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국립국악원, 미공개 소장품 113점 공개…“국악 근현대사를 돌아보다”
[현장프리뷰]국립국악원, 미공개 소장품 113점 공개…“국악 근현대사를 돌아보다”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9.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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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운 신임 국립국악원장 “국악 본질 지키며 대중 가까이 다가갈 것”
‘국립국악원 미공개 소장품전: 21인의 기증 컬렉션’, 내년 2월 27일까지 무료 관람
남원·진도·부산 국악원, 지역 자율성 유지…타 지역 국악원 설립 계획 아직 없어
국악계 기틀 마련한 ‘한성준·황병기’ 전시 공간 여전히 부재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전통문화의 진가를 국내는 물론 해외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는 국립국악원을 만들어가겠습니다.”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14일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에서 열린 ‘국립국악원 미공개 소장품전’ 기자간담회에서 국립국악원 운영 방향을 밝히며 앞으로의 포부를 전했다. 이날 자리는 지난 6월 취임한 김 원장이 언론과 공식적으로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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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이 14일 오후 국립국악원 국립국악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국립국악원)

국악 이론 전문가인 김영운 원장은 한양대 국악과 교수, 한국국악학회 이사장,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취임 직전인 지난 6월까지 국악방송 사장을 지냈다. 김 원장은 “3년 임기를 받아 채우지 못하고 (국립국악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국악방송 직원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걸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송구스럽다”라며 “국립국악원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국악방송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겠다”라고 밝혔다. 

김 원장이 취임한 이번해는 국립국악원 70주년인 동시에,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아주 중요한 해이다. 이날치, 악단광칠, 서도밴드, 잠비나이, 고래야, 추다혜차지스 등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뮤지션들의 활약으로 젊어진 국악과 대중의 접점은 넓어지고 있다. 최근엔 퓨전 국악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 ‘조선판스타’까지 등장했다.

김영운 원장은 “그동안 전통문화에 소원했던 대중을 국악 가까이 오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창작 활동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젊은 세대들이 선보이는 국악은 당의정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쓴 약을 먹기 힘든 아이들을 위해 겉에 설탕을 발라주는 일이다. 이것이 먹기엔 좋지만 결국 약은 오롯이 먹을 때 가장 흡수가 잘 되고 약효도 제대로 나타난다”라며 “관심과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국악과 다른 장르가 융합된 음악을 선보일 수 있지만, 그 끝에는 전통 음악이 있어야 한다. 전통에 충실한 음악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며, 전통 본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진단했다. 

이에 대한 방법 중 하나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국악 교육 시간을 늘리는 것’을 제안했다. 그는 “실제 현장에는 서양 음악을 주로 교육받은 교사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국악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 보다 쉽게 국악을 가르칠 수 있도록 수업시간에 활용 가능한 교육 재료나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14일 오후 국립국악원 국립국악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현장.(사진=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이 전통의 보존과 계승을 위한 기관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지나치게 전통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국립국악원에도 전통을 바탕으로 현 시대의 음악적 요구를 반영하는 역할을 하는 창작악단이 있지만, 젊은 국악인들과는 동떨어져 '창작'의 의미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이는 국립국악원이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딜레마이고 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전통 소재에서 익숙한 선율과 리듬을 찾아서 새로운 변주곡을 만들거나, 관현악 버전으로 편곡하는 등 널리 여주될 수 있는 창작음악을 개발해 나가겠다”라고 전했다. 

나아가 새로운 기획 공연도 구상 중이다. 20세기 우리들의 정서를 가꿔준 음악들을 국악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김 원장은 “이 작업의 시작이 된 곡은 동요 ‘섬집아기’이다. ‘섬집아기’에 등장하는 엄마의 나이가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보다 당시 시대 분위기를 생각하게 됐고, 서양의 작곡법이 아닌 우리 음악의 반주와 창법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정서를 떠올리게 됐다”라며 “당시 우리가 서양의 문물을 보다 천천히 수용했다면 그 시대의 음악가들은 서양음악 어법이 아닌 전통음악의 방식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가정하며, 기존의 곡을 새롭게 만들어보려한다”라고 설명했다.

국립국악원은 서울의 본원을 비롯해 남원에 국립민속국악원, 진도에 국립남도국악원, 부산에 국립부산국악원을 두고 있다. 세 국악원은 서울 국립국악원 소속이지만 지역별로 특성화가 확실하게 되어 있어, 저마다 자율성을 가지고 공연 무대를 꾸려가고 있다. 김 원장은 “지금처럼 전국에 있는 국악원은 지역의 문화예술 특성을 살리는 운영 방식을 유지할 것이며, 지역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도록 합동 연주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라며 “다른 지역에도 국립국악원이 많이 늘어나길 바라지만, 이는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결정될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국립국악원 미공개 소장품전: 21인의 기증 컬렉션’ 전시장 모습(사진=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은 1951년 개원 이후 44년 만인 1995년 국악박물관을 개관하고, 2007년 국악아카이브를 신설해 기증 자료의 수집을 진행했다. 현재까지 103명의 기증자로부터 18만 점의 유물을 수집한 국악박물관은, 그동안 한 번도 소개하지 않은 기증자 21인의 유물 113점을 소개하는 특별전 ‘국립국악원 미공개 소장품전: 21인의 기증 컬렉션’을 기획해 개원 이후 70년간의 역사를 돌아본다.

이번 전시는 유물에 얽힌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국악인과 기증자와의 다양한 관계 속 의미를 엮어 전시 유물만으로도 국악의 지난 70년 역사를 반추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그간의 전시가 악기나 음악의 주제 등에 국한되었다면, 이번 전시는 유물에 남겨진 예술가와 수집가의 삶과 이야기에 집중한다. 21인의 기증자를 국립국악원 사람들, 예술가와 애호가, 학자와 작곡가로 구분해 다양한 이야기를 엮었다.

