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리움미술관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 변화 방향은 어디로 향해 있는가
[현장프리뷰] 리움미술관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 변화 방향은 어디로 향해 있는가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10.10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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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리움·호암 미술관 재개관
국·내외 거장 작품으로 꾸려진 상설전 및 기획전
김성원 부관장 “변화의 서막 알리는 재개관 될 것”
전시가 전하는 새로움과 역동성 너머로 전해지는 씁쓸함도
오랜 시간 공백의 내막 지워진 느낌이기 때문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진화일까, 혁명일까. ‘변화’를 키워드로 내세운 리움미술관이 10월 8일, 1년 7개월 만에 걸어 잠갔던 문을 열었다. 미술관 공간, 온라인 홈페이지 및 MI(Museum Identity)까지 새롭게 단장했다. 상설전은 전면 개편, 4년 만에 기획전까지 선보인다. 호암미술관도 같은 날 재개관을 알리고 기획전을 열어 새로운 흐름에 동참했다.

▲론 뮤익, 「마스크 Ⅱ」,2002, 혼합재료,77 x 118 x 85 cm. 개인 소장 ©한도희

리움미술관의 웅장한 규모만큼이나 전시 규모 역시 어마어마하다. 2시간여의 시간 동안 하나의 전시조차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다. 지난 6일 열린 리움미술관 언론간담회를 통해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Human, 7 questions)》을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이번 기획전은 내년 1월 2일까지 열리며, 故이건희 회장 미술품 국가 기증 뜻을 이어 올 연말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사전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2주 전부터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다. 국보 6점, 보물 4점을 포함해 160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고미술 상설전과 3개의 주제로 구성돼 76점의 작품을 전시하는 현대미술 상설전도 무료로 운영된다.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Human, 7 questions)》은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을 맞이한 지금에서, 모든 예술의 근원인 ‘인간’을 되돌아보는 시각을 제안한다. 국내외 51명의 작가와 1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들은 인간 실존에 대한 성찰이 확산된 20세기 중반의 전후(戰後) 미술을 필두로 꾸려졌다.

리움미술관 그라운드갤러리, 블랙박스, 공용공간 등에서 진행되는 기획전은 총 7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거울보기 ▲펼쳐진 몸 ▲일그러진 몸 ▲다치기 쉬운 우리 ▲모두의 방 ▲초월 열망 ▲낯선 공생 순이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마주하게 하고, 예술가들이 탐구해 온 인간에 대한 질문을 따라가 지금의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미래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전 세계를 순식간에 멈추게 한 유례없는 팬데믹의 도래는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기술의 발달, 끝없이 돌진하는 성장 중심 세계관이 과연 모두에게 긍정적인 선택이었는지를 묻게 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이 지구상엔 인간 이외의 존재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인지하게 됐다.

▲'일그러진 몸’ 전시장 전경 ©한도희

환경문제와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돼왔다. 하지만, 학계 전문가가 아닌 이상 대중에게는 거리가 있는 질문이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막연함은 있지만, 그런 날이 코앞으로 닥쳐올 줄은 인지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당연한 일상이 제한당하고 인간이 얼마나 쉽게 바스러져 죽을 수 있는지 느끼게 된 지금의 우리는 이전과 다른 태도로 세계를 인식하게 됐다.

최근 변화와 맞물려 예술계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의 시각을 제안하고 성찰의 장을 마련해왔다. 4년 만에 선보이는 리움미술관의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은 언뜻, 지금 해야 하는 이야기에 쉽게 편승한 트렌디한 경향의 전시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걸어 잠갔던 문을 오랜만에 연 리움은 길었던 공백만큼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려 시도했다.

이번 기획전은 인간에 대한 질문을 보여주는 전시인 만큼 ‘인간’인 우리 자신을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장을 전시를 시작한다. 첫 번째 섹션 ‘거울보기’ 에선 인간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장으로 진입하는 에스컬레이터 정면에 전시된 론 뮤익 <마스크 Ⅱ>는 익숙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인간의 얼굴을 이질적으로 만드는 순간을 선사한다.

