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베세토 오페라단 오페레타 '박쥐' , 팬데믹 지친 관객들에 힐링 선사 
[이채훈의 클래식비평]베세토 오페라단 오페레타 '박쥐' , 팬데믹 지친 관객들에 힐링 선사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1.09.26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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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5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서 올려져
위트있는 대사와 배우들의 열연, 짜임새 있는 무대와 의상 돋보여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창단 25주년을 맞은 베세토 오페라단(단장 강화자)이 지난 24일과 2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를 무대에 올렸다.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미룬 공연을 포기하지 않고 성공시켜 팬데믹에 지친 관객들에게 모처럼 환한 웃음을 선사했다. 오랜 기간 고생한 제작진과 모든 음악가들의 노고가 열매 맺은 시간이었다.

빈 국립오페라가 매년 12월 31일 공연하여 한 해의 피로를 씻어주는 유쾌한 작품인데, 마침 추석 연휴 직후라 명절 증후군을 앓은 분들께도 좋은 힐링의 시간이 됐을 것이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1874년 경제 공황으로 우울해 하던 빈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오페레타를 작곡했으니, 이번 공연은 여러 모로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오페레타는 전통 오페라보다 쉽고 친근하며, 주로 귀족 사회의 위선과 허영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19세기 시민 계층의 열띤 호응을 받으며 뮤지컬의 모태가 됐고, 한국 청중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장르다. 오페라의 레시타티보 대신 우리말과 독일말을 익살스레 섞어서 알기 쉽게 연결한 연출 감각이 신선했다. 알프레트가 로잘린데에게 돌진하면서 <투란도트>의 유명한 ‘빈체로’ 대목을 노래하고, 아델레가 오페라 가수라며 <마술피리> ‘밤의 여왕’의 고음 패시지를 부르는 장면 등은 위트 있는 연출이었다. 

로잘린데 역의 박혜진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2막 파티에서 헝가리 귀부인으로 변신하며 ‘차르다슈’를 멋지게 불러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다만 심성이 고우면서도 속물 근성을 갖고 있는 로잘린데의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듯하다. 리자 델라 카사와 같은 카리스마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좀 더 흡인력 있는 연기였으면 좋았겠다.

세종문화회관의 공간이 크기 때문에 표정 연기를 볼 수 있도록 확대 스크린을 활용하면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이젠슈타인 역의 김성곤은 적절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좌충우돌 열연하여 공연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애정도 없는 아내와 헤어지는 걸 슬퍼하는 척 하는 1막의 3중창에서 청중들은 특히 그에게 공감의 웃음과 박수를 보냈다. 

오페레타 박쥐의 한 장면.(사진 출처=블로그 아산선인)
오페레타 박쥐의 한 장면.(사진 출처=블로그 아산선인)

이날 출연자 중 아델레 역의 진윤희가 단연 돋보였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42번가>의 신데렐라 비슷한 캐릭터를 열심히 잘 표현했다. 2막에서 프랑스 귀족 행세를 하며 접근하는 아이젠슈타인를 비꼬는 아리아 ‘존경하는 후작님’, 3막에서 프랑크에게 자기를 키워달라며 ‘몸 로비’도 불사하는 대목의 ‘저는 무슨 역할이든 다 할 수 있지요’를 열창하여 청중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알프레트 역의 김성진, 팔케 역의 김용현, 프랑크 역의 왕광렬 모두 무난한 노래와 연기 실력을 선보였는데, 특히 왕광렬은 친근하고 소탈한 교도소장 프랑크의 성격을 잘 소화하여 이 오페레타의 유쾌한 분위기를 살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프로쉬 역을 포함, 소극처럼 연기하는 대목에서는 오버액션을 자제하는 게 좋겠다. 대중성도 중요하지만 자칫 작품의 품격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어 보였다. 

오케스트라는 무난했다. 서곡의 다이내믹이 좀 더 선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의 질감과 금관의 씩씩한 음색이 다소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보컬과 잘 어울렸다. 피콜로 주자와 타악기 주자의 부지런한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패션쇼 대목에서 연주한 <남국의 장미>는 템포와 강약 조절이 훌륭해서 듣기에 흥겨웠다. 3막에서 다함께 샴페인을 예찬하는 ‘오 박쥐! 박쥐!’ 대목에서 오케스트라의 총주는 찬란한 느낌이었다. 

세트, 조명, 의상은 작품의 분위기를 살리기에 손색이 없었고, 2막 파티 장면 종반에 삽입된 패션쇼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 성의 있는 무대였다. 다만 극과의 맥락이 닿지 않아 등장인물들과 패션모델들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또한 등장 인물의 의상과 어우러지도록 패션의 디자인과 색상을 정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의상 팀과 패션쇼 팀의 협업이 좀 더 긴밀하게 이뤄졌으면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페레타 박쥐의 커튼콜 장면.
오페레타 박쥐의 커튼콜 장면.

<박쥐>는 귀족의 파티와 가면무도회 등 낯선 문화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 관객들은 자칫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오페레타의 배경이 되는 사건을 미리 보여주면 좀 더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었을 것이다. 2년 전 팔켄이 박쥐 의상으로 파티에 갔다가 취해서 길에 쓰러졌는데 아이젠슈타인이 그냥 버리고 가 버렸고, 팔켄이 이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상황을 연출했다는 걸 관객들은 알지 못한다. 서곡 연주할 동안에 이 상황을 출연자들이 연기하거나 프로젝터로 보여주는 등 더 적극적인 연출을 시도하면 좋았겠다.  

코로나 때문에 전체 3막인 이 작품을 중간 휴식 없이 공연했다. 이 사실을 공연 전에 충분히 고지하지 않고 1막 끝난 뒤에 알린 것은 진행상 아쉬운 점이었다. 휴식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은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측에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진행요원들이 관객들을 통제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서비스하는 자세로 임하도록 잘 교육하면 좋겠다. 진행요원들이 너무 열심히 뛰어다니기 때문에 공연장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 공연 시작 10분 전에 “빨리 들어가라”며 재촉하고, 코로나 때문에 한칸 떨어져 빈 자리에 여유있게 앉으려는 사람에게 좌석 번호를 강조하며 밀착된 자리에 앉으라고 하는 건 불합리하다. 진행요원들이 기계가 아니라 인간으로 일하도록 차원 높게 교육해 주면 좋겠다. 우리나라 공연 문화의 가장 후진적인 부분 중 하나이므로,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