▲1973 국립국악원 유럽순회공연 기념사진(제공=국립국악원)
▲1973 국립국악원 유럽순회공연 기념사진(제공=국립국악원)

전시를 총괄한 서인화 국악연구실장은 “1995년 국악박물관 개관 이후 유물 구입비가 따로 책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까지 103분의 기증으로 총 18만 점의 국악 유물을 수집해 왔다”라며 “이번 전시는 그중 미공개 기증품을 선보인 것으로, 국립국악원의 70년을 넘어 우리 국악의 70년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라고 전했다.

전시 유물 중 특히 눈에 띄는 이야기는 1960년대 이후 국악이 해외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당시의 생생한 흔적들이다. 특히 1964년 3월 16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국립국악원 최초의 일본 공연의 흔적은 팸플릿과 신문기사, 공연 티켓과 일정표를 비롯해 공연 직후 일본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나눈 공연단의 생생한 인터뷰로 확인할 수 있다. 전 국립남도국악원장을 역임한 윤이근과 당시 공연에 참여했던 국악학자 장사훈의 기증 유물이다. 

민간 전통예술단체인 삼천리가무단은 같은 해인 1964년 4월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초청으로 뉴욕 카네기홀과 링컨센터 필하모닉홀에서 연주를 했는데, 당시 공연 포스터와 호텔 영수증을 비롯해 공연 실황의 일부를 전한 현지 라디오 방송사의 뉴스와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다. 관련 유물은 미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1995년 한국으로 귀화한 해의만(앨런 헤이먼)의 기증 유물로 당시 공연단을 조직해 인솔했다. 

▲음악학자 해의만(앨런 헤이먼)의 기증자료 전시 모습. 생전에 음향, 사진 등을 기증했고 타계 후 유족들이 1960년대 굿 현장을 촬영한 사진 등 약 1,500점에 이르는 고인의 소장품 일체를 기증했다.(사진=국립국악원)
▲음악학자 해의만(앨런 헤이먼)의 기증자료 전시 모습. 생전에 음향, 사진 등을 기증했고 타계 후 유족들이 1960년대 굿 현장을 촬영한 사진 등 약 1,500점에 이르는 고인의 소장품 일체를 기증했다.(사진=국립국악원)

1973년 8월 29일부터 12월 16일까지 장장 110일 동안 유럽 순회공연을 이어간 국립국악원의 정악(正樂, 궁중음악과 풍류음악)과 정재(呈才, 궁중무용) 공연 모습이 담긴 기록물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73년 10월 독일 본(BONN) 공연에서는 국립국악원의 유럽 공연 소식을 접한 윤이상 작곡가가 공연 사회와 해설을 자처해 관객들에게 한국의 음악을 직접 소개했는데, 당시 궁중무용 ‘춘앵전’을 처음 접한 후 훗날 ‘무악(舞樂)’이라는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자료를 비롯해 윤이상 작곡가의 당시 공연 해설 육성을 들을 수 있다. 관련 유물은 모두 당시 공연에 무용수로 참여했던 전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박숙자가 기증했다.

이외에도 국악을 아끼고 지켜온 이들의 세월과 노력이 담긴 유물들도 눈에 띈다. 삼성그룹의 창립 초기 기업인이자 대구, 경북 지역의 풍류 애호가인 허순구는 지역 국악인들을 후원하고 다수의 필사 악보와 악기를 남겼다. 이 유물들은 대구, 경북 지역의 풍류음악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로 평가받는데, 2013년 아들인 허병천과 허동수가 국립국악원에 관련 유물을 기증했다.

▲국립국악원 서인화 국악연구실장
(사진=국립국악원)

5대째 국악을 잇고 있는 정가 명인인 가객 이동규는 1952년대 국립국악원 개원 당시의 시조 강습 교재를 비롯한 고악보 등 가보로 삼을 만한 자료들을 기증해 이번 전시를 빛냈다.

서인화 국악연구실장은 “귀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애써 모은 귀한 자료를 기증해주신 수집가분들 덕분에 이번 전시가 가능했다”라고 밝히면서 “앞으로 국악박물관은 자료 나눔과 공유를 통해 시대적 가치를 돌아보고, 국악 정보의 허브 역할에 앞장서 국악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겠다”고 언급했다.

공개된 기증 유물은 예술가와 수집가의 삶과 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현장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지만, 그럼에도 일정 부분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나라 가야금의 기틀을 마련한 황병기, 근대 악가무의 시조 한성준 등 국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에 대한 자료가 여전히 미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서 연구실장은 “이번 전시는 미공개 기증품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라며 “두 분 모두 국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을 남기신 분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황병기 선생의 자료는 대부분 중앙도서관에 기증된 것으로 알고 있다. 따로 섹션을 마련하진 못 했지만 전시 내용 가운데 황병기 선생이 함께 활동하신 작품의 내용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한성준 선생 역시 여러 여건상의 이유로 자료를 갖추지 못 하고 있다. 자료가 구비된다면 언제든 전시할 의향이 있다. 앞으로 더 나은 전시를 위해 노력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국립국악원 미공개 소장품전: 21인의 기증 컬렉션’은 내년 2월 27일까지 국악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또한, 국악박물관의 새로운 전시콘텐츠로 1층 전시 공간인 국악뜰을 배경으로 실감형 전시콘텐츠도 이달 15일부터 선보인다. 아울러 국립국악원은 이번 전시와 관련한 기증자들의 연계 특강을 오는 10월부터 진행할 계획이다.(문의 02-580-3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