나와 비슷하고 같은 모양을 한 작품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기도 하지만, 거대한 얼굴 조각의 뒷면이 텅 빈 것을 보면 알 수 없는 기묘함을 느낄 수 있다. 이외에 예술가의 의미와 역할, 사회적 기대치를 담아내는 주명덕과 육명심의 <예술가 시리즈>, 중동 민주화 운동을 모티브로 한 쉬린 네샤트의 <왕서> 연작들은 세계 안에서 살아간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두 번째 섹션 ‘펼쳐진 몸’에선 인간이 만든 이성중심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이 된 ‘몸’을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인간과 몸, 생각과 물질에 대한 고민이 제안됐을 때쯤 세 번째 섹션 ‘일그러진 몸’은 정상 세계가 숨기고 있던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모두의 방’ 전시장 전경 ©한도희

지금 시대가 할 수 있는 고민을 선보여 온 다른 여러 전시와 이번 리움미술관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의 차이점은 동질감과 기괴함을 같은 선상에 올려둔 시도였다. 첫 번째, 두 번째 섹션에서 느껴볼 수 있었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세 번째 섹션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상적이고 완전한 모습을 꿈꾸어 온 인간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본성, 폭력과 죽음, 야만과 비정상의 이미지가 세 번째 섹션의 주된 이미지이다.

전쟁의 상흔으로 일그러진 인간상을 담은 추상적인 형태의 조각 최만린 <이브>, 여성 신체를 둘러싼 환상과 편견을 깨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유방>과 신디 셔먼의 <부서진 인형> 연작, 그리고 인간· 좀비· 폐기된 로봇의 모습이 혼종된 로버트 롱고 <이 좀비들아: 신 앞의 진실>은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않고, 안다 해도 떠올리지 않았던 인간일 수 있는 어떤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어지는 네 번째 섹션 ‘다치기 쉬운 우리’와 다섯 번째 섹션 ‘모두의 방’은 이상적이고 완전한 인간의 형태로 살기 위해, 소외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고민할 수 있게 하는 장이다. 한국사회 중산층이 생각하는 행복한 가정의 전형을 담아낸 정연두의 <상록타워>, 제도와 상식의 편견에 맞서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다문화 커플들을 보여주는 김옥선의 <해피 투게더> 등은 관계와 공동체가 요구하는 정상성과 그 안의 갈등과 방황을 전달한다. ‘모두의 방’ 섹션에선 주류에서 밀려난 수많은 소수자의 존재를 다룬다. 아시아 게이 남성의 이중적 한계를 해체하고 복합적 정체성을 체현한 야스마사 모리무라의 <두블르나쥬(마르셀)>, 한국 모더니즘 조각의 남성중심적 위계를 해체하는 최하늘의 「샴」 연작 등이다.

다섯 번째 섹션까지는 적어도 지금의 우리가 인지하고, 극복하려 한 갈등에 대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품들은 조각과 영상, 사진 작업이 많은 편이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이미지와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감각들 속에서 관람객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전시가 전하는 메시지에 다가갈 수 있다.

▲이불, 「사이보그 W1, W2, W4, W6」,1998-2001,아트선재센터 소장(사이보그 W1,W2, W4) 리움미술관 소장(사이보그 W6), 리움 설치 전경 ©한도희

여섯 번째 섹션 ‘초월 열망’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마주한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인간과 기계의 상생적 관계를 모색한 백남준의 <로봇 K-456>, 인간-기계 파편들을 통해 사이보그화된 인간종의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정금형의 <떼어낸 부분들> 등이다. 휴먼과 포스트 휴먼, 유기체와 기계의 경계를 고민하게끔 하는 이 섹션부터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나아가게 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어디까지를 인간의 범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경계를 넘나드는 질문이 터져 나온다.

일곱 번째 섹션 ‘낯선 공생’은 첫 번째 섹션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왔던 인간에 대한 질문을 토대로 지금 시대에 가장 근접한 질문을 건넨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인간의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고민하게 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위기들은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재고하는 새로운 사유체계가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인간-비인간 잡종을 형상화하는 데이비드 알트메즈의 조각과 동물과 자연의 지혜를 빌어 탈-인간중심적 삶을 모색하는 염지혜의 <에이아이 옥토퍼스> 등은 다가오게 될 새로운 사유체계가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낯선 것인지를 보여준다.

