴라의 사랑과 배신의 드라마.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 작품을 프랑스 연출가 아흐노 베르나르가 연출. 

11월 6(금)&7일(토) <청교도>(대구오페라단과 이탈리아 모데나 오페라 합작) : 이번 오페라축제의 폐막작으로, 벨칸토 오페라의 진수를 들려주는 벨리니의 마지막 오페라. 17세기 영국 종교전쟁의 포연 속에서 피어나는 엘비라와 아르투로의 사랑 이야기.   

(※장소는 모두 대구 오페라하우스. 금요일은 저녁 7시반, 토요일은 오후 3시)

메인 오페라가 없는 10월 15일(금)에는 대구성악가협회가 함께 하는 ‘50 스타즈 오페라 갈라콘서트’가 열린다. 메인 오페라가 공연되는 주의 월요일 저녁에는 대구오페라하우스 별관 카메라타에서 ‘오페라 오디세이’란 타이틀로 전문가가 알기 쉽게 작품을 해설한다. 이와 함께 △베르디 <라트라비아타>(10월 24일), 모차르트 <마술피리>(10월 25일) 등 2편을 ‘오페라 콘체르탄테’ 형태로 무대에 올리며 △월드 오페라 갈라콘서트(11월 1일) △세계 오페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오페라 미래포럼’(11월 1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오페라 애호가와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 소극장 오페라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소극장 오페라’ 세션이 생략된 것은 아쉽다. 러시아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 보로딘의 <이고르 공>(보로딘 작곡)이 코로나 때문에 무산된 것도 안타깝다. 폐막작은 이탈리아 모데나 오페라와 협업하여 제작한 벨리니의 <청교도>로 대체되어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초의 아티스트 마켓형 콩쿨로 알려진 ‘대구국제오페라 어워즈’가 코로나 때문에 열리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 내년에는 이 모든 것을 다시 볼 수 있게 되기 바란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올해 축제 규모는 다소 작아졌지만, 알찬 음악으로 어려운 여건을 극복해 낸다면 의미는 더욱 클 것이다. 앞으로 남은 5차례의 메인 오페라를 비롯한 여러 공연들을 개막작 <토스카> 수준으로 해 내고 이에 오페라 팬들이 호응해 준다면 올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