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정영신의 장터이야기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 살아있는 역사 같은 할배가 있었다.
오래된 나무처럼 몸은 마르고 비었지만,
살아 온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동네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내 동무 깨순이네 집
수저가 몇 개 있는지까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또한 마을 입구에는 500년 넘는 팽나무가 있어
여름이면 팽나무 아래 평상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쉬는 공간이었다.
곰방대에 쌈지 담배를 넣어 물고, 온종일 먼 산만 바라보다가
초저녁달이 저수지를 건너 젖은 얼굴을 내밀면 집으로 갔다.
내 어릴 적에는, 자연의 냄새를 색깔로 만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익명의 존재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는 순간이었다.
그때 문득 잊혀진 목소리 하나가 나를 깨운다.
“깨순아 밥 먹게 엉릉 들어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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