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내정 논란…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 인사 결사반대”
[Hot Issue]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내정 논란…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 인사 결사반대”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9.2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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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단체 및 세종노조 거센 반발
“블랙리스트 부역자의 기관장 복귀, 오세훈 시정의 현주소”
서울시의회 내부에서도 임명 반대 목소리 확산
▲안호상 전 국립극장장
▲안호상 전 국립극장장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특검 조사를 받았던 인사가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에 문화예술단체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17일 한국일보는 임기가 만료된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의 후임으로 안호상 전 국립극장장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장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의 신임 사장 후보자 공모 결과 안 전 극장장이 유력 후보로 발탁됐고 신원 조회에서 문제가 없을 시 10월 초 정식 임명이 이뤄질 예정이다. 세종문화회관 사장 임명권자는 서울시장이다.

안 전 극장장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기획부장, 공연사업국장 등을 거친 공연인 출신이다. 2012~2017년에는 국립극장장을 지냈다. 국립극장에서 일하면서 ‘레퍼토리 시즌제’를 처음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7년 1월 그는, 당시 문화인 블랙리스트 주도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던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전달한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공로로 극장장 자리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같은 해 6월 도종환 문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장정숙 당시 국민의당 의원이 “조윤선 전 장관이 자신이 구속되기 나흘 전, 특검 조사를 받는 분이 안 극장장의 연임을 허가했다. 지금도 문체부 산하, 유관 기관장에 부역자와 공모자가 잔존한 상황을 아느냐”며 실명을 거론한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안 전 극장장은 의혹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미룬 채, 그해 9월 국립극장장 직을 사임했다. 그는 ‘블랙리스트 문제나 외압과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 결정’임을 강조했고 이후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를 거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과거 오세훈 시장은 제33대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안 전 극장장을 2007년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발탁한 바 있다. 이후 그는 2010년에 한 차례 연임됐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국정농단세력의 서울시 복귀 규탄”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예술단체들이 모인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19일 “안호상 전 국립중앙극장장이 박근혜 정부 시기 블랙리스트 실행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라며 “사장 임명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안호상은 국립극장장 재임 시절 손진책 연출가의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2015.11.)의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돼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발표공간 지원사업’ 심의과정에서 발생한 블랙리스트 사건에도 연루돼 있다”라며 “블랙리스트가 실행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 동안 유례없이 3번이나 국립극장장을 연임하고, 블랙리스트가 실행된 사업에 심의위원으로 참여했다”라고 주장했다.

▲손진책 연출의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장 제공)

이들은 “손진책 연출가가 국립극단 감독 시절 기획했던 공연 <개구리>가 ‘노무현 대통령은 미화하고, 박정희와 박근혜 두 대통령은 비하했다’라는 이유로 블랙리스트 대상이 됐다”라면서 “손진책 연출이 국립극장에서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를 공연하려고 하자, 당시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에서 ‘위에서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는 손진책 연출의 교체 가능 여부를 안호상 당시 극립극장장과 상의하였던 사건으로 국정농단 사태 이후 알려졌다”라고 주장에 덧붙여 설명했다.

또한 안호상 전 국립중앙극장장이 예술현장에서 블랙리스트 실행 의혹으로 크게 문제가 된 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련 사건’이라며, 2017년 6월 감사원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감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에 널리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당시 감사원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5년 10월 <공연예술발표공간 지원사업> 등에서 일부 친 정부 성향의 심사위원들이 담당 직원들과 블랙리스트 명단을 사전 공유하고 블랙리스트 배제 방법까지 협의하는 등 심사과정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인사는 김동석, 도완석, 류경호, 안호상, 정현욱 총 5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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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5년 ‘공연예술발표공간 지원사업’ 심의총평 자료 일부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심사과정에서 ‘사업계획서 부실’(사전 협의된 지원배제방법) 등을 언급하며 심사를 주도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못했는데, 이는 심사에 참여하고 블랙리스트 사건 현장에 있었던 안호상 전 극장장을 포함한 5명 중에 그 누구도 진실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안호상이 그 시기를 성찰하거나 반성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라며 “안호상과 비슷한 연배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전 정부 시기 공공기관장으로 국정농단과 국가 범죄에 부역하면서 블랙리스트 실행을 하였던 사실이 들통난 후에 보였던 무책임, 무성찰에 익숙하기 때문”이라며 회의적 시선을 드러냈다.

이어 “안호상의 세종문화회관 사장 복귀는 오세훈 시정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 시켜준다. 우리는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과거 국정농단세력들이 서울시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강력하게 경고한다”라며 “안호상이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임명된다면 공론장을 통하여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오세훈표 시정농단과 블랙리스트 국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세종문화회관노조 “공공기관, 임원 선임 절차적 투명성 상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세종문화회관지부(이하 세종노조)는 세종문화회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및 사장 선임절차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신입직원 채용에도 시민의 눈높이를 강조하는 서울시가, 기관의 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낡은 관행을 답습한 ‘깜깜이 프리패스 선임’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종노조는 “1999년 재단법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세종문화회관은 낙하산 인사와 독선적 운영으로 뇌물수수, 대관비리, 공사비리 등의 폐해로 얼룩져 사장 임기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채 초기 1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라고 말하며 “3년 임기를 채운 사장이 이제 겨우 3번 나온 시점에서, 과거로의 회귀는 안 된다. 더불어 광화문광장 조성과 연계한 세종문화회관은 2.0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누가 사장으로 선임되느냐에 따라, 미래의 청사진이 달라지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종문화회관 전경
▲세종문화회관 전경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이들은 “창조적 예술성과 공공성의 균형을 담보하기 위한 운영 자율성과 책임감, 리더십은 사장의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과 결과의 투명성”이라며 “공공성과 예술성을 훼손하거나 노조탄압, 인사전횡 등에 앞장선 인사는 사장 및 임원 후보로 적합하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세종노조는 “박근혜·이명박 정부시기 문화예술계 국정농단-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한 인사 그 누구라도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부임한다면, 결단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화예술단체와 세종노조뿐만 아니라 서울시의회 내에서도 안호상 전 극장장의 세종문화회관 사장 임명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규복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세종문화회관 사장 임명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지점들을 인지하고 있다. 내용을 신중하게 검토한 후 서울시의회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 전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울시 문화본부 문화정책과 담당자는 “현재 후보자에 대한 결격 사유 검토 단계에 있다. 세종 노조 및 예술계의 특정 후보자 임명 반대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별도의 입장 표명은 따로 계획된 바 없다”라고 말하며 “사장 임명 관련 서울시의 입장은 내달 1일 발표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2018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 종합 보고회에서 도종환 전 문체부 장관과 김용삼 1차관을 비롯한 기관 관계자들의 대국민 사과 모습(사진=문체부 제공)
▲지난 2018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 종합 보고회에서 도종환 전 문체부 장관과 김용삼 1차관을 비롯한 기관 관계자들의 대국민 사과 모습(사진=문체부 제공)

블랙리스트 문제는 해결되고 있는가

지난 7월 서울연극협회가 국가를 상대로 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최종 승소한 사례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시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규모는 중복 집계된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총 9,273건(단체 342곳, 개인 8,931명)에 달한다. 이는 곧 블랙리스트로 인해 피해를 본 대다수의 피해자가 여전히 구제받지 못한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음을 뜻한다. 수많은 문화예술인의 피해 회복과 보상하려는 노력 대신 가해자를 복권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된다면, 문화예술계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립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