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인간-자연 이분법 교란하는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
[현장프리뷰]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인간-자연 이분법 교란하는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
  • 안소현 기자
  • 승인 2021.09.19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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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 9.17~12.12

[서울문화투데이 안소현 기자] 물질간 경계를 가로지르는 대규모 전시가 펼쳐진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오는 12월 12일까지 진행될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은 인간과 자연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 보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시각 및 다원 예술 기반 작가 35명(팀)이 참여해 인간, 기술, 환경 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작품 및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동시대 환경 이슈를 토대로 리서치를 진행하는 한편, 과학·환경 분야 전문가들과 협업했다.

▲기자간담회 현장 사진. 전시장 초입에 제목이 걸려 있다.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기자간담회 현장 사진. 전시장 초입에 제목이 걸려 있다.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전시 제목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는 미국문학자이자 생태문화이론가인 스테이시 엘러이모의 ‘횡단신체성(transcorporeality)’ 개념에서 비롯됐다. 엘러이모는 이 개념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신체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인간·기술·환경이 경계 없이 유동하며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라는 분리된 의식의 틀을 교란하면서 인류 역사에서 간과했던 다양한 가치들을 일깨우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예술 실천을 통해 인간·기술·환경의 선순환적 관계를 중점적으로 고찰한다.기후 위기와 팬데믹 시기를 지혜롭게 헤처나가 보려는 목적이다. 이를 위해 기술과 과학이론을 토대로 발전시킨 작업이 50여 점 전시된다. 작품의 형식적 측면에 집중해 과학 기술을 부각하기보다는 개별 작업이 지니고 있는 메시지와 협업구조, 오랜 리서치 결과에 주목한다.

전시는 특별히 참여 작가들의 신작을 중심으로 구현됐다.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3D프린팅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다학제적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시셀 마리 톤(Sissel Marie Tonn), 'Becoming a Sentinel Species', 2000-2021, 영상 스틸이미지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시셀 마리 톤(Sissel Marie Tonn), 'Becoming a Sentinel Species', 2000-2021, 영상 스틸이미지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시셀 마리 톤은 횡단신체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다루는 작가로, 현재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상 <Becoming a Sentinel Species>(2020-2021)를 통해 미세플라스틱과 인체의 상호 영향 관계를 살펴봤다. 작품 속에는 두 연구자가 등장해 바다에서 수집한 미세플라스틱을 자기 몸에 주입하는 실험을 진행한다. 작가는 영상 중간에 자신의 피에서 배양된 대식세포를 이용해 실제로 미세플라스틱에 반응하는 휴면 바이오마커를 만드는 기록 영상을 끼워 넣었다. 이후 스토리 속 연구자들이 대식세포와 미세플라스틱이 만나면 엄청난 신경생리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다시 픽션으로 돌아간다. 이 작업은 확장적 인식을 통해 다양한 생물종간의 공존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김아영의 신작 <수리솔: POVCR>(2021)은 인터렉티브 VR 작업으로, 작년에 제작된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라는 픽션 작업의 스핀오프 버전이다. 근미래 부산 앞바다에서 다시마를 발효해 연료를 생산하는 한 연구소가 배경이다. 연구자 소하일라와 AI 수리솔이 대화를 나누다가 바다에서 독소 포자를 발견하고 정찰을 나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이를 통해 탄소 배출, 에너지의 지속 가능성, 이상 기후 등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관람객은 VR을 통해 소하일라, 수리솔 등 다양한 인물의 시점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짜 현실과 VR 속 현실이 충돌하는 현상을 경험하며 현실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김아영 작가가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김아영 작가가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염지혜는 이번 전시에 영상 2개를 출품했다. 하나는 올해 초 이미 발표했던 <검은태양 X: 캐스퍼, 마녀, 그리고 물구나무종> 일부를 독립된 영상으로 다시 제작한 <물구나무종 선언>(2021)이다. 작품에서는 10개의 질문 형태로 선언문을 발표한다. 식물을 통해 기존 사고를 돌아보려는 취지를 담았다. 해당 영상 뒷면에는 이번에 새로 제작한 <사이보그핸드스탠더러스의 코>(2021가 있다. 제목은 모두가 아는 ‘사이보그’와 ‘핸드스탠더러스(handstanderus)’, 즉 물구나무종을 합쳐 지었다. <물구나무종 선언>의 후속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작가는 서로 어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사이보그, 식물, 동물을 용접해 새로운 사유를 끌어내려 하면서 여태까지 중요하지 않은 감각으로 취급받아온 후각(코)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작가는 영상이 재생되는 LED패널 뒷면을 그대로 노출하기도 했다. 비물질적으로 보이는 LED 패널의 매끈한 표면이 사실은 물질 기반적임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상 작품 '사이보그핸드스탠더러스의 코'에 대해 설명하는 염지혜 작가. 노출된 LED 패널이 보인다.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영상 작품 '사이보그핸드스탠더러스의 코'에 대해 설명하는 염지혜 작가. 노출된 LED 패널이 보인다.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소설가 김초엽도 이번 전시의 문제의식에 동의해 참여를 결정했다. 기이한 외계 식물로 뒤덮인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파견자들』 연작(2021)에서는 격리 도시에 자신을 가둔 인간들과 외부지역으로 조사를 떠나는 파견자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균사체 네트워크를 통해 집단 지능을 가지게 된 늪의 생물체들과 격리 도시에서 도망친 소년의 만남을 다루는 「늪지의 소년」, ▲파견자 라트나가 어느 운무림으로 떠나 외계 식물들로 뒤덮인 마을의 미스터리를 조사하는 「오염 구역」, ▲파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염된 지구의 운명에 대해 논의하는 「가장자리 너머」 등 총 3편의 짧은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은 전시장에서 읽어볼 수 있으며, 벽면에는 작가가 발췌한 내용 일부가 프린트돼 걸려있다.