▲피에르 위그, 「이상(理想)의」, 2019-, 심층 이미지 재현, 실시간 인터랙티브 재구성, 안면 인식, 스크린, 센서, 사운드384 x 378 cm. Courtesy of the artist, Ishikawa Collection,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Hauser and Wirth, London. Copyright:Kamitani Lab / Kyoto © Pierre Huyghe

이미 오지 않은 미래가 어떨 것이라 예견하고, 그를 대비하려고 준비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조차 어떻게 보면 인간 중심적인 사고일 것이라 여겨진다. 다가오는 미지의 영역까지 인간이 극복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라고 판단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시는 우리가 쉽게 상상하지 못한 어떤 미지의 존재들을 눈앞으로 데리고 온다. 익숙하지도 않고, 기괴하게도 느껴지는 존재들은 우리가 앞으로 만날 존재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낯선 공생’ 섹션에서 볼 수 있는 피에르 위그의 <이상(理想)의>는 전혀 상상해볼 수 없었던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인간의 생각과 상상을 fMRI 로 스캔한 다채로운 이미지로 인간-기계-환경이 어우러진 생태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어쩌면, 우리가 마주하게 될 세계는 지금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차원의 것을 모두 어그러뜨리고 완전히 새로운 시작으로 열릴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 미래에선, 인간이 지금과 같은 위치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의 일곱 섹션은 하나하나의 섹션 모두 쉽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그런 묵직하고 어려운 질문들을 이성이 아닌 감각으로 읽어볼 수 있게 하는 전시는 관람 전과 관람 후의 우리를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인간, 일곱개의 질문' 전시 도입부 전경 ⓒ한도희
▲'인간, 일곱개의 질문' 전시 도입부 전경 ⓒ한도희

언론간담회에 참석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이번 재개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변화의 서막’이라고 말했다. 김 부관장은 “리움미술관이 미술계에 남겨왔던 역사가 사라진다고는 보지 않는다”라며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과거에서 이어지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고 미술관이 지향하는 방향성은 앞으로의 기획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변화는 양적 변화, 질적 변화로 나뉠 수 있다. 전자는 눈에 보이는 영역으로 부피가 늘어나거나, 색깔이 바뀌는 등의 변화다. 후자는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물질 내부의 성분이나 신념이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질적 변화는 결국 양적 변화로 드러난다는 시각이 있다. 물질 내부에서 부패하기 시작하면, 결국 겉면에도 곰팡이가 생기고 형제가 문드러지게 되는 경우다. 양적 변화, 질적 변화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도 있다. 양적 변화는 진화, 질적 변화는 혁명이다.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은 새로운 시대를 마주한 인간의 진화와 혁명을 안정적으로 다뤄냈다. 미술관 변화의 서막을 알리는 전시로써도 의미는 전달된 듯하다. 하지만, 리움미술관의 추구하는 ‘변화’는 아직 선명해 보이지 않는다. 이전과는 다른 공간 구성, 전시 개편, 역동적인 MI로의 개편으로 미술관의 진화는 알렸다. 故이건희 회장 미술품 국가 기증 가치관을 이어 미술관을 무료로 공개한다는 점에서도 리움과 호암이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자 함은 전해진다.

사실 이 기획전의 가장 첫 작품이자, 가장 마지막 작품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Ⅲ>과 안토니 곰리의 <표현>, 조지 시걸의 <러시 아워>이다. 전시장 진입로에 전시 된 이 작품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과 고찰이 전해지면서,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전시 초반에 배치할 수 있는 미술관의 탄탄한 저력을 보여준다.

이는 기획전에 선보여지는 전반적인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과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작가, 또 그들의 작품으로 표현하는 전시의 메시지는 시대 선두에서 전하는 생동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시가 전하는 새로움과 역동성 너머로 전해지는 씁쓸함도 이 전시에서 놓칠 수 없는 지점이다.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이 전하는 전시이기에, 오랜 시간 공백의 내막이 지워진 느낌이기 때문일 수 있다. 앞으로 리움과 호암의 혁명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변화가 열릴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