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물리학자가 들려주는 미술, 첼리스트가 들려주는 환경이야기
[현장리뷰] 물리학자가 들려주는 미술, 첼리스트가 들려주는 환경이야기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10.08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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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문화재단 인문학북콘서트 《인지하지 못했던 사사로운 것들》
지박&스트링 콰르텟 연주, 김상욱 물리학자 강연
학문 경계를 넘어, 일상과 세계를 돌아보는 시각 제안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평일 저녁, 잠시 시간을 멈춰 나의 일상과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노원문화재단과 노원구립도서관이 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과 노원구 후원을 받아 지난 8월부터 선보여 온 인문학북콘서트 《인지하지 못했던 사사로운 것들》이다.

▲지박&스트링 콰르텟 공연 (사진=노원문화재단 제공)
▲지박&스트링 콰르텟 공연 (사진=노원문화재단 제공)

지난 5일 저녁 7시 30분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는 노원문화재단이 준비한 인문학북콘서트 2회 차 “경계를 넘어: 과학과 예술”이 열렸다. 지박&스트링 콰르텟(VRI STRING QUARTET/이하 VSQ)의 현악 4중주와 김상욱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의 강연으로 꾸려졌다.

총 3회 차로 구성된 《인지하지 못했던 사사로운 것들》은 ‘삶, 가족, 이웃, 청춘, 나’ 등 일상 속에서 보편적이고 사사롭게 여겨지지만 그 소중함을 쉽게 알지 못했던 요소를 중요한 문제로 끌어올리는 시간을 만든다. 바삐 돌아가는 일상사를 멈추고, 공연장에 앉아 음악과 함께 사유의 산책을 경험할 수 있다.

김상욱 교수와 VSQ가 초대된 인문학북콘서트 2회 차가 개최된 날은 갑작스러운 가을비로 굉장히 습하고 흐린 날씨였다. 흩날리는 빗줄기 때문에 이동조차 편치 않은 날이었는데, 노원문화예술회관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띄어 앉기를 실시해 좌석을 배치하고, 체온 체크 후 현장 요원이 주는 입장 팔찌도 개인이 착용하게끔 도와 방역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콘서트 주제 ‘경계를 넘어: 과학과 예술’은 학문적으로도 분류되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과학과 예술 분야가 어우러지는 순간을 담고있다. 공연 참석 전 주제를 읽고, 언뜻 근간에 꾸준하게 논의되고 있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예상했지만 공연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VSQ와 김 교수는 10분 내외의 짧은 대화 이외에는 연결되는 지점이 없었고, 각기 다른 무대를 선보였다.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가 드러난 지점은 현악연주그룹이 ‘환경’에 대한 문제 인식을 담아 음악을 창작하고, 물리학자가 수학공식을 토대로 미술 작품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전한 때였다.

지박&스트링 콰르텟은 작곡을 맡고 있는 첼리스트 지박과 바이올리니스트 박용은, 주소영, 비올리니스트 이용구가 함께하고 있다. 작곡과 즉흥음악을 기반으로 대중음악과 현대음악을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개척하고 있는 그룹이다. 콘서트에서는 1집 「DMZ」 앨범 수록곡 <introduction>등과 2집 「Save The Planet」의 주요 수록곡을 연주했다.

▲지박 첼리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김상욱 교수 (사진=노원문화재단 제공)
▲지박 첼리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김상욱 교수 (사진=노원문화재단 제공)

이번 콘서트에서 지박&스트링 콰르텟이 무게를 담아서 연주한 곡은 2집 「Save The Planet」의 수록곡이었다. 올 8월에 발매된 이 음반을 제작하기 전 VSQ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보자는 방향성 잡고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플플 캠페인’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4주 간의 탄소배출 줄이기 운동, 흔적남기지 않는 습관 등의 환경보호 활동을 유튜브 영상으로 기록했다. 이 과정 속에서 5번의 토론회와 음감회를 거쳐 2집을 완성하게 됐다고 한다. 이 앨범은 환경 문제에 대한 VSQ의 인식과 자연에 대한 예찬과 경각심이 녹아있다.