▲벽에 걸린 김초엽 작가의 '파견자들' 일부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벽에 걸린 김초엽 작가의 '파견자들' 일부 (사진=아르코미술관 제공)

그 외에도 별도의 온라인 플랫폼(www.nothingmakesitself.art)을 통해 다이아크론, 수잔 앵커 등이 참여한 온라인 전시도 감상할 수 있다. 해당 플랫폼에는 ▲네트쇼의 ⟪공생하는 사물들 (Symbiotic Objects)⟫ ▲제로의 예술의 ⟪비거니즘 전시 매뉴얼⟫, ▲환대의 조각들의 ⟪환대의 조각들 #000⟫ 등 외부 기획자 3명(팀)이 기획한 위성 프로젝트도 준비돼 있다.

미술관 1층에 있는 스페이스 필룩스에서는 총 6회에 걸쳐 공연도 펼쳐질 예정이다. 준비된 공연으로는 ▲이민경의 <삼물기>(9.25), ▲김보람의 <움직이는 숲-불타는 집>(10.5~17), ▲콜렉티브 뒹굴의 <배팅 로얄: 더 나은 미래 편>(10.20), ▲고병량과 아토드의 <희생없는 공존을 그리워하다: 파괴적 공생에 대한 가벼운 반성>(10.26~11.7), ▲밥랩의 <미스터 코와의 대화>(11.16~28), ▲이정연 댄스프로젝트의 <Lucid Dream II>(12.4)가 있다. 12월 8일부터 12일까지는 서울환경영화제의 후원으로 영화제가 소장하는 ‘그린아카이브’ 중에서 이번 프로젝트와 주제 의식을 공유하는 일부 영화들을 소개하는 스크리닝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이번 페스티벌은 워낙 방대해 마음이 가는 작품을 골라 감상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간-자연, 환경-기술 등 이념적 대립을 만드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