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 사진전 《어머니의 땅》, 장터 일군 어머니로 떠올리는 고향 흔적
정영신 사진전 《어머니의 땅》, 장터 일군 어머니로 떠올리는 고향 흔적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9.17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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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트, 오는 23일부터 10월 4일까지
1980년대 후반부터 기록한 시골 장터 기록
전시기간 중 사진집 「어머니의 땅」 출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30여년의 시간동안 우직하게 장터를 기록해온 정영신 작가가 장터이야기와 함께 어머니의 모습으로 한 시대의 감성과 의미를 전한다. 오는 23일부터 10월 4일까지 인사동에 자리한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정영신 사진전 《어머니의 땅》이다.

▲1987전남 영암 ⓒ정영신
▲1987전남 영암 ⓒ정영신

장터 사진가로 유명한 정영신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골오일장을 찾아다니며, 장터의 풍경을 잡아냈다. 30여 년간 그는 전국 522곳의 5일 장을 모두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의 근력 있는 시선은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열렸던 5일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먹고사는 시간이 응집된 행위들이 집약된 공간으로 시대의 가장 큰 역동성을 담고 있는 곳이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농촌의 여러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장이었고, 시기 별 중요한 소식들이 오가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골 장터의 공간이 1970년대 이후부터 진행된 도시 산업화로 점점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논과 밭,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내면, 그 자식은 다시는 농촌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장터의 주된 원동력이었던 농촌 공동체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영신 작가가 장터를 기록했던 30여 년간 시골의 오일장은 점점 사라져갔다.

1987 충북옥천 (3)
▲1987 충북옥천 ⓒ정영신

사진전 《어머니의 땅》은 시골 땅에 여전히 남아있는 장터 공간과 자식을 도시로 올려 보내고 고향 집에 머무르는 어머니를 같이 엮어낸 작가의 진득한 시선으로 구성됐다. 정영신은 경제발전이라는 목표 때문에 너무 빠르게 스러져간 옛 풍물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는 옛 것의 훼손은 결국 현대인들이 고향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고 봤다.

전시는 도시화에 밀려 사라져 간 고향과 장터의 흔적을 어머니의 모습으로 끌어올린다. 전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80년대 후반의 고향 모습과 우리어머니들의 모습이 담긴 오래된 흑백사진은 고향의 따뜻함이자 어머니들의 공동체의 기록이다.

▲1988 해남옥천
▲1988 해남옥천 ⓒ정영신

전시 제목 ‘어머니의 땅’은 사진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정영신이 개인화와 가부장 사회 속에서도 묵묵하게 가정을 지켜 온 ‘어머니’라는 존재를 고찰한 표현이다. 정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고향을 그리워하다보면 가족이, 어머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라며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사회에서는 부모가 본능적으로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중략) 가정 안에서 언제나 희생과 인내로 살아온 어머니들이 이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 가정을 올곧게 지켜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20세기 중반 한국사회는 철저한 가부장사회로 작동해 어머니들은 자기 본성대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자에게 무시당하거나 피해당할 때 그 억울함이나 응어리로 맺힌 한(恨)을 오로지 가정과 자식을 위해 희생해왔다”라고 봤다.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고향이라는 공간은 따뜻하면서도, 한이 서려있는 공간이다. 복합적인 감정이 작용하는 공간 기록을 통해 정영신은 고향의 따스함과 사라져가는 시대 끝, 희생됐던 어머니의 시간을 모두 보여준다.

▲1987전남 영암 ⓒ정영신

전시 소개 글을 쓴 박인식 작가는 ‘어머니’를 기록한 정영신의 사진을 ‘작가 내면으로 들어가는 본질의 문을 열어젖혔다’라고 표현한다. 박 작가는 “(정영신이) 그간 발표한 사진은 장터풍물‧풍경이 주류였는데, 이런 장터 사진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근원적 사진미학의 겉모습의 현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던 걸까”라며 “장터를 찍으면서 부차적으로 찍었다고 생각했던 장꾼들이 장으로 나오기까지 이 땅과 한 몸 되어 어울려 사는 일상의 풍경들이 근원적 사진미학의 눈을 작가의 내면 안쪽으로 열어젖혔다”라고 설명한다.

▲어머니의 땅 표지 (사진=정영신 제공)
▲어머니의 땅 표지 (사진=정영신 제공)

정영신 사진은 ‘무기교의 기교’가 발휘된 작품이다. 정리되지 않아 자칫 산만한 사진 속 장애물들을 정영신은 그대로 담아냈다. 작가의 선택으로 시대의 기록과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 정영신의 사진은 시대의 난장을 과감 없이 드러내, 공간을 기록한다.

정영신 작가는 이번 전시와 함께 출판사 눈빛에서 사진집 「어머니의 땅」도 출간한다. 조문호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정영신의 사진을 ‘인간에 대한 탐구로 이어져 온 것’이라 보며, 그의 사진에 대해 ‘예술적 가치보단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인문학적인 입장에 가깝다’라고 설명한다

사진집 「어머니의 땅」을 출간하는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도 조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이 대표는 “글로써는 불가능한 1980년대 농촌의 시대상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감을 사진으로 기록해, 어느 인류학자도 하지 못한 작업을 정영신이 해냈다”라고 표현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가이아(Gaia) 대지의 여신을 창조의 어머니 신이라고 했다. ‘땅’과 ‘어머니’의 연결성은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통용돼오던 개념이었다. 정영신은 이 생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도심화로 사라져 간 농촌의 이미지와 가부장제 아래 가족을 위해 희생해 온 ‘어머니’의 존재를 묶어내 우리 민족만이 지니고 있는 감정을 구축한다. 흑백으로 표현된 한 시대 어머니의 기록으로 따뜻함과 고향의 뭉근함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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