앨범에 수록된 <Greta Thunberg>는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UN 연설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곡된 곡이다. 웅장한 첼로 소리로 시작되는 곡은 4가지의 현악기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선율을 만들어내다가, 아슬아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막으로 관객을 이끌어간다. 4개의 현악기가 만들어 낸 음은 언뜻 경쾌하고 살아있는 듯 하지만, 금세 듣는 이를 어마어마한 불안의 상황으로 몰아붙인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일상과 소리 없이 다가오는 기후 재앙 상황을 은유하는 듯 했다.

VSQ는 <Greta Thunberg> 연주 중에 그레타 툰베리 연설 목소리 삽입한다. UN 기후정상회담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에게 적극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라며 울먹이며 격분하는 툰베리의 목소리는 또 하나의 선율이 돼 현악기와 어우러진다. 음악과 함께 전해지는 “당신들은 나의 미래를 빼앗은 것과 다름없다”라는 묵직한 메시지는 환경 문제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때보다 더욱 강하게 관람객을 휘감아 안는다.

지박 첼리스트는 “환경 문제를 고민한 앨범을 준비하면서, 연주자인 우리가 특별히 더 신경 쓸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종이악보 사용을 줄여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단순히 종이나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에서 나아가 소비를 줄여나가는 것도 환경 보호의 첫 걸음”이라 말했다. 음악으로 감성을 건드리는 것에서 나아가 사회메시지까지 녹여내는 공연에서 이색적인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다.

▲강연 중 관객과 소통하는 김상욱 교수 (사진=노원문화재단 제공)
▲강연 중 관객과 소통하는 김상욱 교수 (사진=노원문화재단 제공)

김상욱 교수는 자신의 저서 「뉴턴의 아틀리에」를 통해 강의를 준비했다. ‘다정한 물리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이답게 그의 강의는 시종일관 관객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김 교수는 칸딘스키의 추상 작품으로부터 점, 선, 면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이어 칸딘스키의 추상화에서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으로 넘어가 ‘점’의 시작을 이야기를 하고, 또 그 ‘점’에서 쇠라의 점묘법, 디지털 화면 구성 방식을 설명했다.

과학과 인문학,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김 교수의 강의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선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그 방식은 나아가 세계를 보고, 지구를 너머 우주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했다는 것이 김 교수 설명이다. 그는 과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며, 바라보는 것에 따라 사람의 인식은 무한하게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도쿄도 미술관(Tokyo Metropolitan Art Museum)에서 봤던 <나무와의 대화>라는 작품에 대한 일화로 강의를 끝맺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스케일이 큰 작품을 좋아해서 찾아가 감상한 작품인데, 나무와의 대화라는 제목과 달리 나무의 시체 같은 잘린 목재들만 쌓아놔서 이상하게 느꼈다. 그런데, 거대한 크기 작품 옆 벽 틈새에 작은 꽃 하나가 심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언가 이상해서 안내원에게 저 꽃도 작품의 일부냐고 물었는데 맞다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순간에 깨달음이 있었다. 거대함에 눌려 눈앞의 것에 매몰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강연을 하고 있는 김상욱 교수 (사진=노원문화재단 제공)
▲강연을 하고 있는 김상욱 교수 (사진=노원문화재단 제공)

그 일화를 끝으로 김 교수는 정말 거대한 것 같은 삶의 문제나 환경의 문제도 너무 가까이서 보고 고민하지 말고 거리를 두고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것이 하나의 방향성이 되지 않을까하는 견해를 제안했다.

현악4중주로 시작된 인문학북콘서트의 끝은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을 만나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경계를 넘나드는 프로그램 구성이, 관람객이 어떤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순간까지 마련한 듯 했다. 얼핏 엉뚱하고 맥락 없는 구성일 수 있는 공연이었지만 바쁜 일상의 틈에서 사유의 여행을 제공하는 데에는 충분한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