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의 인문학 파먹기]무너져 내려야 할 순간이 오면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의 인문학 파먹기]무너져 내려야 할 순간이 오면
  • 윤이현
  • 승인 2021.10.08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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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모기를 잡았다. 배가 빵빵한 녀석이었다. 아마도 십 분 전에 오른쪽 발목을 문 녀석일 것이다. 지금 나는 공사장에 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평주조장에 와 있다. 아빠는 벽을 허물고 있고, 나는 작게 마련된 캠핑용 의자에 앉아 저물어가는 해와 무너져 내리는 담을 관조하는 중이다. 망할 놈의 모기들과 함께.

어제는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익선동의 한 가게에서 일했다. 때로는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돕기도 하고, 손님이 부르면 밖으로 뛰쳐나와 주문을 받았다. 다리와 발이 퉁퉁 부어 마감할 때쯤엔 거의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정말 바쁜 하루였다. 일을 마치고 나서는 광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문 너머로 값비싼 아파트들이 지나가는데, 그중에 우리 집은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서글퍼졌다가 순간 내가 앉은 좌석이 우등석임을 깨닫고, 이만하면 괜찮은 삶인가? 물음을 던졌다가를 반복한 시간이었다. 몸은 정말 지쳤는데, 잠은 오질 않고 고민만 많아지는 새벽. 그 무수한 시간과 고민이 육신을 뚫고 지나가는 사이 광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차분히 짐을 내려놓고 잘 준비를 한 뒤 방바닥에 누웠다. 할아버지가 받으신 여러 패와 위촉장 따위가 장식되어있는 방이었다. 그곳에 누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듯한 생각들을 내내 이어가다가 그렇게 피로 속에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아빠와 주조장에 가보기로 했다. 이 주조장은 아빠가 약 6년 전쯤 포부를 가지고 매입한 건물인데, 보기에는 영 허름하기 그지없다. 아빠는 주말이 되면 매주 시골에 내려가 조금씩 보수 공사를 하시는 모양이다. 나주 곰탕을 사주겠다는 아빠의 말에 홀려 일을 좀 돕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일은 아빠가 다 하셨지만 말이다.

오래간만에 들른 주조장은 전에 비해 말끔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다만 오래된 시멘트 담만큼은 구멍이 뚫려 제힘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칫하다간 옆집에 계신 할머니 집으로 담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를 위험한 상태였다. 오늘의 임무는 그 담을 부수고 시멘트로 사이사이 구멍을 메꿔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다. 담을 허무는 일은 위험하니 아빠가 하기로 하고, 나는 남은 담 군데군데 틈에 돌을 넣고 그 위에 시멘트를 바르기로 했다.

시중에 파는 시멘트 가루는 실은 시멘트 가루와 모래가 섞여 있는 혼합물이다. 그 가루 위에 적당량의 물을 부어 반죽을 만들어준 뒤 쇠 손을 이용해 발라주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촬영용 카메라를 세팅해놓고 우리는 공사를 시작했다. 초가을의 뜨거운 햇빛에 괴로워하면서도 나는 마치 자연에 대적하듯 사다리를 딛고 위로 올라가, 차분히 시멘트 반죽을 발랐다. 작업하는 내내, 무슨 이유인지 여러 고민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이 이어졌다. 삶이란 무엇일지, 어떻게 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이 생활에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자꾸만 아쉬워지는 건 왜 일지 따위의 것들을 곱씹고 있었다. 그 사이, 어느덧 거칠게 무너져 내렸던 담 윗부분의 균열이 매끈하게 메꿔져 갔다.

담 아래서 시멘트 잔해를 치우던 아빠와 나는 많은 땀을 흘린 탓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모기와의 사투 그리고 더위에 지친 내가 잠시 작업을 중단하고 사이다를 사오기로 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밖에서 바라본 세상은 밤과 낮의 그 경계 어딘가에 멈춰있었고, 그 위로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낯선 시골에서 마트를 찾아가면서, 잠깐이지만 이대로 모든 것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처음엔 단지 애써 작업해둔 담이 무너지지 않고 이대로 튼튼하게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야 다시 손을 볼 일이 없을 테니. 그런데 그 생각은 더 깊어져,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친구들 그리고 담 너머에 사시는 할머니가 영원히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길 바랐다. 그들만 곁에 있어 주면 지금 나를 둘러싼 20대의 고민 따윈 아무렇지 않게 씩씩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 텐데.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애써 메운 담이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는 세상. 신나게 물어대던 통통한 시골 모기마저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세상. 모든 것이 어디 하나 부서지지 않고 영원히 간직되길 소망하고 있었다. 왜 이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당시로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시원한 사이다를 사 들고, 아빠와 우리 가족의 희망인 주조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외엔 어떠한 답도 내릴 수 없었다.

전 주인이 열심히 세워둔 그 담은, 결국 시간이 지나 오늘날 구멍이 뚫리고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새 주인인 아빠와 내가 그것을 다시 보수한 것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묵묵하게 서서 비를 견디고, 옆집 할머니 집으로 흘러 들어갈 바람을 막았던 담장을 누가 초라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날 처음 마주한 담장의 틈 사이엔 지난 세월이 서려 있었고, 그간의 고생이 영광의 상처처럼 남아 있었다. 우리의 주조장과 할머니의 집을 지켰던 그간의 세월이. 틈 사이에 돌을 메꾸면서 자꾸만 여러 삶의 고민이 떠올랐던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초라하지만 거대한 담 앞에서 우리 모두의 인생을 투영했다. 그날 그토록 바랐던 영원은 결국 인생에서 성립되지 않는 환상에 가까운 단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담장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제 역할을 다 하고 저렇게 힘을 잃을 테니까. 그러나 외형은 힘을 잃어도, 역사는 몸에 새겨진다. 전날 새벽, 할아버지의 방에 놓인 여러 상패를 보며, 느꼈던 전율처럼. 묵묵히 담을 부시는 아빠의 뒷모습에서 느꼈던 세월의 무게처럼.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를 가지고 천천히 무너질 것이다.

나 그리고 당신이 언젠가 그날의 주조장의 담처럼 무너져 내려야 할 순간이 오면, 저마다의 역할을 다 하고 부서질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훗날 누군가가 젊은 손으로 틈 사이를 메워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삶일 텐데. 그날 소망했던 영원이란 것은 없지만,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이 나를 기억해준다면 나의 역사도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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